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출판시장을 젊은 여성작가들이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사람을 죽여 시체까지 먹었다는 ‘지존파’가 등장하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바로 그해였다. 산업화시대에는 정상을 향해 무조건 달리는 남성적 사고가 통했지만, 지식정보화시대에는 거미집처럼 얽힌 무수한 사건을 통합하는 여성적 사고가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공지영, 신경숙, 최영미 같은 젊은 감각의 여성작가(시인)가 그해를 주도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스타 자리에 오른 공지영은 장편소설 ‘고등어’와 창작집 ‘인간에 대한 예의’를 통해 청춘의 시대적 고뇌를 도전적으로 풀어놓았으며, ‘풍금이 있던 자리’로 문학적 위상을 다진 신경숙은 장편소설 ‘깊은 슬픔’을 통해 남성 중심의 현실에서 상처받는 수동적 여성상을 문체의 힘으로 잘 그려냈다. 최영미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입 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어느 놈하고 였더라/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객쩍은 욕망에 꽃을 달아줬던 건”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등의 거침없는 성적 표현으로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한 번 터진 봇물은 거침이 없었다. 1995년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여성들의 에세이가 상종가를 쳤다. 가정파탄 위기를 극복하고 화가로 거듭난 이정순의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 방송 MC인 허수경이 자신의 애환을 담은 ‘미소 한 잔 눈물 한 스푼’, 김일성 사망과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예언한 심진송의 ‘신이 선택한 여자’, ‘타임’지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선정된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 김진애의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가 서점 판매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출판시장에서는 ‘잘나가는’ 여성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한 여성이 저마다의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 대중의 선택을 받았던 것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한비야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 저자로 우뚝 선 가운데 워킹우먼, 알파걸, 골드미스 등 잘나가는 여성이 두각을 나타냈다. 드라마에서 천추태후나 선덕여왕, 미실 등이 주목받았던 것처럼.
하지만 공황 수준의 위기가 그 피해를 여성에게 고스란히 떠넘긴 탓인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성이 쓴 책은 살아남기 위한 매뉴얼이나 억압받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변변한 화제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기를 끄는 것은 투병 끝에 작고한 박완서, 장영희와 여전히 투병 중인 이해인의 책 정도다. 소설 속 주인공 또한 고난을 겪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는 실종됐고, ‘덕혜옹주’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비운의 여성일 뿐이다.
최근 신정아는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4001’(사월의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필로 학위를 받았다면서도 학력 위조는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 책에서 큐레이터로서의 전문성과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매우 구체적인 정황들을 제시했지만, 주관적 자기 기억에 따른 확대 해석이나 자의적 해석으로 타인을 공격해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게 만든다. 동일한 사실이 다르게 적시된 경우도 여러 차례다. 한때 사랑했다는 사람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저자가 과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책은 감동을 주지 못해 단명할 수밖에 없다.
공지영과 신경숙은 여전히 한국 소설의 양두마차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비야에 버금가는 여성 에세이스트는 언제 다시 등장할까. 새 인물은 진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스타 자리에 오른 공지영은 장편소설 ‘고등어’와 창작집 ‘인간에 대한 예의’를 통해 청춘의 시대적 고뇌를 도전적으로 풀어놓았으며, ‘풍금이 있던 자리’로 문학적 위상을 다진 신경숙은 장편소설 ‘깊은 슬픔’을 통해 남성 중심의 현실에서 상처받는 수동적 여성상을 문체의 힘으로 잘 그려냈다. 최영미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입 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어느 놈하고 였더라/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객쩍은 욕망에 꽃을 달아줬던 건”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등의 거침없는 성적 표현으로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한 번 터진 봇물은 거침이 없었다. 1995년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여성들의 에세이가 상종가를 쳤다. 가정파탄 위기를 극복하고 화가로 거듭난 이정순의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 방송 MC인 허수경이 자신의 애환을 담은 ‘미소 한 잔 눈물 한 스푼’, 김일성 사망과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예언한 심진송의 ‘신이 선택한 여자’, ‘타임’지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선정된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 김진애의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가 서점 판매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출판시장에서는 ‘잘나가는’ 여성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한 여성이 저마다의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 대중의 선택을 받았던 것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한비야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 저자로 우뚝 선 가운데 워킹우먼, 알파걸, 골드미스 등 잘나가는 여성이 두각을 나타냈다. 드라마에서 천추태후나 선덕여왕, 미실 등이 주목받았던 것처럼.
하지만 공황 수준의 위기가 그 피해를 여성에게 고스란히 떠넘긴 탓인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성이 쓴 책은 살아남기 위한 매뉴얼이나 억압받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변변한 화제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기를 끄는 것은 투병 끝에 작고한 박완서, 장영희와 여전히 투병 중인 이해인의 책 정도다. 소설 속 주인공 또한 고난을 겪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는 실종됐고, ‘덕혜옹주’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비운의 여성일 뿐이다.
최근 신정아는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4001’(사월의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필로 학위를 받았다면서도 학력 위조는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 책에서 큐레이터로서의 전문성과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매우 구체적인 정황들을 제시했지만, 주관적 자기 기억에 따른 확대 해석이나 자의적 해석으로 타인을 공격해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게 만든다. 동일한 사실이 다르게 적시된 경우도 여러 차례다. 한때 사랑했다는 사람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저자가 과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책은 감동을 주지 못해 단명할 수밖에 없다.
공지영과 신경숙은 여전히 한국 소설의 양두마차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비야에 버금가는 여성 에세이스트는 언제 다시 등장할까. 새 인물은 진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