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영풍문고에서 걸어서 20분. 동네서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을 겨우 하나 찾았다. 충무로 3가 ‘문향서점’은 16.5㎡(5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왼쪽에는 국내 서적, 오른쪽에는 외국 디자인 서적, 그리고 중앙에는 계산대가 있다. 몇 걸음 옮기기도 힘든 좁은 공간이다. 문향서점 주인 유해진 씨는 “국내 서적은 단골손님용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내 서적을 팔아서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손님들이 요청해 그나마 베스트셀러 위주로 국내 서적 몇 권을 들여온다.
동네서점의 추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10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규모 66㎡(20평) 미만의 동네서점은 2003년 2017개에서 2009년 1186개로 급감했다. 반면, 규모 1652㎡(500평) 이상의 대형서점은 2003년 20개에서 2009년 43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1만 원짜리 팔면 500원 남아
출판업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월 ‘이레’, 5월 ‘태동출판사’가 차례로 부도 처리됐고 ‘칼의 노래’를 출판한 중견 출판사 ‘생각의 나무’도 6월에 부도를 맞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신간 발행 종수는 2008년 4만3099종에서 2010년 4만291종으로 줄었으며, 발행 부수도 2008년에 비해 약 20만 부 감소했다. 출판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세서점과 출판업계는 이 같은 몰락의 원인으로 현재의 도서정가제를 지목한다. 도서정가제는 서점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한 제도다. 2003년부터 시행했으며, 2007년 한 차례 개정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의거해 발간한 지 18개월 이내 서적을 신간으로 정했으며, 신간의 경우 할인율과 마일리지를 각각 10% 이내로 제한한다.
영세서점 측의 말부터 들어보자.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동네서점으로선 현 도서정가제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보통 동네서점은 책을 많이 들여오지 않기 때문에 책이 팔리면 출판사에 돈을 주는 ‘위탁’ 방식을 채택한다. 자연스레 공급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동네서점의 공급 단가는 70~75% 선에서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할인율 10%와 마일리지 10%를 적용하면 동네서점은 5~10%의 마진을 보게 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1만 원짜리 책을 예로 들었다.
“정가가 1만 원인 책이 있다. 위탁 방식으로 공급받으니, 7500원은 출판사 몫이다. 그리고 대형서점과 경쟁하려고 10%를 할인한다. 요즘 마일리지를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마일리지도 10% 적용한다. 그럼 남는 것은 500원이다. 이 돈으로 임대료, 전기료, 카드수수료 등을 결제할 수 있겠나.”
출판업계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도서정가제와 관련 깊다고 지적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도서정가제의 문제로 가장 먼저 유통질서 혼란을 꼬집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려고 할인율을 최대로 설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이윤이 적어지니까 출판사 측에 공급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한다.”
갑을 관계에서 을인 출판사는 공급 단가를 낮추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상황이 이렇게 되니, 처음부터 정가를 높게 책정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인 양철북의 조재은 대표는 “출판물의 질이 떨어지고 신간을 출판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가격경쟁이 붙으면 출판사는 출판물 질보다 가격에 집착한다. 가격경쟁에서 할인 제한이 없는 구간 위주의 베스트셀러가 잘 팔리기 때문에 출판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간을 펴내려 하지 않는다.”
대형·인터넷서점 “단가 낮추기는 사실 무근”
이런 지적에 대해 대형서점은 “도서정가제를 통한 납품 단가 낮추기는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교보문고 측은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출판업계를 배려해 할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업체들과의 관계 때문에 공급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점 역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관계자는 “동네서점의 위탁 방식과 달리, 선금을 주고 대량 구입하는 매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절 방식을 채택하면 공급 단가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재고회전율을 감안해 특정 기간 내 많이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만이 매절 대상이다. 부당한 공급 단가 낮추기는 없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항변에 대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전임회장은 “현 도서정가제를 완전 도서정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실적인 여건때문에 완전 도서정가제 실시가 힘들다면, 출판일로부터 3년 이내의 도서만 완전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3년이 지난 이후에는 재조정가로 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측에서도 완전 도서정가제가 옳은 방향이지만, 현실 여건을 고려해 신간 및 구간 판매 할인율을 모두 10%로 묶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서점 측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알라딘 관계자는 “영세서점의 처지가 이해는 가지만, 과연 완전 도서정가제를 한다고 영세서점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인 만큼 정가제 외의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상품 가운데 예외적으로 도서에만 정가제가 있는 실정이다. 출판업계에서는 소비자가 가격을 보고 책을 사는 풍토를 만든 대형서점이 문제라고 하지만, 어떤 상품이든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책의 가격이 아닌 질을 보고 산다. 도서정가제 개정보다 책의 질을 높이는 것이 먼저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는 영세서점과 출판사 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문광부 관계자는 “서점 측의 반대 주장을 수용해 2003년 인터넷서점에만 부여했던 10% 할인율을 2007년 법 개정으로 일반 서점도 가능토록 했다”고 말했다.
