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3

..

흔들리는 유럽 “중국, 나 좀 도와줘!”

심각한 재정난 타개 유일한 구세주…대규모 국채 매입보다 ‘소비 강화’로 우회 지원할 듯

  • 동애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 myai2000@hanaif.re.kr

    입력2011-11-21 10: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흔들리는 유럽 “중국, 나 좀 도와줘!”

    2010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왼쪽)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이탈리아 총리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중국 문화의 해’ 기념식장에 참석해 단상에서 웃고 있다.

    ‘어제의 지배자가 미래 지배자의 도움을 기다리느라 목을 빼고 있는 형국.’ 8월 이후 그리스의 디폴트에 대한 우려가 고조된 이래 위기가 빠르게 확산된 유럽 국가의 모습은 사뭇 아이러니하다.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 이 지역 국가가 중국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것. 올해 상반기부터 유럽 국가 고위층은 빈번히 중국 베이징을 드나들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난 목적은 ‘상호 우호관계 추진’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유럽 국채를 추가로 매입해달라고 요청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중국의 태도는 모호하다. 중국 지도부 내부에서는 유럽 지원 참여 문제에 대해 여전히 격렬한 논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9월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유럽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해준다면 유럽 지원에 나설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중국의 외환보유고를 실제로 운영하는 외환관리국과 중국투자공사는 수익성과 리스크를 고려해 당분간 유럽 국채를 매입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명확히 했다. 10월에는 중국 정부의 유럽재정안정기금(ESEF) 투자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11월 중순 현재까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1960년대 중국은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자국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의 남미 국가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이후 대인관계뿐 아니라 국제관계 영역에서도 실용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점차 강해졌다. 결국 1960년대 같은 실리 없는 대규모 지원은 현재의 중국으로서는 선택 가능한 사항이 아니다. 중국이 유럽 지원에 나설지, 지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경제적 득실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긴밀해지는 중국-유럽 경제

    전 세계 수출품 공급자로서 중국의 구실이 확대된 이래 중국과 유럽의 경제관계는 점차 긴밀해졌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미국을 제치고 중국의 최대 수출지로 부상해 2010년에는 중국 총 수출액의 20%를 차지했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인 후로는 중국의 대(對)유럽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도 급증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2010년 유럽 국가에 대한 중국의 국채 이외 분야 투자는 348억 달러로, 대미(對美) 투자액인 281억 달러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특히 중국의 투자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위기국에서 크게 증가했다. 2010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탈리아를 방문해 양국 간 무역규모 목표를 2015년까지 1000억 달러로 늘리기로 조정했고, 이탈리아의 10개 상업 부문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같은 해 중국은 프랑스와도 228억 달러 규모의 상업협력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유럽 국채에 대한 투자도 이어졌다. 중국의 해외자산 보유액 가운데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해 현재 4분의 1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국채다. 자산 내용의 구체적인 구성은 불분명하지만 스페인과 그리스 등 위기국 국채를 지난해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서도 연초에 11억 유로 상당의 포르투갈 국채를 매입했고, 이는 일시적으로 유로화를 절상시키는 효과를 불러왔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긴밀해지는 중국과 유럽의 관계로 인해, 유럽이 경기침체에 빠질 경우 중국에 미칠 악영향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베이징이 유럽 재정위기를 방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중국이 우려하는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위기 장기화로 유로화 약세가 선을 넘을 경우 화폐체계가 다시 달러화 단일체계로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간 중국이 위안화의 위상을 강화하려고 기울여온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테고,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행보는 상당 부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외화자산 가치 감소 ‘베이징의 딜레마’

    문제는 중국이 유럽 구출에 나서려 해도 실질적인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위기예방(self-insurance)’ 구실을 강조하는 데다 단기외채 비중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설령 중국이 유럽 국채 매입에 나선다 해도 그 효과는 단기유동성 보충과 시장신뢰 회복 정도에 그칠 공산이 높다. 유럽의 재정문제는 이 정도로 해결될 성질이 아님을 중국이나 유럽국가 모두 잘 아는 것이다.

    더욱이 섣불리 나설 경우 중국 국내 정치적으로도 만만찮은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2010년 기준 중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430달러로 유럽연합 27개국 평균인 3만2732달러의 13%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유럽 지원 방안을 내놓을 경우 “왜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에 돈을 퍼주느냐”는 국민 대부분의 불만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추가적인 유럽 국채 매입을 불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해외 국채 보유와 관련해 베이징이 직면한 딜레마에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현재 3조2000억 달러 상당으로 세계 최대 규모. 지금까지 중국은 이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주로 미(美)국채를 매입해왔고, 현재 보유 중인 것만 1조1735억 달러로 전체 미국채의 26%나 된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약세가 시작되면서 중국은 이렇듯 엄청난 양의 미국채 가치가 하락하지 않을까 염려했고, 유로화 자산의 비중을 확대하는 등 외환보유액을 다각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만약 현재 시점에서 중국이 미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유럽 국채를 매입할 경우 이는 달러화 약세를 부추겨 중국의 외화자산 가치를 큰 폭으로 감소시킬 소지가 크다. 외화자산의 다각화는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보유자산의 가치를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이 달러화 자산의 가치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리스크가 높은 유럽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못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현재로서는 중국이 유럽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겠다고 나설 공산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실제로 유럽 구원투수로 나설 경우에는 오히려 실물 부문에서 투자를 확대하거나 무역량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지원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민간투자자의 대유럽 실물투자 촉진은 중국 정부가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 민간자본의 대외투자를 장려해왔고, 2010년 대유럽 비(非)국채 투자는 2009년의 2배 수준인 60억 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그동안 중국이 매입해온 유럽 자산이 주로 자원이나 에너지 같은 전략적 영역에 치중됐던 것에 비해, 앞으로는 물류, 제조기술 등 유럽 국가가 우위를 점한 분야에서도 협력 강화와 자산 매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처로

    또 다른 유력한 우회로는 유럽으로부터 수입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최근 중국 통상부 장관은 유럽 상품 수입을 확대해 구제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중국은 유럽에서 총 1100억 유로어치를 수입했는데, 이는 중국 전체 수입액의 12%를 차지하는 규모로 독일의 수출품이 그중 50%를 차지했다. 앞으로는 주로 농산품, 제약, 사치품 등의 수입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며, 유럽 여행 증가에 따라 중국 관광객의 현지 소비 또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려온 중국이 이제는 유럽을 위기에서 구해낼 ‘세계의 소비처’로 떠오르는 셈.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뒤바꾸어놓을 지구촌 경제판도의 또 다른 아이러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