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함께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체제를 가장 철저히 유지해온 독재국가 쿠바가 변하고 있다. ‘레포르마’(개혁이란 뜻의 스페인어) 정책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는 것. 특히 쿠바 정부는 52년간 고수해온 계획경제체제를 수정하고 시장경제 요소를 점진적으로 도입 중이다. 대표적 사례가 2011년 12월 1일부터 실시한 농민의 농산물 직접 판매제(이하 직판제). 그동안 국가가 관장해온 농산물 판매와 유통을 농민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조치다.
농산물 직판제를 도입한 이유는 곡물 자급률이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등 쿠바의 농업생산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민이 생산이 늘어난 만큼 이득을 얻지 못하자 일을 적당히 해왔던 것. 쿠바 정부는 부족한 농산물을 조달하려고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각 도시 주민이 근교 땅에서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도록 허용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예산 부족으로 배급제를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식량 자급자족이 최대 과제로 떠오른 쿠바 정부가 결국 고육지책으로 농민의 농산물 직판제를 허용한 것이다.
여전히 동생 못 믿는 피델 카스트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책으로 개인끼리의 주택매매도 허용했다. 인구 1100만 명이 사는 쿠바에는 현재 주택 160만 채가 부족하다. 한 지붕 아래 사촌과 삼촌 등 친인척이 모여 사는 집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쿠바 정부는 그동안 아파트 등을 대규모로 지어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역부족 상태. 주택을 건설할 자금도 마땅치 않은 정부가 결국 부동산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다. 주택 매매가 가능하다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하면 소유주가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최근 쿠바 정부가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하는 이유는 단연 경제난 때문이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쿠바는 관광수입으로만 매년 20억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탓에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권력교체도 영향을 미쳤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1년 4월 마지막 직책이던 공산당 제1서기에서 물러났고,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후임 제1서기가 됨으로써 명실 공히 국가의 최고통치자 자리에 올랐다. 1959년 혁명을 통해 쿠바에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피델은 기네스북에 전 세계 역사상 최장기 집권(52년 통치)한 독재자로 기록됐다.
피델은 2006년 7월 장출혈로 건강이 악화된 이후 2008년 2월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49년간 국방장관을 해오던 라울에게 권력을 넘겼다. 85세인 피델은 여전히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피델의 성찰’이라는 비정기 칼럼을 쓰며 활동 중이다. 이미 여든을 넘긴 라울의 통치가 못 미더워서인지 평생의 혁명동지이자 심복인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82)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에게 당 제2서기직을 맡기기도 했다. 의사 출신인 벤투라 수석부의장은 이념을 관장해온 강경파다. 라울이 급진 개혁에 매진하지 않을까라는 피델의 염려를 반영한 인사인 셈이다.
‘쿠바의 중국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중국식 경제개혁정책을 선호해온 라울은 두 사람의 견제에도 실용주의 노선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라울이 전면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사회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고 천명한 이유 역시 다른 무엇보다 독재체제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정책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려고 쿠바 정부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초청했다.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제재조치 해제를 노리고 인권탄압과 장기 독재체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노림수다. 실제로 라울은 2011년 12월 23일 정치범을 포함해 죄수 2900명을 석방하고 사면했다.
베네딕토 16세가 3월 쿠바를 방문하면 교황으로서는 두 번째이자 14년 만이다. 1998년 1월 쿠바를 사상 처음 방문한 교황은 고(故) 요한 바오로 2세였다. 당시 피델은 교황의 방문에 앞서 정치범 101명을 석방했고 크리스마스를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흠모했던 피델은 2005년 그가 선종하자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그전까지 피델은 사제를 탄압하는 등 가톨릭과의 관계를 끊은 상태였으며, 로마 교황청 또한 그를 파문한 상황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이후 쿠바와 교황청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아직까지도 종교 자유는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내심 대미 관계 개선 희망
이 때문에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방문을 계기로 쿠바가 개혁정책을 가속화하고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를 바란다. 교황청 시각에서 볼 때 베네딕토 16세의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쿠바에서 가톨릭 부흥을 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쿠바는 그동안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가톨릭 교세가 크게 약화해온 국가다. 로마교황청은 공산혁명 이전에는 국민의 85%가 가톨릭 신자였지만 현재는 60%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앞으로 쿠바의 개혁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미국은 1961년 1월 3일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이듬해부터 포괄적인 경제제재 등 봉쇄정책을 취해왔다. 워싱턴의 역대 행정부는 눈엣가시인 피델을 제거하려고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해 암살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쿠바가 민주화와 개혁·개방정책을 과감하게 단행하지 않는 한 제재조치를 해제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이에 맞서 쿠바 정부도 반미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심지어 이번에 교황 방문을 계기로 단행한 대규모 사면에서 2009년 간첩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제외했을 정도다.
