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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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 삶고 말리고 시원한 국물 끝내줘요

마른 멸치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1-09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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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고 삶고 말리고 시원한 국물 끝내줘요

    남해 어느 섬에서 만난 햇볕 건조 멸치. 정치망으로 잡았다. 참 귀하다.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가 마른 멸치다. 국물이 많은 한국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게 바로 이 마른 멸치다. 다시마, 새우, 표고버섯, 쇠고기 등도 국물 내는 재료로 쓰지만, 가격 면에서 이 마른 멸치가 만만해 가장 많이 사용한다.

    한반도 남쪽 바다에서 멸치가 많이 잡히니, 예부터 이 마른 멸치를 국물용으로 썼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동안 우리 조상의 식생활 형편은 국물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재료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남해 죽방렴(竹防簾)은 예부터 사용한 어획 도구고, 죽방렴 멸치가 유명하니 옛날부터 마른 멸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방렴으로 주로 잡았던 것은 멸치가 아니라 여러 생선이다. 바다 자원이 빈곤해진 지금과는 퍽 다른 때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죽방렴에 멸치도 잡혔을 테지만 그 멸치로 젓갈이나 담갔을 것이다.

    마른 멸치가 우리 땅에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가 마른 멸치(예전에는 자숙멸치라 불렀다)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 마른 멸치를 일본에 가져갔다. 일본에서 이를 국물용으로 썼을 것이다. 일본에 가져가려고 만들었던 마른 멸치 중 일부가 우리 땅에서 점점 세력을 넓혀 결국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 재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크게 나누면 기선권현망 어업과 정치망 어업 두 가지로 나뉜다. 다시 그물과 어구 종류에 따라 여럿으로 나뉘지만 기본은 이 둘이다. 기선권현망 어업은 배 두 척이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멸치 어군이 보이면 그물을 던져 양쪽에서 끌어당겨 잡는다. 정치망 어업은 바다에 붙박이 그물을 놓아 조류를 따라 들어온 멸치를 거둔다.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죽방렴이다.

    죽방렴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그물’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얕은 바다에 놓아 물살에 밀려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도구다. 대나무를 박았다고 하지만 정치망의 일종이며, 법적으로도 정치망으로 분류한다. 죽방렴, 즉 ‘대나무 정치망’으로 잡은 멸치가 흠집 없이 곱다 해서 비싸게 팔리는데, 잡는 방식을 보면 ‘일반 정치망’과 큰 차이가 없다. ‘일반 정치망’도 멸치를 흠집 없이 곱게 잡는 것은 같다. 죽방렴 멸치는 극소량이다. 그러나 연중 팔리는 죽방렴 멸치의 양은 상당하다. ‘일반 정치망’의 멸치가 ‘대나무 정치망’ 멸치로 팔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죽방렴 멸치가 좋다는 생각은 멸치를 잡자마자 곧장 삶아 말린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나 ‘일반 정치망’ 멸치도 이와 비슷한 시간 안에 삶아 말린다. 멸치를 삶아 말리는 곳을 ‘멸막’이라 하는데, 멸치 잡는 정치망은 이 멸막 바로 앞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방렴 때문에 멸치를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마케팅’이 활발한 반면, 어떻게 삶고 말리는지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사실 멸치는 어떻게 잡는지보다 어떻게 삶아서 말리는지에 따라 맛 차이가 더 크다. 멸치 삶는 물에는 소금을 넣는다. 어떤 소금인지에 따라서도 맛 차이가 크게 난다. 저질 소금을 쓰면 찌르는 듯 쓴맛이 배어 국물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 멸치 제조업체마다 천일염을 쓴다 하지만, 천일염 질이 천차만별이니 마른 멸치 맛도 천차만별이다.

    마른 멸치 맛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말리는 방법이다. 요즘 가장 흔한 것이 바람이 나오는 건조기에 넣고 돌리는 기계건조다. 이렇게 말리면 멸치는 딱딱해지고 맛이 덜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옛날식으로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그런데 햇볕에 말리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멸막 근처의 환경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차가 다녀 먼지가 이는 곳에서는 햇볕에 내놓지 못한다. 남해에 자리한 작은 섬에나 가야 이 햇볕 건조 멸치를 만날 수 있다. 가끔 이런 멸치를 만나면 더없이 귀해 국물 내기에도 아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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