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내세운 ‘무상복지’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 또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민주당 측 인사들은 “실현 가능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정반대다.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거나 폄하한다.
차기 대권주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산층을 더 힘들게 하는 세금폭탄 복지’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민주당은 무차별적 공짜 복지에 소요되는 비용이 16조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 2년 예산인 최소 40조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었다.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재원조달 기획단’ 단장인 이용섭 의원은 “조세 부담률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세금 신설이나 급격한 증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같은 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을 주장한다. 핵심은 순자산 30억 원 이상인 상위 0.58% 개인과 1조 원 이상의 기업에 매년 부유세를 거둬 13조3000억 원을 확보하고, 상위 10% 고소득자에게 복지목적세를 부과하면 10조 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쟁은 계속된다. 무상복지가 가능한가,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무상복지의 끝은 어디인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쇼인가, 아니면 심사숙고 끝에 나온 국민을 위한 복지정책인가. 물음은 끝이 없고 명쾌한 답은 없다. 이러한 무상복지 논쟁을 인간의 도덕 발달 단계와 비교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무상복지 큰소리에도 답은 없어
미국의 심리학자 로런스 콜버그는 인간의 도덕 발달이 3단계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관습 전 수준’으로 벌(罰)과 복종,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따른 상벌에 따라 도덕이 발달한다. 어린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면 부모님이 야단을 치고, 친구와 사이좋게 놀았다면 칭찬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올바른 도덕적 행동을 익히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부모의 훈육과 가르침에 의해 올바른 행동을 심어나갈 수 있다.
두 번째는 ‘관습 수준’으로 상호 간의 조화와 권위, 사회적 규칙에 따른 도덕 발달을 보인다. 예컨대 초등학교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지 말라’는 것을 배운 아이는 열심히 규칙을 따른다. 따라서 부모님이 급한 일 때문에 빨간불인데도 길을 건너려고 한다면, 오히려 아이가 말리고 제지할 것이다.
세 번째는 ‘관습 후 수준’이다. 개인의 권리와 보편적 윤리가 강조되면서 도덕 발달을 이룬다. 앞서 횡단보도 사례에서 만일 동생이 건너편에서 다친 채 울고 있다면, 비록 빨간불이라 할지라도 먼저 건너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세 번째 도덕 발달 수준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개인의 가치관, 특성 그리고 상황적인 특수성에 따라 판단과 행동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가령 길 건너 울고 있는 동생이 얼마만큼 다쳤는지에 대한 판단, 자동차가 달려오는지 혹은 교통경관이 근처에 있는지의 여부, 자신이 위험 또는 곤경에 처할 가능성에 대한 판단 등 여러 요인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관습 수준’의 도덕 발달에 따라 행동하다가 ‘관습 후 수준’의 도덕 발달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고민하거나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무상복지의 개념을 여기에 한번 적용해보자. 자본주의라는 큰 틀 아래 지속되는 우리 사회는 자신이 번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관습 수준의 도덕 발달에 적합하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 즉 먹고 자고 거주하고 건강을 유지하거나 질병을 치료받고 교육을 받고 하는 등의 권리를 생각해본다면 관습 수준의 도덕 발달로는 해법이 없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이 됐든,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됐든 ‘네가 스스로 방법을 알아내서 극복해봐’라고 말하지 못한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보편적 윤리 이념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관습 후 도덕 발달 수준’의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 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번 돈을 왜 남을 위해서 써야 하는가?’라고 반발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범위가 제각각 다르다.
미래 선택은 결국 우리들의 몫
그렇다면 단지 당신이 어느 정도 도덕 발달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따져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은 최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무상복지는 어떤 면에서 분명히 좋은 정책이지만,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재정이 소요될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특히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사회 구성원 간 합의가 필요하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보라고 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한국 사람끼리 알아서 결정하라고 말한 셈이다.
