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이름을 날린 허재(46) 감독. 그는 꿈의 무대라는 올림픽에서 영욕을 모두 맛봤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선 선수 대표 선서를 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선 후배 선수의 생일을 챙겨주느라 선수촌을 이탈해 술집에 갔다가 홍역을 치렀다. 1999년 30대 중반에 대표팀에 뽑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을 노렸으나 예선 탈락의 비운을 겼었다.
이제 허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에 도전하고 있다. 9월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야 성취할 수 있는 목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홈 텃세가 예상되는 중국뿐 아니라 체격 조건이 좋은 중동세의 벽도 높다. 자칫 결과가 나쁠 경우 그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고독한 자리다. 험난한 여정에서 허 감독이 든든한 동반자로 꼽는 선수가 있다. 7월 말 막차로 대표팀에 합류한 귀화 혼혈 선수 문태종(36·전자랜드)이다.
9월 아시아 선수권 우승이 목표
문태종은 1975년 12월 1일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났다. 주한 미공군에서 복무하던 아버지 토미 리 스티븐슨(58) 씨와 부산 출신 어머니 문성애(56) 씨의 첫아들인 그는 이듬해 부모님을 따라 미국 워싱턴으로 갔다.
세 살 터울의 동생 태영과 어려서부터 농구를 즐겼다. 집 뒤뜰에 설치한 농구대가 이들의 놀이터였다. 동생과 치열하게 부딪치며 농구 실력을 키운 그는 리치먼드대를 거쳐 미국프로농구(NBA) 입단을 노렸으나 당시 NBA 파업 여파로 프랑스리그에 진출한 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거쳤다. 세르비아리그에서 연봉 30만 달러를 받던 그는 어머니 나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생각에 2010년 국내 프로농구의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성을 따 태종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하프코리안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전자랜드의 지명을 받았다. 1년 먼저 국내 프로농구에 입성해 득점왕까지 올랐던 태영을 능가하는 기량을 지녔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문태종은 흰색 헤어밴드에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와 태극기를 새기고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평균 17.4득점, 5.1리바운드, 3.2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전자랜드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1억 원이던 그의 연봉은 다음 시즌 4억6000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역대 최고 인상률이다.
허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악인 7위를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렇게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든 데는 슈터 부재 탓이 컸다. 한국 농구는 전통적으로 외곽 슈터가 강했다. 신장의 열세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슛도사’를 앞세워 만회했다. 이충희, 김현준, 문경은이 대표적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승리 공식은 끈끈한 수비와 지연 공격으로 경기 막판까지 접전을 펼치다, 종료 직전 결정적인 3점슛을 작렬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렇다 할 슈터를 찾기 힘들었다. 외국인 선수가 활개를 치면서 외곽 플레이보다 골밑 전술이 대세를 이룬 것도 영향을 줬다. 허 감독은 방성윤에게 큰 기대를 품었다. 2009년 대표팀 감독 재임 당시 그는 “방성윤은 한국 농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며 관심을 기울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까지 받은 방성윤은 부상 악령에 시달리다 코트를 떠났다.
2년 만에 다시 대표팀을 맡게 된 허 감독은 누구보다 문태종의 가세를 학수고대했다. 가드 양동근(모비스)이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김주성(동부)과 하승진(KCC)이 버틴 골밑도 정상궤도에 올랐기에 슈터 부분만 해결하면 누구와도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허 감독이 이끄는 KCC는 2010~2011 프로농구 정규시즌에서 전자랜드에 상대전적 1승5패로 크게 뒤졌다. 전자랜드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을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문태종이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해결사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문태종은 7월 21일 LG에서 뛰는 태영과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대표선수로 허 감독의 낙점을 받았다. KCC 가드 전태풍, 삼성 포워드 이승준과 태영도 거론됐지만, 1명만 선발 가능한 귀화 혼혈선수 대표 자리는 문태종의 차지였다. 그는 자신의 선발 배경에 대해 “클러치 슈터의 능력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폭발적 공격력으로 ‘코리안 해피 엔딩’
경기 용인시 KCC 체육관에서 가진 대표팀 훈련에 합류한 문태종은 시즌 종료 후 쉰 탓에 체력이 평소 60~70%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는 프로팀, 유니버시아드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실력파 본색을 서서히 드러냈다. 결정적 공격력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빅맨들과의 2대 2 플레이를 통해 골밑까지 파고들다 동료들에게 절묘한 패스까지 연결했다.
평소 선수 칭찬에 인색한 허 감독은 문태종에 대해 “기대 이상이라 만족스럽다. 정말 농구를 잘한다. 슛이 예술이다. 패스도 좋다. 심성도 착하고 성실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문태종은 8월 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막한 윌리엄 존스컵 국제농구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 나섰다. 말레이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15점을 터뜨리며 허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문태종은 유럽 리그에서 위력을 떨친 실력을 앞세워 아시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보인다. 탄력이 뛰어나고 슈팅 타이밍이 빠르기에 국내 슈터의 발목을 잡았던 장신 상대 수비수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체력과 수비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압박 수비에 시달리면 경기 막판 스피드가 눈에 띄게 떨어질 수 있다. 그의 합류로 대표팀의 골밑 약화는 불가피해졌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데 이어 대표팀에도 발탁된 문태종은 “꿈을 꾸는 것 같다.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 올림픽에도 정말 가고 싶다. 어머니는 런던행 비행기표를 미리 사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문태종. 그의 코리안 드림은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제 허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에 도전하고 있다. 9월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야 성취할 수 있는 목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홈 텃세가 예상되는 중국뿐 아니라 체격 조건이 좋은 중동세의 벽도 높다. 자칫 결과가 나쁠 경우 그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고독한 자리다. 험난한 여정에서 허 감독이 든든한 동반자로 꼽는 선수가 있다. 7월 말 막차로 대표팀에 합류한 귀화 혼혈 선수 문태종(36·전자랜드)이다.
