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6주간 신병 훈련을 마친 해병대 병사를 면회 온 가족들.
“참 나! 말귀를 못 알아듣나, 동문서답하시네. 다시 물을게요.”
당신이 민원창구에 앉은 직원이라면 이렇게 짜증 내는 민원인에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1번 : 화를 내며 “말귀 못 알아들은 사람이 누군데 어디서 큰소리야!”라고 받아친다.
2번 : 딴청 피우다가 마지못해 응대한다.
3번 :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재차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떤 기관의 민원창구인지에 따라 반응이 다를 것이다. 백화점이라면 3번 같은 풍경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기관이라면? 그것도 군대라면? 대부분 1번이나 2번의 상황을 떠올릴 것이다.
해병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인함’ 그리고 ‘사나이 정신’이다. 좋은 말로 하면 ‘멋있다’지만, ‘거칠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니 해병대에 찾아간 민원인이 짜증을 낸다면 당연히 거친 응대가 돌아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과 소통해야 강한 해병 가능”해병대 교육훈련단(이하 교훈단)의 대민 서비스는 연일 화제다. 5월 말 해병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민원인이 “훈련병에게 보낸 우편이 언제 전달되느냐”고 물었다. 곧바로 교훈단 교육연대장 한상배 대령이 ‘답글’을 올렸다. “월·수·금 우편물을 수령해 훈련병에게 전달합니다.” 잠시 뒤 그 민원인이 다시 질문을 올렸다. “제가 이해를 못한 건지 동문서답하신 건지. 제가 물어본 것은…, 무. 슨. 요. 일. 훈련병에게 전달되느냐는 겁니다.”
6주간 신병 훈련을 마친 해병대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는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누가 누굴 보고 ‘동문서답’이라는 건가!” 라며 불쾌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연대장인 대령! 그러나 예상을 깨는 연대장의 답글이 잠시 뒤 다시 올라왔다. “월·수·금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류 민간회사 민원창구에서나 봄직한 풍경이다.
교훈단은 해병대에 입대한 신병, 부사관후보생, 사관후보생 등을 양성교육하고 간부를 대상으로 보수교육을 하는 곳이다. 특히 매달 두 기수씩 입소하는 신병을 훈련하는 일에 가장 신경 쓴다. 가족을 막 군대 보낸 가정의 민원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신병이 입대하면 교훈단 홈페이지에는 “면회는 언제 되느냐” “소포를 보내도 되느냐”는 등 소소한 질문이 폭주한다. 새 기수가 들어올 때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거의 실시간으로 민원 처리민원은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 연대장과 신병대대의 정병호, 이재우, 양문수 대대장 등 교훈단 최고 간부가 실명을 밝히고 처리한다는 점. 장성인 교훈단장, 차동길 준장이 직접 답글을 올리기도 한다. 군 장성이 민원 응대를 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지만 차 준장은 900자가 넘는 답변을 직접 작성해 올린 일도 있다. 민원인(훈련병 가족)과 교훈단 간부들이 지위 및 계급을 떠나 대등한 처지에서 소통하는 것이다.
차 준장은 “부모들과 소통을 잘해야 훈련병 양성 임무도 성공한다. 그래서 지휘관부터 적극적으로 민원에 답하도록 권한다. 중간 참모가 응답할 수도 있지만 아들을 책임진 지휘관이 답변해줄 때 부모가 더욱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 차동길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당당하고 싸우면 이기는 신세대 해병 양성”
| ‘강하고 멋진 사나이’를 동경하는 젊은이가 해병대에 몰린다고 한다. 과연 해병대가 양성하고자 하는 해병은 어떤 모습인가. 해병대 교훈단장 차동길 준장에게 들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지향(指向)하는 해병상은 무엇인가.
“외부에서 볼 때 해병대의 이미지는 강하고 담대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정도가 지나친 면도 있을 수 있다. 4월 28일 교육훈련단장으로 부임했다. 교훈단은 자유분방한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곳인데, 그 군인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한다. 교훈단 간부들에 요구하는 것은 품격 높은 해병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해병을 만들자는 것이다.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로봇과 같은 군인이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과 행동의 당당함을 갖춘 해병이 돼야 한다. 부임 이후 거의 매일 이런 요구를 하고 있다.
