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프랑스와 터키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부정금지법’ 통과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2011년 12월 22일 프랑스 하원에서 통과한 이 법은 이르면 1월 말 상원과 의회 위원회를 거쳐 본격 발효할 것으로 보인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학살을 부인하는 자(국적에 상관없이 프랑스 영토 내에 머물고 있는 자일 경우 처벌 가능)에게 1년 징역 혹은 4만5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조직적 대학살” vs “전쟁 중 희생자”
오스만 제국 시절 아르메니아인은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 이스탄불 등 대도시에 거주하며 무역과 금융업을 겸했던 상인으로 나뉘었다. 평온해 보이던 아르메니아 공동체는 1877년 러시아·튀르크전쟁으로 내분에 휘말렸다. 러시아는 1878년 산스테파노 조약을 통해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역의 권리 향상을 위한 개혁을 약속했다. 이를 계기로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의 민족운동이 시작됐고, 독립 정당까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군대와 협력해 무슬림을 몰아내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을 접한 터키인들은 어느새 아르메니아인을 외국과 내통하는 테러리스트로 보기 시작했다.
압둘하미드 2세가 권력을 잡았던 1894~96년 오스만 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스탄불 등 서쪽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 및 습격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5~16년에는 현재 논란이 되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이 있었다. 아르메니아인의 오랜 터전이던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강제 이주정책이 집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약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희생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조직적인 대학살이었지만 터키 정부는 “대학살이 아니라 강제 이주에 따른 자연적인 희생”이었다면서 “아르메니아 민족 탄압이 아니다. 전쟁 중 오스만 제국 전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 중에 아르메니아인도 포함됐던 것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피해자인 아르메니아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했던 것처럼 터키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매년 4월 24일을 ‘1915년 터키의 아르메니아 민족 대학살 사건 기념일’로 지정해 터키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부정에 관한 법을 제정한 프랑스는 이번 법안 통과로 약 100만 명의 희생자를 초래한 터키의 대학살 부정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터키는 발끈하고 나섰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부정금지법이 1차 통과한 지난해 12월 22일 터키는 프랑스 주재 터키대사관 관계자를 즉각 앙카라로 불러들여 새 법안 통과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또한 양국 간 군사·정치 협력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터키인은 올해 대선을 앞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출신 유권자 수십만 명의 표심을 얻으려고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생각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1945~62년, 알제리 독립운동에서 사망한 알제리 국민의 15%는 프랑스에 의해 학살당했고, 1994년에도 80만 명에 달하는 르완다 국민이 희생됐다”며 폭력으로 얼룩진 프랑스의 과거사를 공격했다. 또한 볼칸 보즈키르 터키 외교위원회 회장과 오스만 코루튀르크 전 프랑스 대사도 파리를 방문해, 사르코지 대통령의 외교고문인 알랑 주페, 장다비드 레비트와의 면담자리에서 프랑스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프랑스 정부의 ‘역사 되짚어 보기’는 대내외적으로 악감정을 높이고 있다. 터키는 앞서 군사·정치 협력 중단을 발표한 데 이어 무역 부문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프랑스와 터키의 교역 실적은 2010년 한 해만 120억 원에 달한다. 현재 터키에는 960개의 프랑스 기업이 진출했고 그중에는 르노, 푸조, 까르푸, 다논, 알카텔 등 세계적 기업이 다수 있어 경제적으로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만일 터키가 프랑스 제품 보이콧과 함께 비즈니스 계약 파기를 결정한다면 프랑스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남의 나라 사건 들쑤시는 이유 뭐냐
아르메니아 대학살 부정금지법은 프랑스와 터키 간 외교관계를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프랑스 내에서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프랑스에 거주 중인 아르메니아인과 터키인은 서로 적대감이 생겼으며, 프랑스인은 ‘이웃 싸움’에 불을 붙인 정부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인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프랑스인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사건을 들쑤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학 교수인 마리클로드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같은 사건은 역사가나 학자들의 세밀한 연구를 통해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수많은 사망자와 고통을 낳은 민감한 문제를 프랑스 정부와 대통령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각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 우방인 터키에 국제적 모독과 불명예를 안긴 프랑스 정부. 이것이 정말 엘리제궁을 떠나기 싫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얄팍한 꼼수에 불과할까. 프랑스에 거주하는 터키 유학생 페란 케말의 말이다.
