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의 양극화 시대다. 어느 쪽 주장을 취하든 세간의 시선이 극좌나 극우로 필터링한다. 중도적 견해는 기회주의를 넘어 모험주의로 비친다. 강고한 심지를 지닌 이가 흔치 않은 이유다. 자연스레 김대호(49)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서울대 공대 82학번으로 전형적인 386 노동운동가 출신인 그는 1995년 이후 대우자동차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일찌감치 ‘중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논객이다.
정리해고 해도 비정규직 살 수 있는 세상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시나브로 변신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87년 체제’ 극복을 선결과제로 삼았다. 나아가 ‘공정(公定)’이라는 화두를 내세워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우는 전사를 자임했다. 앙시앵 레짐의 상징인 귀족노조(정규직)나 여의도 정치가 그의 타도 대상이다. 세간에서는 이렇게 변한 그를 두고 진보적 현실주의, 성장주의적 진보라고 표현한다. 물론 쉽게 어울릴 수 없는 개념이다.
“저는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고 싶습니다. 중도의 가치란 보수보다 더 보수적이어야 하고, 진보보다 더 급진적이어야 하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시장원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중도라고 봅니다.”
기자는 2년 전, 그가 새 시대 플랫폼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노무현 이후’라는 책을 출간한 직후 인사를 나눴다. 그때만 해도 그는 ‘온건’ 중도였지만 최근엔 ‘격한’ 중도로 옮겨간 모양새다. 때론 극우로 보일 때도 있다. 특히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하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을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자 젊은 층이 주도하는 온라인 여론이 폭발했던 것이다. 여론 향배에 민감한 논객 세상에서 그만이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한 것. 그는 얼마 전 540쪽 분량의 ‘2013년 이후’를 탈고했다. 서울 여의도 맨하탄21빌딩에 위치한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찾아 그의 견해를 재확인했다.
“제가 숱한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산업구조와 고용구조라는 재생산 시스템을 제대로 알기 때문입니다. 진보인사라는 사람들이 계속 현상만을 바라보니 진짜 진보와 보수가 헷갈리는 거죠.”
도대체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형식일까. 핵심 과제만 들어봤다.
“희망버스의 구호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었던가요. 저는 정반대로 ‘정리해고가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합니다. 그 대신 국가적으로 고용률을 높이고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하죠. 비정규직 문제는 그다음 순서입니다.”
그는 한국 산업의 재생산구조가 지닌 핵심적 모순은 노사가 담합해 도급 업체를 빨아먹는 구조에 있다고 본다. 결국 우리 생산력에 비해 일부 (정규직) 노동자가 지나치게 많이 가져간다는 것. 이는 정규직의 임금을 내리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는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어째서 진보는 김진숙으로 대표되는 한진중공업 400명의 정규직 문제에만 매달리는 걸까요. 실제 한진중공업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3000명 이상이 쫓겨났습니다. 이들의 희생을 딛고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유지된 겁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 사회가 진짜 약자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귀족노조에 가린 평민노동자(하청업체)라는 실체는 못 보는 겁니다.”
노동자 간 사회적 대타협 필요
그의 논리와 통계수치는 마치 공학자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따지고 보면 대우자동차에서 일하며 화이트 및 블루칼라 노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것이 그의 어젠다 형성에 크게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노조의 실패와 고용 불안을 지켜보며 그 나름의 국가 기능을 구상한 것이다.
“단적으로 고용보험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고용보험이 취약한 나라도 없습니다. 단, 고용과 해고는 더 자유로워져야 하죠. 어떻게 400명 해고한다고 나라가 흔들리나요. 기업 운영은 자선사업이 아닙니다.”
