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이 들듯 도시도 늙어간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집값 폭등을 잠재우려고 건설한 서울 인근 신도시가 늙어가는 중이다.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 격인 경기 성남시 분당을 예로 들어보자. 도시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1996년만 해도 주민등록상 분당 거주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4.8%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빠른 속도로 고령자 수가 증가하면서 2006년에는 그 비율이 7%를 넘어섰고, 2009년에는 7.9%에 달했다(그림1 참조).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7%를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다. 이 기준대로라면 분당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셈이다. 이젠 ‘신(新)’도시라는 말을 쓰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의 영향으로 신도시의 가구당 인구도 눈에 띄게 줄었다. 1996년 분당의 가구당 인구수는 평균 3.2명 수준이었지만, 2009년에는 2.76명까지 떨어졌다(그림2 참조). 이는 전셋값에 그대로 반영됐다. 분당 서현동을 보면, 50평형대와 60~70평형대 아파트의 전셋값에 큰 차이가 없다. 가족 수가 줄다 보니 넓은 집에 살면 관리비와 가사노동만 늘어날 뿐 별다른 혜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도시가 늙어가는 데 대해 일부에서는 일본처럼 ‘도심 회귀 현상’이 시작한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일본과 한국의 신도시 건설 배경이 유사하기 때문에 앞으로 신도시의 변화 과정도 일본과 유사하리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분석이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말이다. 당시 부동산 투기 열풍은 정말 끔찍했다. 경제개발에 따른 급속한 산업화와 7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로 주택 수요가 폭발하면서 서울과 지방 가릴 것 없이 집값이 폭등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국가적 에너지가 부동산 투기로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 집값 폭등은 서민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집주인이 전월세 가격을 더 받고자 기존 세입자를 억지로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오죽하면 “방 빼!”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을 까. 이때 집값을 안정시키려 절치부심하던 정부가 빼든 카드가 이름 하여 ‘수도권 5대 신도시 및 주택 200만호 건설’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주민이 신도시에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집값도 안정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신도시 건설 배경도 한국과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급속한 산업화로 팽창하는 도쿄 인구를 수용하려고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타마뉴타운’이었다. 타마뉴타운은 처음 개발할 때만 해도 교외의 넓고 쾌적한 주거환경 덕에 인기를 끌었다. 풍족한 녹지와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쾌적한 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일본인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주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도시 나이만 보더라도 이제 뉴타운보다 ‘올드타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하나 둘씩 도쿄로 떠나면서 도시는 노인 거주지로 변했다. 양로원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을 만큼 도시 전체가 양로원이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노인마저 의료시설과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쿄로 되돌아가면서 빈집이 늘고 집값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도심으로의 회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오래된 뉴타운’은 젊은 주민을 찾아보기 어려운 ‘노인 타운’이 됐다.
일본에서 ‘도심 회귀 현상’이 나타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이 증가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초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비싼 교통비도 문제다. 신도시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면 1시간 넘게 소요될 뿐 아니라, 하루 8시간 일해 받는 급여 중 1시간 분을 교통비로 반납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는 육아 문제 때문에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길 원한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탈산업화로 금융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늘면서 ‘도심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도심 지가가 하락하면서 리뉴얼이 용이해졌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리뉴얼이란 오래된 도시의 빈민가와 낙후지역을 재개발해 주거지 및 상업지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하는데, 도쿄의 경우 도심이 슬럼화하면서 교외지역보다 저렴한 지가와 임대료를 형성한 지역이 많아져 도심 재개발이 쉽게 이뤄졌다. 2000년대 들어 도쿄 도심 대형 아파트가 잇따라 저가에 분양되면서 시내에서 급행전철로 1시간가량 걸리는 신도시의 매력이 사라져버렸다. 과거 도심의 높은 지가 상승이 신도시를 잉태했다면, 이젠 지가 하락이 신도시로 이주한 주민의 도심 회귀를 부추기는 셈이다.