“모든 터키인이 사건을 부정하지도, 모든 아르메니아인이 터키를 살인자로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논쟁으로 두 나라 국민의 관계가 악화할까 염려된다. 오늘날에는 강대국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이제 우리 터키인은 물론, 아르메니아인의 민족 역사까지 타국에 의해 평가받는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직적 대학살” vs “전쟁 중 희생자”
오스만 제국 시절 아르메니아인은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 이스탄불 등 대도시에 거주하며 무역과 금융업을 겸했던 상인으로 나뉘었다. 평온해 보이던 아르메니아 공동체는 1877년 러시아·튀르크전쟁으로 내분에 휘말렸다. 러시아는 1878년 산스테파노 조약을 통해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역의 권리 향상을 위한 개혁을 약속했다. 이를 계기로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의 민족운동이 시작됐고, 독립 정당까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군대와 협력해 무슬림을 몰아내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을 접한 터키인들은 어느새 아르메니아인을 외국과 내통하는 테러리스트로 보기 시작했다.
압둘하미드 2세가 권력을 잡았던 1894~96년 오스만 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스탄불 등 서쪽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 및 습격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5~16년에는 현재 논란이 되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이 있었다. 아르메니아인의 오랜 터전이던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강제 이주정책이 집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약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희생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조직적인 대학살이었지만 터키 정부는 “대학살이 아니라 강제 이주에 따른 자연적인 희생”이었다면서 “아르메니아 민족 탄압이 아니다. 전쟁 중 오스만 제국 전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 중에 아르메니아인도 포함됐던 것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피해자인 아르메니아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했던 것처럼 터키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매년 4월 24일을 ‘1915년 터키의 아르메니아 민족 대학살 사건 기념일’로 지정해 터키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부정에 관한 법을 제정한 프랑스는 이번 법안 통과로 약 100만 명의 희생자를 초래한 터키의 대학살 부정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터키는 발끈하고 나섰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부정금지법이 1차 통과한 지난해 12월 22일 터키는 프랑스 주재 터키대사관 관계자를 즉각 앙카라로 불러들여 새 법안 통과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또한 양국 간 군사·정치 협력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터키인은 올해 대선을 앞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출신 유권자 수십만 명의 표심을 얻으려고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생각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1945~62년, 알제리 독립운동에서 사망한 알제리 국민의 15%는 프랑스에 의해 학살당했고, 1994년에도 80만 명에 달하는 르완다 국민이 희생됐다”며 폭력으로 얼룩진 프랑스의 과거사를 공격했다. 또한 볼칸 보즈키르 터키 외교위원회 회장과 오스만 코루튀르크 전 프랑스 대사도 파리를 방문해, 사르코지 대통령의 외교고문인 알랑 주페, 장다비드 레비트와의 면담자리에서 프랑스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프랑스 정부의 ‘역사 되짚어 보기’는 대내외적으로 악감정을 높이고 있다. 터키는 앞서 군사·정치 협력 중단을 발표한 데 이어 무역 부문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프랑스와 터키의 교역 실적은 2010년 한 해만 120억 원에 달한다. 현재 터키에는 960개의 프랑스 기업이 진출했고 그중에는 르노, 푸조, 까르푸, 다논, 알카텔 등 세계적 기업이 다수 있어 경제적으로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만일 터키가 프랑스 제품 보이콧과 함께 비즈니스 계약 파기를 결정한다면 프랑스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남의 나라 사건 들쑤시는 이유 뭐냐
아르메니아 대학살 부정금지법은 프랑스와 터키 간 외교관계를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프랑스 내에서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프랑스에 거주 중인 아르메니아인과 터키인은 서로 적대감이 생겼으며, 프랑스인은 ‘이웃 싸움’에 불을 붙인 정부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인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프랑스인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사건을 들쑤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학 교수인 마리클로드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같은 사건은 역사가나 학자들의 세밀한 연구를 통해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수많은 사망자와 고통을 낳은 민감한 문제를 프랑스 정부와 대통령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각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 우방인 터키에 국제적 모독과 불명예를 안긴 프랑스 정부. 이것이 정말 엘리제궁을 떠나기 싫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얄팍한 꼼수에 불과할까. 프랑스에 거주하는 터키 유학생 페란 케말의 말이다.
“모든 터키인이 사건을 부정하지도, 모든 아르메니아인이 터키를 살인자로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논쟁으로 두 나라 국민의 관계가 악화할까 염려된다. 오늘날에는 강대국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이제 우리 터키인은 물론, 아르메니아인의 민족 역사까지 타국에 의해 평가받는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