9월 아시아 선수권 우승이 목표
문태종은 1975년 12월 1일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났다. 주한 미공군에서 복무하던 아버지 토미 리 스티븐슨(58) 씨와 부산 출신 어머니 문성애(56) 씨의 첫아들인 그는 이듬해 부모님을 따라 미국 워싱턴으로 갔다.
세 살 터울의 동생 태영과 어려서부터 농구를 즐겼다. 집 뒤뜰에 설치한 농구대가 이들의 놀이터였다. 동생과 치열하게 부딪치며 농구 실력을 키운 그는 리치먼드대를 거쳐 미국프로농구(NBA) 입단을 노렸으나 당시 NBA 파업 여파로 프랑스리그에 진출한 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거쳤다. 세르비아리그에서 연봉 30만 달러를 받던 그는 어머니 나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생각에 2010년 국내 프로농구의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성을 따 태종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하프코리안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전자랜드의 지명을 받았다. 1년 먼저 국내 프로농구에 입성해 득점왕까지 올랐던 태영을 능가하는 기량을 지녔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문태종은 흰색 헤어밴드에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와 태극기를 새기고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평균 17.4득점, 5.1리바운드, 3.2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전자랜드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1억 원이던 그의 연봉은 다음 시즌 4억6000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역대 최고 인상률이다.
허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악인 7위를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렇게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든 데는 슈터 부재 탓이 컸다. 한국 농구는 전통적으로 외곽 슈터가 강했다. 신장의 열세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슛도사’를 앞세워 만회했다. 이충희, 김현준, 문경은이 대표적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승리 공식은 끈끈한 수비와 지연 공격으로 경기 막판까지 접전을 펼치다, 종료 직전 결정적인 3점슛을 작렬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렇다 할 슈터를 찾기 힘들었다. 외국인 선수가 활개를 치면서 외곽 플레이보다 골밑 전술이 대세를 이룬 것도 영향을 줬다. 허 감독은 방성윤에게 큰 기대를 품었다. 2009년 대표팀 감독 재임 당시 그는 “방성윤은 한국 농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며 관심을 기울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까지 받은 방성윤은 부상 악령에 시달리다 코트를 떠났다.
2년 만에 다시 대표팀을 맡게 된 허 감독은 누구보다 문태종의 가세를 학수고대했다. 가드 양동근(모비스)이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김주성(동부)과 하승진(KCC)이 버틴 골밑도 정상궤도에 올랐기에 슈터 부분만 해결하면 누구와도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허 감독이 이끄는 KCC는 2010~2011 프로농구 정규시즌에서 전자랜드에 상대전적 1승5패로 크게 뒤졌다. 전자랜드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을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문태종이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해결사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문태종은 7월 21일 LG에서 뛰는 태영과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대표선수로 허 감독의 낙점을 받았다. KCC 가드 전태풍, 삼성 포워드 이승준과 태영도 거론됐지만, 1명만 선발 가능한 귀화 혼혈선수 대표 자리는 문태종의 차지였다. 그는 자신의 선발 배경에 대해 “클러치 슈터의 능력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폭발적 공격력으로 ‘코리안 해피 엔딩’
경기 용인시 KCC 체육관에서 가진 대표팀 훈련에 합류한 문태종은 시즌 종료 후 쉰 탓에 체력이 평소 60~70%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는 프로팀, 유니버시아드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실력파 본색을 서서히 드러냈다. 결정적 공격력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빅맨들과의 2대 2 플레이를 통해 골밑까지 파고들다 동료들에게 절묘한 패스까지 연결했다.
평소 선수 칭찬에 인색한 허 감독은 문태종에 대해 “기대 이상이라 만족스럽다. 정말 농구를 잘한다. 슛이 예술이다. 패스도 좋다. 심성도 착하고 성실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문태종은 8월 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막한 윌리엄 존스컵 국제농구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 나섰다. 말레이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15점을 터뜨리며 허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문태종은 유럽 리그에서 위력을 떨친 실력을 앞세워 아시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보인다. 탄력이 뛰어나고 슈팅 타이밍이 빠르기에 국내 슈터의 발목을 잡았던 장신 상대 수비수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체력과 수비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압박 수비에 시달리면 경기 막판 스피드가 눈에 띄게 떨어질 수 있다. 그의 합류로 대표팀의 골밑 약화는 불가피해졌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데 이어 대표팀에도 발탁된 문태종은 “꿈을 꾸는 것 같다.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 올림픽에도 정말 가고 싶다. 어머니는 런던행 비행기표를 미리 사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문태종. 그의 코리안 드림은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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