한국 신도시에서도 일본과 같은 도심 회귀 현상이 일어날까. 일본의 전철을 밟을 소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서울은 부동산값이 비싼 탓에 신도시 주민이 되돌아올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최근엔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도리어 도심 거주자가 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형편이다. 도심 회귀 현상이 본격화하려면 지금보다 집값이 훨씬 더 큰 폭으로 떨어져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임박했다는 점도 도심 회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문가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강남을 비롯한 도심에 거주한 이유가 직장과 자녀교육 때문이었다면 은퇴한 다음에도 굳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도심에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처럼 신도시 주민이 도심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고령자가 대거 서울로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신도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 젊은이의 이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사라지면 신도시는 고령자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한다. 고령자와 젊은이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곳이 은퇴자가 살기에 적합한 주거지가 아닐까.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집값 폭등을 잠재우려고 건설한 서울 인근 신도시가 늙어가는 중이다.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 격인 경기 성남시 분당을 예로 들어보자. 도시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1996년만 해도 주민등록상 분당 거주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4.8%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빠른 속도로 고령자 수가 증가하면서 2006년에는 그 비율이 7%를 넘어섰고, 2009년에는 7.9%에 달했다(그림1 참조).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7%를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다. 이 기준대로라면 분당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셈이다. 이젠 ‘신(新)’도시라는 말을 쓰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의 영향으로 신도시의 가구당 인구도 눈에 띄게 줄었다. 1996년 분당의 가구당 인구수는 평균 3.2명 수준이었지만, 2009년에는 2.76명까지 떨어졌다(그림2 참조). 이는 전셋값에 그대로 반영됐다. 분당 서현동을 보면, 50평형대와 60~70평형대 아파트의 전셋값에 큰 차이가 없다. 가족 수가 줄다 보니 넓은 집에 살면 관리비와 가사노동만 늘어날 뿐 별다른 혜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도시가 늙어가는 데 대해 일부에서는 일본처럼 ‘도심 회귀 현상’이 시작한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일본과 한국의 신도시 건설 배경이 유사하기 때문에 앞으로 신도시의 변화 과정도 일본과 유사하리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분석이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말이다. 당시 부동산 투기 열풍은 정말 끔찍했다. 경제개발에 따른 급속한 산업화와 7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로 주택 수요가 폭발하면서 서울과 지방 가릴 것 없이 집값이 폭등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국가적 에너지가 부동산 투기로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 집값 폭등은 서민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집주인이 전월세 가격을 더 받고자 기존 세입자를 억지로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오죽하면 “방 빼!”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을 까. 이때 집값을 안정시키려 절치부심하던 정부가 빼든 카드가 이름 하여 ‘수도권 5대 신도시 및 주택 200만호 건설’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주민이 신도시에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집값도 안정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신도시 건설 배경도 한국과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급속한 산업화로 팽창하는 도쿄 인구를 수용하려고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타마뉴타운’이었다. 타마뉴타운은 처음 개발할 때만 해도 교외의 넓고 쾌적한 주거환경 덕에 인기를 끌었다. 풍족한 녹지와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쾌적한 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일본인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주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도시 나이만 보더라도 이제 뉴타운보다 ‘올드타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하나 둘씩 도쿄로 떠나면서 도시는 노인 거주지로 변했다. 양로원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을 만큼 도시 전체가 양로원이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노인마저 의료시설과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쿄로 되돌아가면서 빈집이 늘고 집값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도심으로의 회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오래된 뉴타운’은 젊은 주민을 찾아보기 어려운 ‘노인 타운’이 됐다.
일본에서 ‘도심 회귀 현상’이 나타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이 증가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초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비싼 교통비도 문제다. 신도시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면 1시간 넘게 소요될 뿐 아니라, 하루 8시간 일해 받는 급여 중 1시간 분을 교통비로 반납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는 육아 문제 때문에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길 원한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탈산업화로 금융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늘면서 ‘도심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도심 지가가 하락하면서 리뉴얼이 용이해졌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리뉴얼이란 오래된 도시의 빈민가와 낙후지역을 재개발해 주거지 및 상업지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하는데, 도쿄의 경우 도심이 슬럼화하면서 교외지역보다 저렴한 지가와 임대료를 형성한 지역이 많아져 도심 재개발이 쉽게 이뤄졌다. 2000년대 들어 도쿄 도심 대형 아파트가 잇따라 저가에 분양되면서 시내에서 급행전철로 1시간가량 걸리는 신도시의 매력이 사라져버렸다. 과거 도심의 높은 지가 상승이 신도시를 잉태했다면, 이젠 지가 하락이 신도시로 이주한 주민의 도심 회귀를 부추기는 셈이다.
한국 신도시에서도 일본과 같은 도심 회귀 현상이 일어날까. 일본의 전철을 밟을 소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서울은 부동산값이 비싼 탓에 신도시 주민이 되돌아올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최근엔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도리어 도심 거주자가 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형편이다. 도심 회귀 현상이 본격화하려면 지금보다 집값이 훨씬 더 큰 폭으로 떨어져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임박했다는 점도 도심 회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문가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강남을 비롯한 도심에 거주한 이유가 직장과 자녀교육 때문이었다면 은퇴한 다음에도 굳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도심에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처럼 신도시 주민이 도심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고령자가 대거 서울로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신도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 젊은이의 이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사라지면 신도시는 고령자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한다. 고령자와 젊은이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곳이 은퇴자가 살기에 적합한 주거지가 아닐까.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