그렇다. 선택은 분명 우리 자신들 몫이다. 결국 나의 선택이다. 개인의 선택이 모여서 사회의 선택이 된다. 무상복지가 단지 공짜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질병을 치료해주고, 교육을 받게 해서 좋은 것인지 따져보기 전에 ‘그러한 삶의 방식이 과연 우리에게 맞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 미래의 행복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가’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논리에 동의한다면 정책 제안을 먼저 한 민주당은 지금처럼 열심히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는 것과 함께 국민도 설득해나가야 한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더 옳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탐욕스럽고 부패한 왕과 귀족에 맞서 싸우고, 그들로부터 빼앗은 재화를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주는 ‘로빈 후드’ 영화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로빈 후드 등장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의적 로빈 후드가 아니라 국민을 진심으로 위하는 다른 정치인이 나서기 바라고, 탐관오리가 아닌 중산층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일을 하지 않기 바라며, 몇 년 또는 몇십 년 못 가서 무너질 수 있는 정책의 시행을 우려하는 것이 현재의 민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 최고 가치이기에 뇌사, 존엄사, 낙태, 사형제도 등에 대한 논란과 신중한 접근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소말리아 해적 8명이 사살된 것에 대해 논란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뿐더러 왜 그 해적들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즉 관습 후 도덕 발달 수준에서 보자면 해적들의 목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목숨을 잃은 사실에 대해 슬퍼하기는커녕 우리 군의 용맹함과 강력함을 확인하면서 기쁨과 자랑스러움에 취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도덕은 현실에 근거해야 빛을 발한다.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복지 시리즈, 그리고 신이 난 것처럼 ‘너희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서 연일 밀어붙이는 한나라당. 그들의 마음속에 제발 국민이 자리 잡고 있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정치를 오래 하면서 초심을 잃었거나,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자부심보다는 국회의원이라는 좋은 직업을 가진 우리 집안의 가장 또는 가족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며 후손을 위하다 보면,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라는 최고의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손석한 원장은 SBS ‘긴급출동 SOS’ 자문위원과 육아방송, 평화방송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빛나는 아이’ 등 6권이 있다.
차기 대권주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산층을 더 힘들게 하는 세금폭탄 복지’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민주당은 무차별적 공짜 복지에 소요되는 비용이 16조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 2년 예산인 최소 40조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었다.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재원조달 기획단’ 단장인 이용섭 의원은 “조세 부담률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세금 신설이나 급격한 증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같은 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을 주장한다. 핵심은 순자산 30억 원 이상인 상위 0.58% 개인과 1조 원 이상의 기업에 매년 부유세를 거둬 13조3000억 원을 확보하고, 상위 10% 고소득자에게 복지목적세를 부과하면 10조 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쟁은 계속된다. 무상복지가 가능한가,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무상복지의 끝은 어디인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쇼인가, 아니면 심사숙고 끝에 나온 국민을 위한 복지정책인가. 물음은 끝이 없고 명쾌한 답은 없다. 이러한 무상복지 논쟁을 인간의 도덕 발달 단계와 비교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무상복지 큰소리에도 답은 없어
미국의 심리학자 로런스 콜버그는 인간의 도덕 발달이 3단계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관습 전 수준’으로 벌(罰)과 복종,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따른 상벌에 따라 도덕이 발달한다. 어린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면 부모님이 야단을 치고, 친구와 사이좋게 놀았다면 칭찬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올바른 도덕적 행동을 익히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부모의 훈육과 가르침에 의해 올바른 행동을 심어나갈 수 있다.
두 번째는 ‘관습 수준’으로 상호 간의 조화와 권위, 사회적 규칙에 따른 도덕 발달을 보인다. 예컨대 초등학교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지 말라’는 것을 배운 아이는 열심히 규칙을 따른다. 따라서 부모님이 급한 일 때문에 빨간불인데도 길을 건너려고 한다면, 오히려 아이가 말리고 제지할 것이다.
