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기 전의 디포리. 몸 전체가 은빛이고 등이 푸르다.
필자 집에서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건강에 안 좋아서가 아니다. 화학조미료 제조사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 주장하니 필자는 그 말을 믿는다. 단지 이 화학조미료 맛이 음식 맛을 많이 버려서다. 같은 감칠맛이라 해도 자연에서 비롯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 이를 쓰지 않는 것뿐이다. 또 질 좋은 음식재료를 사용하면 화학조미료 없이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낀다, 적어도 집에서는.
자연에서 얻는 감칠맛의 재료를 구입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쇠고기는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멸치와 다시마를 주로 쓴다. 이 두 재료는 질에 따라 가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좋은 것을 쓰고 싶은 욕망은 가득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늘 빠듯해 고민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이 필자와 같을 것이다.
다시마는 중간 크기 정도면 그런 대로 맛을 낸다. 그러나 멸치는 중간 크기 정도만으로는 감칠맛 나는 국물을 얻기 어렵다. 흔히 ‘다시용’이라고 파는 대멸의 경우 기름내가 너무 강하다. 자칫 묵은 것이라도 사면 그 기름내가 진동해 음식 맛을 다 버린다.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것은 흔히 ‘고주바’라고 일본어에서 온 이름 그대로 하는 부르는 중멸이다. 이 멸치는 국물용보다 볶음용으로 더 많이 쓰인다. 멸치로 국물을 낼 때 짧은 시간 끓인 뒤 멸치를 건져내라고 하는데, 중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쓴맛이 적기 때문이다. 중멸이 국물 내는 데 더없이 좋은 멸치긴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대멸에 비해 한참 높은 몸값을 부르니 시장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멸치 대용으로 최근 인기를 끄는 것이 디포리다. 멸치와 달리 몸의 폭이 넓고 제법 크다. 멸치와 마찬가지로 남녘 바다에서 잡히며 난대성 어종으로 가을에 주로 난다. 디포리라는 이름은 등쪽이 푸른데 ‘뒤가 파랗다’ 해서 붙은 것이다. 표준어는 밴댕이다. 흔히 서해안에서 나오는 반지(주로 회로 먹고 젓갈을 담근다)를 밴댕이라 잘못 말하는 탓에 표준어 밴댕이를 쓰면 큰 혼란이 생겨 그냥 디포리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이다.
남녘에서 이 디포리를 멸치 대용으로 쓴 역사는 길다. 멸치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쓰는 생선이었다. 전에는 하도 많이 잡혀 사료로나 썼다. 일부 지방에선 말린 디포리에 된장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강된장을 끓여내기도 한다. 오래 끓여도 쓴맛이 나지 않으니 이런 음식이 가능한 것이다. 된장에 푹 조린 디포리가 의외의 맛을 낸다. 이 디포리가 멸치 대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묘한 일이 생겼다. 가격이 멸치와 비슷해진 것이다. 국물용이니 중멸 수준은 아니고, 대멸과 거의 같은 가격에 팔린다. 수요가 넘쳐서인지 도매시장에는 수입 디포리도 나와 있다.
디포리의 장점은 앞서 말했지만 오래 끓여도 쓴맛이 없고 맛이 가볍다는 것이다. 멸치 국물은 약간 탁하고 무거운데, 멸치에 디포리를 섞으면 독특한 국물이 탄생한다. 중멸과 디포리의 조합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물 음식에 이 같은 새로운 재료가 유입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가격이 적당하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