훈병 입장에선 교관들이 무서운 호랑이다. 그 호랑이 앞의 훈병들은 주눅 들고 혼이 빠진 로봇이 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돼선 안 된다. 무서운 호랑이인 교관들 앞에서도 당당한 해병을 만들어야 한다. 장군인 내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는 당당한 해병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는 그런 해병이 품격 높은 해병을 지향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의 의지도 의지이지만 교관과 간부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
해병대 하면 ‘강한 군대’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강군을 강조하다보면 군기사고 등의 우려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신병 교육 훈련에서는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
“해병대 장군으로서 이 부분 많이 생각했다. 해병대 사령관께서도 내가 부임할 때 한 가지 지시성으로 요구한 것이 해병대 구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참모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수 십 년 동안 이 문제 해결 위해 모든 지휘관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왜 해결 안 되는가, 우리 국민성의 문제냐, 우리의 접근 방식이 잘 못된 것인가? 나는 두 번째로 본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드러난 현상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뿌리를 찾아내야 한다. 구타 문제가 근원적으로 어디서 시작됐는가를 찾아야 한다.
첫째, 국민이 해병대를 보는 시각에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강한 군대는 두들겨 패고 그래서 그렇게 됐다고 보는 것이다. 해병대 지원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군에 들어오기 전부터 학습효과가 돼 있다. 이게 첫 번째 문제인데, 해병대 합격 결정이 되면 바로 가정 통신문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가 엄청난 노력을 한다. 또 실제로 과거 행태가 많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한건도 없어야 한다. 그런 토양 자체를 바꾸려면 부모 및 주의의 협조가 필요하다. 훈병들에게, 해병들에게 해병대는 그런 군대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켜줘야 한다.
둘째, 입대하면 이제 우리의 문제다. 훈병 교육훈련 방식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일방향 소통식 교육이 문제다. 속된 표현으로 하면 까라면 까라는 식, 군소리 말고 하라면 하라는 식, 교관 주도하의 이런 일방향 교육방식이 갖는 폐단은 훈병들에게 ‘역시 입대하기 전에 들었던 대로야, 군대는 하라면 하라는 거야’ 이렇게 각인이 되면서 자기가 선임이 됐을 때 후임을 그리 대하게 한다는 것이다.
훈병은 연령대로 보면 이성보다 감성에 의해 행동이 나오는 시기다. 제가 군 생활 30년 넘게 한 경험으로 보면 중대장까지도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나온다. 감성에 의해 행동할 시기에 군 특유의 통제 문화가 결합되면 구타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신병 교육방식을 쌍방향 소통방식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교관은 반드시 목적과 이유를 설명해 주도록 하고 있다. 훈병들에게 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반드시 질문을 유도하도록 한다. 그래서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훈병의 의사표현을 들어줘야 한다. 하라면 하라는 식이 되면 곤란하다.
새로운 지휘 기법을 발휘해야 한다. 조직을 열십(十)자로 보면, 세로는 통제와 자율이고 가로는 개방과 폐쇄라고 할 때 군대는 그 특성상 통제적이고 폐쇄적이다. 그런 조직 속에서 과연 어떤 지휘 기법을 써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통제되고 폐쇄된 조직일수록 반대로 개방과 자율의 지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부대 병사들이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는 것이 병폐로 지적됐다고 치자. 이 경우, 모자를 쓰지 않으면 영창 보낸다고 하는 것보다 모자를 제대로 쓰면 휴가 보내준다는 식으로 개방과 자율을 지향하는 지휘 기법이 필요하다.
군에는 소원 수리함이라는 게 있다. 병사는 그걸 바라보는 순간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게 돼 있다. 선임을 고발하는 것 같아 이름 쓰기가 어렵다.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보정하기 위해 소원 수리함을 화장실에 갖다 놓고는 ‘아무도 눈치 보지 말고 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풍토에서 자란 사람은 결국 통제와 폐쇄의 방향으로 간다.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건 결국 정정당당하지 못한 일을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후임들은 더 많은 피해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소원 수리함을 칭찬함으로 바꾸면 부대가 긍정적인 문화로 바뀔 것이다. 선임들이 후임에게 자기 칭찬하는 글 써 넣으라고 강요할 수 있다. 그런 부작용이 있어도 좋다. 속여 봤자 한 두 번이지 몇 번을 속이겠느냐. 통제와 폐쇄의 특성을 갖는 조직일수록 지휘 기법은 개방과 자율을 지향해야 건전한 부대 운영이 가능하다.