“현재 허용되는 마일리지 10%는 공정거래법에 의거한 것이다. 공정거래법 소비자 경품 규제 조항에 나와 있다. 이 조항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경우 무제한 경품 제공이 허용되기 때문에 현행 10%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출판계와 영세서점들은 앞으로 도서정가제를 개정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 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동네서점의 추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10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규모 66㎡(20평) 미만의 동네서점은 2003년 2017개에서 2009년 1186개로 급감했다. 반면, 규모 1652㎡(500평) 이상의 대형서점은 2003년 20개에서 2009년 43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1만 원짜리 팔면 500원 남아
출판업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월 ‘이레’, 5월 ‘태동출판사’가 차례로 부도 처리됐고 ‘칼의 노래’를 출판한 중견 출판사 ‘생각의 나무’도 6월에 부도를 맞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신간 발행 종수는 2008년 4만3099종에서 2010년 4만291종으로 줄었으며, 발행 부수도 2008년에 비해 약 20만 부 감소했다. 출판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세서점과 출판업계는 이 같은 몰락의 원인으로 현재의 도서정가제를 지목한다. 도서정가제는 서점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한 제도다. 2003년부터 시행했으며, 2007년 한 차례 개정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의거해 발간한 지 18개월 이내 서적을 신간으로 정했으며, 신간의 경우 할인율과 마일리지를 각각 10% 이내로 제한한다.
영세서점 측의 말부터 들어보자.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동네서점으로선 현 도서정가제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보통 동네서점은 책을 많이 들여오지 않기 때문에 책이 팔리면 출판사에 돈을 주는 ‘위탁’ 방식을 채택한다. 자연스레 공급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동네서점의 공급 단가는 70~75% 선에서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할인율 10%와 마일리지 10%를 적용하면 동네서점은 5~10%의 마진을 보게 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1만 원짜리 책을 예로 들었다.
“정가가 1만 원인 책이 있다. 위탁 방식으로 공급받으니, 7500원은 출판사 몫이다. 그리고 대형서점과 경쟁하려고 10%를 할인한다. 요즘 마일리지를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마일리지도 10% 적용한다. 그럼 남는 것은 500원이다. 이 돈으로 임대료, 전기료, 카드수수료 등을 결제할 수 있겠나.”
출판업계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도서정가제와 관련 깊다고 지적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도서정가제의 문제로 가장 먼저 유통질서 혼란을 꼬집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려고 할인율을 최대로 설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이윤이 적어지니까 출판사 측에 공급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한다.”
갑을 관계에서 을인 출판사는 공급 단가를 낮추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상황이 이렇게 되니, 처음부터 정가를 높게 책정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인 양철북의 조재은 대표는 “출판물의 질이 떨어지고 신간을 출판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가격경쟁이 붙으면 출판사는 출판물 질보다 가격에 집착한다. 가격경쟁에서 할인 제한이 없는 구간 위주의 베스트셀러가 잘 팔리기 때문에 출판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간을 펴내려 하지 않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2010년 10월 31일 폐업한 부산 남포동 문우당서점(위부터).
이런 지적에 대해 대형서점은 “도서정가제를 통한 납품 단가 낮추기는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교보문고 측은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출판업계를 배려해 할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업체들과의 관계 때문에 공급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점 역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관계자는 “동네서점의 위탁 방식과 달리, 선금을 주고 대량 구입하는 매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절 방식을 채택하면 공급 단가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재고회전율을 감안해 특정 기간 내 많이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만이 매절 대상이다. 부당한 공급 단가 낮추기는 없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항변에 대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전임회장은 “현 도서정가제를 완전 도서정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실적인 여건때문에 완전 도서정가제 실시가 힘들다면, 출판일로부터 3년 이내의 도서만 완전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3년이 지난 이후에는 재조정가로 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측에서도 완전 도서정가제가 옳은 방향이지만, 현실 여건을 고려해 신간 및 구간 판매 할인율을 모두 10%로 묶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서점 측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알라딘 관계자는 “영세서점의 처지가 이해는 가지만, 과연 완전 도서정가제를 한다고 영세서점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인 만큼 정가제 외의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상품 가운데 예외적으로 도서에만 정가제가 있는 실정이다. 출판업계에서는 소비자가 가격을 보고 책을 사는 풍토를 만든 대형서점이 문제라고 하지만, 어떤 상품이든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책의 가격이 아닌 질을 보고 산다. 도서정가제 개정보다 책의 질을 높이는 것이 먼저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는 영세서점과 출판사 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문광부 관계자는 “서점 측의 반대 주장을 수용해 2003년 인터넷서점에만 부여했던 10% 할인율을 2007년 법 개정으로 일반 서점도 가능토록 했다”고 말했다.
“현재 허용되는 마일리지 10%는 공정거래법에 의거한 것이다. 공정거래법 소비자 경품 규제 조항에 나와 있다. 이 조항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경우 무제한 경품 제공이 허용되기 때문에 현행 10%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출판계와 영세서점들은 앞으로 도서정가제를 개정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 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