충분히 쟁점이 될 만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쌍용자동차 노동자 십수 명이 고용조정 이후 자살한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까. 김 소장 논지에 따라 그들은 자기방어력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 그렇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
“마찬가지입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2500명이 고용조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협력업체 1만 명 이상이 일손을 놓아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을 안 합니다 그네들은 별종인가요. 실제 그쪽에선 자살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낙폭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다시는 그런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합니다. 박탈감이 컸던 거죠. 이 같은 낙폭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웨덴에 주목한다. 스웨덴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0만 원 수준이다. 30년을 일해도 엇비슷하다. 그 대신 고용률은 75% 이상이다. 고용보험제도가 잘 돼 있어 해고가 돼도 충격이 덜하다. 그는 500만 원 이상을 받는 귀족노조를 보호하는 방식이 아닌, 이 같은 개혁이 중도라고 확신한다.
“전체를 봐야 합니다.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과 협력업체도 봐야 하죠. 그뿐인가요. 자영업자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기존 고용보호에만 전력하면 청년세대가 작살납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다음 목표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모아졌다. 박 시장은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용단을 내렸다. 우연치 않게 박 시장이 추구하는 ‘소셜디자인’ 개념은 김 소장의 ‘사회디자인’과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개념이 부족한 데서 오는 오류라고 봅니다. 왜 공공부문이 가장 먼저 빵을 먹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금도 공공부문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인가요. 박 시장의 선택은 반동적인 겁니다. 민간의 활력을 누르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셜디자인’ 개념은 절대 국가적 담론 수준이 되지 못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비판은 주로 좌파에 집중됐다. 우파 정부의 잘못은 없었던 것일까. 실제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이 지식인의 공감을 산 적이 드문데 말이다.
“그것은 너무 흔한 비판이라서 안 할 뿐입니다(웃음). 신문만 펼쳐 봐도 다 나오는 비판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전체를 봐야 한다”는 그의 중도론이 실제로는 ‘균형추’ 구실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세력이 타협할 수 있는 균형점을 제시하는 기능. 물론 그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과거의 약자가 지금의 약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김대호식 ‘87년 체제’ 해체에 대한 동의가 먼저 필요할지도 모른다.
“새 시대에 걸맞은 어젠다 형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저는 경세가이자 사회디자이너입니다. ‘뿌리깊은 나무’식으로 말하면 정도전이고, 반드시 이성계가 필요한 사람이죠. 아직 그런 인물을 찾지 못해 괴롭습니다.”
이론가에게는 자기 이상을 실현시켜줄 정치인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가 1월 10일 출판기념회에서 어떤 ‘진짜 중도’의 내용을 펼칠지 궁금해진다.
정리해고 해도 비정규직 살 수 있는 세상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시나브로 변신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87년 체제’ 극복을 선결과제로 삼았다. 나아가 ‘공정(公定)’이라는 화두를 내세워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우는 전사를 자임했다. 앙시앵 레짐의 상징인 귀족노조(정규직)나 여의도 정치가 그의 타도 대상이다. 세간에서는 이렇게 변한 그를 두고 진보적 현실주의, 성장주의적 진보라고 표현한다. 물론 쉽게 어울릴 수 없는 개념이다.
“저는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고 싶습니다. 중도의 가치란 보수보다 더 보수적이어야 하고, 진보보다 더 급진적이어야 하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시장원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중도라고 봅니다.”
기자는 2년 전, 그가 새 시대 플랫폼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노무현 이후’라는 책을 출간한 직후 인사를 나눴다. 그때만 해도 그는 ‘온건’ 중도였지만 최근엔 ‘격한’ 중도로 옮겨간 모양새다. 때론 극우로 보일 때도 있다. 특히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하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을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자 젊은 층이 주도하는 온라인 여론이 폭발했던 것이다. 여론 향배에 민감한 논객 세상에서 그만이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한 것. 그는 얼마 전 540쪽 분량의 ‘2013년 이후’를 탈고했다. 서울 여의도 맨하탄21빌딩에 위치한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찾아 그의 견해를 재확인했다.
“제가 숱한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산업구조와 고용구조라는 재생산 시스템을 제대로 알기 때문입니다. 진보인사라는 사람들이 계속 현상만을 바라보니 진짜 진보와 보수가 헷갈리는 거죠.”