강한 군대는 강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내가 왜 해병이 돼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스스로 동참해야 진정한 강한 군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할 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다니게 한다. 나라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에서도 해병대 인권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해병 가족이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을 신병 교육에 어떻게 적용하는가.
“양성교육(민간인을 군인으로 전환시키는 과정)부터 해병대는 구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신념화 시킬 필요가 있다. 제가 온 이후는 신병에게 구호를 제창하게 한다. ‘해병은 해병대의 명예를 욕되게 하지 않는다, 해병은 적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해병은 약자를 보호하고 전우를 상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훈병들에게 수료식에서 선서하게 하고 교관들도 선서하게 한다. 이건 훈병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건 우리 부대 간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구타나 강압이 없는 해병대가 무슨 해병대냐는 얘기도 한다.
“분명한 건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내 아들만 빼고’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모두 자기 아들 건강하게, 그리고 씩씩한 남자로 전역하길 바란다. 훈련단 들어온 해병들은 분명히 처음 지원할 때는 도전 정신 갖고 지원했지만 여기선 이왕이면 좀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지휘관은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해병을 만들고자 한다. 그 3자가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게 다르지만 사실은 다 이뤄야 할 목표다. 그래서 상호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부모도 지휘관의 목표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할 것이고 지휘관도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저 자신 해병대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훈병 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직접 답도 쓰고, 참모에게 질문 사항 알아보라고 지시도 하고 한다.”
군 장성이 직접 답글을 올리는 것은 전에 보지 못한 것 같다.
“(웃음) 부모들의 의문에 대해 지휘관이 직접 설명하도록 지시하고 권장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기 아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답글을 써 주는 것이 신뢰도 높다. 참모가 대신 할 수도 있지만 가능한 해당 지휘관이 직접 답글을 쓰도록 하고 있다.”
군의 대민 소통에 대해 특별한 철학이 있는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군은 존립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주둔지 인근 지역에 대민 사업을 많이 한다고 해서 신뢰를 받게 되는가. 저는 그런 대민사업도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군이 부하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국민이 군을 신뢰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갔다 온다. 그런데 많은 분이 군대생활 당시의 부대 지휘관을 신뢰하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시각으로 군을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부하가 상관을 신뢰하면 그 부하는 제대해도 군을 신뢰한다. 그들이 그 신뢰의 경험담을 말하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아간다. 해병대 가서 얻어맞은 경험이 있으면 제대해도 그 경험담을 말할 것이다. 그 얘기가 계속된다면? 이제부터 신병들이 변화된 군 생활을 하면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경험담을 부모와 후임에게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그 신병 부모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해병대는 온 정열을 부하의 신뢰를 받는 데 쏟을 필요가 있다.
옛날의 해병과 지금의 신병을 비교하면 어떠한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누가 뭐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해병이 강하다는 것이다. 옛날 선배들이 엄청 얻어 맞고 했다고 하는데 지금 신병들도 때리면 맞을 수 있다. 못 맞는 아이들이 아니다. 옛날 해병을 욕되게 하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 때는 학창 시절이 군대와 유사한 문화가 있었다. 교복, 학교 규율부, 교련 등 규율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군대 적응이 빨랐다. 그러나 지금 신세대는 통제 당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군대에 들어온다. 처음 통제문화에 접하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맨 날 휴대폰 문자하고, 인터넷 하던 아이들이 세상과 갑자기 단절됐을 때 그 심리적 충격은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감성대로 행동하기를 방치하지 않는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그래서 저는 요즘 신병이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육체적으로 연약해도 강하다고 하지 않느냐. 그것처럼, 자신을 억제하는 것만큼 강한 건 없다고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