주간동아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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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알아도 VF사는 모른다

적자 ‘노스페이스’ 인수 대박 일궈…노티카, 이스트백, 잔스포츠 거느린 거대 기업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02-20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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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페이스’ 알아도 VF사는 모른다
    ‘점퍼 계급도’가 인터넷에 나돌고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선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등산을 즐기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10대 청소년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국내에서만 6000억 원(소비자가격 기준)의 매출을 올렸지만, 정작 노스페이스가 어떤 회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스페이스 열풍이 불면서 국내 판권을 가진 골드윈코리아와 골드윈코리아의 최대 주주인 영원무역홀딩스의 이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정도다.

    노스페이스는 알려진 대로 미국 브랜드다.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짧지 않은 역사 덕에 노스페이스는 미국에서도 잘 알려진 브랜드지만, 모기업 VF사(VF Corporation)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국에서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VF사는 의류기업으로선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리(Lee)’ ‘랭글러(Wrangler)’ 등의 청바지와 속옷 생산 업체였던 VF사는 2000년 노스페이스를 시작으로 알짜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노티카(Nautica)’ ‘잔스포츠(Jan sports)’ ‘이스트팩(Eastpak)’ ‘키플링(Kip ling)’ ‘팀버랜드(Timberland)’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브랜드를 포함해 30여 개 브랜드가 VF사 소속이다.

    노스페이스가 중고교생에게 인기를 끌자, 기성세대 사이에서도 한때 유난히 인기를 모았던 브랜드가 하나 둘 거론됐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시절이 있으며, 다만 그 시절 패션을 완성하는 아이템과 브랜드가 다를 뿐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1990년대 후반 대학가에선 당시 20만∼30만 원대였던 노티카 점퍼를 입고 이스트팩 가방을 메는 것이 유행이었다. 잔스포츠 가방은 이스트팩 가방보다 조금 먼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1990년대 대학에 다닌 사람들에게 노티카, 이스트팩, 잔스포츠는 ‘개그콘서트’에서 소재로 다루길 기대해볼 만한 ‘위대한 유산’이다.

    미국 최대 의류기업 자랑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와 ‘위대한 유산’을 모두 가진 VF사는 인수합병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VF사는 맥키 맥도널드 회장이 최고경영자이자 사장으로 취임한 1996년 이후 변화를 꾀했다. 속옷과 청바지로 안정적인 기업 운영이 가능했지만 거기에 미래를 걸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1만3000개 일자리를 줄이고, 제조공정을 해외로 돌렸다. 의류 브랜드 인수에 적극 나선 것도 그 무렵이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 브랜드는 피하고, 소비자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제품 중 소비자에게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전략적으로 골랐다. 소비자에게 친숙한 의류회사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그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였다.



    맥도널드 회장은 2006년 9월 미국 공영방송인 PBS와의 인터뷰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옷장에 옷이 없어서 옷을 사는 시대는 지났다. 옷장에 옷이 쌓여 있는데도 소비자가 옷을 사는 이유는 자신을 대변해줄 뭔가가 필요해서다. 그건 경기가 안 좋을수록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 소비자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져 전체 소비 규모를 줄이더라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해주는 제품에는 기꺼이 돈을 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브랜드가 되려면 소비자가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K2 북벽을 등반할 것도 아니면서 노스페이스를 입는 이유는 언제라도 원하면 그럴 수 있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2000년 VF사가 인수할 당시 노스페이스는 적자에 허덕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VF사의 성장동력이 됐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점포, 백화점 관계자들과 긴밀히 접촉해 소비자 및 소비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뚜렷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토록 한 덕분이다. VF사가 인수한 이후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노스페이스는 청바지, 속옷, 유니폼 등 이미지웨어 중심이던 VF사의 기업 포트폴리오를 아웃도어 중심으로 개편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노스페이스 이후 잔스포츠, 이스트팩, 노티카, 키플링을 인수해 아웃도어 부문을 확장한 VF사는 지난해 20억 달러(약 2조2000억 원)를 들여 팀버랜드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현재 VF사 전체 매출 가운데 아웃도어 비중은 절반 정도. VF사는 2015년까지 이를 6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노스페이스’ 알아도 VF사는 모른다
    맥도널드 회장은 자신이 최고경영자이던 시절 공공연히 “새로 인수할 기업을 노리고 있다(McDonald confirms he‘s on the hunt for new companies)”고 말했다. VF사의 현 최고경영자인 에릭 와이즈먼 사장은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몇 년간 새 브랜드 인수와 기존 브랜드의 유기적인 성장을 통해 지속적인 기업 성장이 가능했다”며 “비즈니스모델 다각화가 VF사의 성공 열쇠이며 각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깊이 알고 있는 리더가 경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백창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에서 인수합병은 기업을 키우는 대중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사들이는 게 몸집 불리기에 더 쉽다”는 간단한 원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하루 많게는 10건의 인수합병이 진행되기도 한다. 인수합병을 ‘기업 사냥’에 비유하며 ‘먹고 먹히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새로 인수할 기업 노린다”

    ‘노스페이스’ 알아도 VF사는 모른다

    VF사의 공식 홈페이지.

    미국 기업은 아니지만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세를 키운 대표적인 기업이다. 1987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루이비통을 인수하며 탄생한 LVMH 그룹은 집요한 인수합병의 결과로 펜디, 셀린느, 마크 제이콥스, 불가리, 크리스찬 디오르 등 수십 개의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다. “명품의 역사와 전통은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인수하는 게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는 아르노 회장은 브랜드 인수 후 디자이너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LVMH라는 하나의 색깔을 고집하기보다 각 브랜드의 독창성이 발휘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VF사가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를 인수해 경영하면서 VF라는 기업 이름을 굳이 내세우지 않는 것도 비슷한 전략으로 분석할 수 있다. 백창석 연구원은 “브랜드마다 특성이 다른데, 모기업을 강조하는 순간 브랜드 고유의 색깔이 흐려질 수 있다”고 말한다. 맥도널드 회장은 PBS와의 인터뷰 당시 “노스페이스를 입는 사람들이 VF라는 회사 이름을 몰라도 개의치 않는다”며 “오히려 그게 더 좋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가 VF사를 ‘이름들 뒤에 있는 이름(the name behind the names)’이라고 표현한 것이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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