도대체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형식일까. 핵심 과제만 들어봤다.
“희망버스의 구호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었던가요. 저는 정반대로 ‘정리해고가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합니다. 그 대신 국가적으로 고용률을 높이고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하죠. 비정규직 문제는 그다음 순서입니다.”
그는 한국 산업의 재생산구조가 지닌 핵심적 모순은 노사가 담합해 도급 업체를 빨아먹는 구조에 있다고 본다. 결국 우리 생산력에 비해 일부 (정규직) 노동자가 지나치게 많이 가져간다는 것. 이는 정규직의 임금을 내리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는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어째서 진보는 김진숙으로 대표되는 한진중공업 400명의 정규직 문제에만 매달리는 걸까요. 실제 한진중공업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3000명 이상이 쫓겨났습니다. 이들의 희생을 딛고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유지된 겁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 사회가 진짜 약자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귀족노조에 가린 평민노동자(하청업체)라는 실체는 못 보는 겁니다.”
노동자 간 사회적 대타협 필요
2011년 11월 10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부산 한진 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농성 309일 만에 내려오고 있다.
“단적으로 고용보험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고용보험이 취약한 나라도 없습니다. 단, 고용과 해고는 더 자유로워져야 하죠. 어떻게 400명 해고한다고 나라가 흔들리나요. 기업 운영은 자선사업이 아닙니다.”
충분히 쟁점이 될 만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쌍용자동차 노동자 십수 명이 고용조정 이후 자살한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까. 김 소장 논지에 따라 그들은 자기방어력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 그렇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
“마찬가지입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2500명이 고용조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협력업체 1만 명 이상이 일손을 놓아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을 안 합니다 그네들은 별종인가요. 실제 그쪽에선 자살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낙폭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다시는 그런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합니다. 박탈감이 컸던 거죠. 이 같은 낙폭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웨덴에 주목한다. 스웨덴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0만 원 수준이다. 30년을 일해도 엇비슷하다. 그 대신 고용률은 75% 이상이다. 고용보험제도가 잘 돼 있어 해고가 돼도 충격이 덜하다. 그는 500만 원 이상을 받는 귀족노조를 보호하는 방식이 아닌, 이 같은 개혁이 중도라고 확신한다.
“전체를 봐야 합니다.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과 협력업체도 봐야 하죠. 그뿐인가요. 자영업자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기존 고용보호에만 전력하면 청년세대가 작살납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다음 목표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모아졌다. 박 시장은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용단을 내렸다. 우연치 않게 박 시장이 추구하는 ‘소셜디자인’ 개념은 김 소장의 ‘사회디자인’과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개념이 부족한 데서 오는 오류라고 봅니다. 왜 공공부문이 가장 먼저 빵을 먹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금도 공공부문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인가요. 박 시장의 선택은 반동적인 겁니다. 민간의 활력을 누르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셜디자인’ 개념은 절대 국가적 담론 수준이 되지 못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비판은 주로 좌파에 집중됐다. 우파 정부의 잘못은 없었던 것일까. 실제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이 지식인의 공감을 산 적이 드문데 말이다.
“그것은 너무 흔한 비판이라서 안 할 뿐입니다(웃음). 신문만 펼쳐 봐도 다 나오는 비판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전체를 봐야 한다”는 그의 중도론이 실제로는 ‘균형추’ 구실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세력이 타협할 수 있는 균형점을 제시하는 기능. 물론 그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과거의 약자가 지금의 약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김대호식 ‘87년 체제’ 해체에 대한 동의가 먼저 필요할지도 모른다.
“새 시대에 걸맞은 어젠다 형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저는 경세가이자 사회디자이너입니다. ‘뿌리깊은 나무’식으로 말하면 정도전이고, 반드시 이성계가 필요한 사람이죠. 아직 그런 인물을 찾지 못해 괴롭습니다.”
이론가에게는 자기 이상을 실현시켜줄 정치인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가 1월 10일 출판기념회에서 어떤 ‘진짜 중도’의 내용을 펼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