세 번째는 ‘관습 후 수준’이다. 개인의 권리와 보편적 윤리가 강조되면서 도덕 발달을 이룬다. 앞서 횡단보도 사례에서 만일 동생이 건너편에서 다친 채 울고 있다면, 비록 빨간불이라 할지라도 먼저 건너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세 번째 도덕 발달 수준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개인의 가치관, 특성 그리고 상황적인 특수성에 따라 판단과 행동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가령 길 건너 울고 있는 동생이 얼마만큼 다쳤는지에 대한 판단, 자동차가 달려오는지 혹은 교통경관이 근처에 있는지의 여부, 자신이 위험 또는 곤경에 처할 가능성에 대한 판단 등 여러 요인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관습 수준’의 도덕 발달에 따라 행동하다가 ‘관습 후 수준’의 도덕 발달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고민하거나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무상복지의 개념을 여기에 한번 적용해보자. 자본주의라는 큰 틀 아래 지속되는 우리 사회는 자신이 번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관습 수준의 도덕 발달에 적합하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 즉 먹고 자고 거주하고 건강을 유지하거나 질병을 치료받고 교육을 받고 하는 등의 권리를 생각해본다면 관습 수준의 도덕 발달로는 해법이 없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이 됐든,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됐든 ‘네가 스스로 방법을 알아내서 극복해봐’라고 말하지 못한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보편적 윤리 이념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관습 후 도덕 발달 수준’의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 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번 돈을 왜 남을 위해서 써야 하는가?’라고 반발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범위가 제각각 다르다.
미래 선택은 결국 우리들의 몫
그렇다면 단지 당신이 어느 정도 도덕 발달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따져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은 최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무상복지는 어떤 면에서 분명히 좋은 정책이지만,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재정이 소요될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특히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사회 구성원 간 합의가 필요하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보라고 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한국 사람끼리 알아서 결정하라고 말한 셈이다.
그렇다. 선택은 분명 우리 자신들 몫이다. 결국 나의 선택이다. 개인의 선택이 모여서 사회의 선택이 된다. 무상복지가 단지 공짜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질병을 치료해주고, 교육을 받게 해서 좋은 것인지 따져보기 전에 ‘그러한 삶의 방식이 과연 우리에게 맞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 미래의 행복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가’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논리에 동의한다면 정책 제안을 먼저 한 민주당은 지금처럼 열심히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는 것과 함께 국민도 설득해나가야 한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더 옳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탐욕스럽고 부패한 왕과 귀족에 맞서 싸우고, 그들로부터 빼앗은 재화를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주는 ‘로빈 후드’ 영화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로빈 후드 등장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의적 로빈 후드가 아니라 국민을 진심으로 위하는 다른 정치인이 나서기 바라고, 탐관오리가 아닌 중산층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일을 하지 않기 바라며, 몇 년 또는 몇십 년 못 가서 무너질 수 있는 정책의 시행을 우려하는 것이 현재의 민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 최고 가치이기에 뇌사, 존엄사, 낙태, 사형제도 등에 대한 논란과 신중한 접근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소말리아 해적 8명이 사살된 것에 대해 논란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뿐더러 왜 그 해적들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즉 관습 후 도덕 발달 수준에서 보자면 해적들의 목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목숨을 잃은 사실에 대해 슬퍼하기는커녕 우리 군의 용맹함과 강력함을 확인하면서 기쁨과 자랑스러움에 취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도덕은 현실에 근거해야 빛을 발한다.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복지 시리즈, 그리고 신이 난 것처럼 ‘너희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서 연일 밀어붙이는 한나라당. 그들의 마음속에 제발 국민이 자리 잡고 있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정치를 오래 하면서 초심을 잃었거나,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자부심보다는 국회의원이라는 좋은 직업을 가진 우리 집안의 가장 또는 가족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며 후손을 위하다 보면,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라는 최고의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손석한 원장은 SBS ‘긴급출동 SOS’ 자문위원과 육아방송, 평화방송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빛나는 아이’ 등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