현재로서는 두 나라 관계가 가까운 시일 안에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 일각에서는 체 게바라와 함께 반미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피델이 사망해야 양국 관계가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경제개혁에 투입할 자금이 필요한 쿠바가 내심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음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쿠바 정부가 지난 50년간 계속돼온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피해만 975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월 22일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한 라울이 이 자리에서 ‘피델 사망 이후 쿠바의 미래’에 관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농산물 직판제를 도입한 이유는 곡물 자급률이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등 쿠바의 농업생산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민이 생산이 늘어난 만큼 이득을 얻지 못하자 일을 적당히 해왔던 것. 쿠바 정부는 부족한 농산물을 조달하려고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각 도시 주민이 근교 땅에서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도록 허용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예산 부족으로 배급제를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식량 자급자족이 최대 과제로 떠오른 쿠바 정부가 결국 고육지책으로 농민의 농산물 직판제를 허용한 것이다.
여전히 동생 못 믿는 피델 카스트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책으로 개인끼리의 주택매매도 허용했다. 인구 1100만 명이 사는 쿠바에는 현재 주택 160만 채가 부족하다. 한 지붕 아래 사촌과 삼촌 등 친인척이 모여 사는 집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쿠바 정부는 그동안 아파트 등을 대규모로 지어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역부족 상태. 주택을 건설할 자금도 마땅치 않은 정부가 결국 부동산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다. 주택 매매가 가능하다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하면 소유주가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최근 쿠바 정부가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하는 이유는 단연 경제난 때문이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쿠바는 관광수입으로만 매년 20억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탓에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권력교체도 영향을 미쳤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1년 4월 마지막 직책이던 공산당 제1서기에서 물러났고,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후임 제1서기가 됨으로써 명실 공히 국가의 최고통치자 자리에 올랐다. 1959년 혁명을 통해 쿠바에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피델은 기네스북에 전 세계 역사상 최장기 집권(52년 통치)한 독재자로 기록됐다.
피델은 2006년 7월 장출혈로 건강이 악화된 이후 2008년 2월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49년간 국방장관을 해오던 라울에게 권력을 넘겼다. 85세인 피델은 여전히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피델의 성찰’이라는 비정기 칼럼을 쓰며 활동 중이다. 이미 여든을 넘긴 라울의 통치가 못 미더워서인지 평생의 혁명동지이자 심복인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82)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에게 당 제2서기직을 맡기기도 했다. 의사 출신인 벤투라 수석부의장은 이념을 관장해온 강경파다. 라울이 급진 개혁에 매진하지 않을까라는 피델의 염려를 반영한 인사인 셈이다.
‘쿠바의 중국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중국식 경제개혁정책을 선호해온 라울은 두 사람의 견제에도 실용주의 노선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라울이 전면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사회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고 천명한 이유 역시 다른 무엇보다 독재체제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정책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려고 쿠바 정부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초청했다.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제재조치 해제를 노리고 인권탄압과 장기 독재체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노림수다. 실제로 라울은 2011년 12월 23일 정치범을 포함해 죄수 2900명을 석방하고 사면했다.
베네딕토 16세가 3월 쿠바를 방문하면 교황으로서는 두 번째이자 14년 만이다. 1998년 1월 쿠바를 사상 처음 방문한 교황은 고(故) 요한 바오로 2세였다. 당시 피델은 교황의 방문에 앞서 정치범 101명을 석방했고 크리스마스를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흠모했던 피델은 2005년 그가 선종하자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그전까지 피델은 사제를 탄압하는 등 가톨릭과의 관계를 끊은 상태였으며, 로마 교황청 또한 그를 파문한 상황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이후 쿠바와 교황청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아직까지도 종교 자유는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내심 대미 관계 개선 희망
이 때문에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방문을 계기로 쿠바가 개혁정책을 가속화하고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를 바란다. 교황청 시각에서 볼 때 베네딕토 16세의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쿠바에서 가톨릭 부흥을 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쿠바는 그동안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가톨릭 교세가 크게 약화해온 국가다. 로마교황청은 공산혁명 이전에는 국민의 85%가 가톨릭 신자였지만 현재는 60%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앞으로 쿠바의 개혁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미국은 1961년 1월 3일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이듬해부터 포괄적인 경제제재 등 봉쇄정책을 취해왔다. 워싱턴의 역대 행정부는 눈엣가시인 피델을 제거하려고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해 암살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쿠바가 민주화와 개혁·개방정책을 과감하게 단행하지 않는 한 제재조치를 해제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이에 맞서 쿠바 정부도 반미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심지어 이번에 교황 방문을 계기로 단행한 대규모 사면에서 2009년 간첩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제외했을 정도다.
현재로서는 두 나라 관계가 가까운 시일 안에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 일각에서는 체 게바라와 함께 반미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피델이 사망해야 양국 관계가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경제개혁에 투입할 자금이 필요한 쿠바가 내심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음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쿠바 정부가 지난 50년간 계속돼온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피해만 975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월 22일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한 라울이 이 자리에서 ‘피델 사망 이후 쿠바의 미래’에 관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