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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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발자취

‘친환경 마법사’ 행복한 세상 꿈꿔

  • 빈=김동운 여행작가 dogguli@hotmail.com

    입력2010-11-29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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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발자취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창문 모양이 모두 다르다.

    11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날씨는 음산했다. 맑은 날보다 구름 낀 날이 많았고,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와 고딕 양식의 잿빛 건물도 우울함을 부추겼다.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이런 날씨가 오히려 풍부한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음악가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모차르트, 화가 클림트, 코코슈카, 에곤 실레 등이 중세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를 유럽에서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동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우리에게는 ‘비엔나소시지’나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빈 출신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발자취를 찾아 이 도시를 방문했다. ‘자연과의 조화’란 화두를 가지고 평생 세계를 떠돌며 작품 활동을 펼쳐온 훈데르트바서. 환경이 세계적인 관심사인 오늘 그의 사상과 작품이 전하는 의미와 교훈은 각별하다.

    알록달록한 건물 외관, 크기가 다른 창문

    처음 방문한 곳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였다. 알록달록한 건물 외관, 서로 다른 크기의 창문, 창문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 등으로 주변 건물과 쉽게 구분됐다. 이곳은 그의 건축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훈데르트바서는 피부, 의복, 건물, 사회 그리고 지구가 우리를 지켜주는 5개의 ‘스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핑계로 만든 상자 같은 단조로운 건물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을 덮는 옷처럼 개개인의 개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건물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빈 시영아파트 건축디자인 공모전에서 채택돼 탄생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오늘날 유명 관광지이자 전 세계에서 몰려든 공무원들의 주요 탐방지가 됐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창문은 저마다 크기, 형태, 주위의 색깔이 다르다.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대단위 주택단지나 아파트처럼 똑같이 찍어낸 건물에서 드러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창문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세입자 계약서에는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다음 방문지는 쿤스트하우스빈의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빈의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에서 3개월간 공부한 것이 전부일 만큼 정규교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 사물을 보는 남다른 시각, 그리고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금의 ‘예술가 훈데르트바서’란 명칭을 얻었다. ‘색채의 마법사’라 불리는 그의 작품은 강력하고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본인이 원하는 색깔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 쓸 만큼 색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의 작품은 쿤스트하우스빈 곳곳에 남아 있다. 어느 작품도 같은 색깔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다채롭다.

    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발자취

    1 오스트리아 최고의 인기 숙박시설로 꼽히는 블루마우. 2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바드피차우 레스토랑의 화장실. 3 블루마우 온천마을, 1997, 1:100, 422 x 399 x 65 cm(모델 제작자: 알프레드 슈미트와 안드레아 보디)

    쿤스트하우스빈의 화장실은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크기가 제각각인 수많은 타일로 이루어진 내부 벽면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된 모서리 부분 등이 눈길을 끈다. 흰색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깔 타일을 이용해 흔히 사용하는 화장실이 아닌 색다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구내 커피숍인 둥켄분트에서는 재활용에 남달리 애착을 가졌던 훈데르트바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중고용품을 사용해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탁자와 벽면을 장식한 유리병을 만들었다. 계단 기둥도 철체 가로등을 재활용한 것이다.

    훈데르트바서는 건축물과 자연의 공존을 통해 영적 치유를 꿈꾸었고, 그것을 블루마우 온천마을로 실현했다. 자연에는 곡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훈데르트바서는 블루마우 온천마을 곳곳에 굴곡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건축물들을 세웠다. 건축물의 지붕과 지면이 구분 없이 곡선으로 하나가 된다. 자연과 건축의 교감, 나아가 조화를 이루는 낭만적인 건축물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현실로 재현한 공간이다.

    블루마우는 동화에서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알록달록 칠한 벽면, 크기와 모양이 다른 2200여 개의 창문, 옥상과 지면이 하나로 연결된 독특한 디자인.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하룻밤을 묵으며 블루마우가 오스트리아에서 인기 숙박시설로 꼽히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천재 작가의 예술혼이 서린 다양한 작품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유럽식 온천욕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것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초현실주의 작품

    마지막 방문지는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다. ‘양파’라고 부르는 황금색 모스크가 멀리 눈에 띈다. 훈데르트바서는 슈피텔라우 지역의 난방 플랜트 작업을 했다. 환경운동가였던 그는 환경파괴 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쓰레기 소각장의 개조작업에 반감을 가졌으나 분리수거를 해도 소각장이 필요할뿐더러 첨단 기계를 이용하면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작업을 수락했다. 이를 통해 빈의 6만여 가구에 난방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렇게 재탄생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변모했다. 외관이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고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분진이나 유해가스의 제거 기능도 더했다. 매년 수많은 정부기관, 환경단체에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탐방한다.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가이면서 환경운동가였다. 1974년 뉴질랜드 환경보호주간 포스터를 제작했고, 1982년에는 ‘당신은 자연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란 문구의 포스터를 워싱턴의 환경교육센터에 기부했다. 또 ‘고래와 바다를 구하자’는 포스터를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기증했고, 오스트리아 하인버그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을 통해 공사 중단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 인간, 건축이 함께 숨 쉬는 행복한 세상을 꿈꾼 진정한 예술가였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지상낙원으로의 초대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 전시’


    굳이 오스트리아 빈을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됐다. 12월 5일부터 2011년 3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 전시’가 열린다. ‘세 번째 피부’ ‘블루 블루스’ 등을 포함한 회화 63점과 건축 모형 8점, 수공으로 제작된 태피스트리(다채로운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5점, 그리고 그래픽 및 사진, 영상 등 총 12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 만들기에 앞장선 그의 정신에 따라 티켓 판매금액의 3%는 월드비전에 기부된다. 훈데르트바서의 삶과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좋은 기회이니, 놓치지 말자. 관람료는 일반 1만5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 문의 02-545-3944.
    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발자취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1994, 혼합매체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가이자 환경운동가

    화려한 색채, 유려한 나선 특징


    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발자취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는 클림트, 에곤 실레를 이어 토털 아트를 완성한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다. 192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8년 독일군에 의해 도나우스트라세에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쫓겨났다. 이후 69명의 친척이 전쟁으로 몰살당하자, 그는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신념을 갖게 됐다. 그의 이름은 원래 프리드리히 스토바사였으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100개의 강’이란 뜻의 ‘프리덴스라이히 훈데트르바서’로 스스로 개명했다.

    ‘색채의 마법사’로 불릴 정도로 훈데르트바서의 회화는 매혹적이고 화려하다. 이런 그의 회화에 항상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가 바로 곡선, 특히 빙빙 돌아가는 나선이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물 같은 곡선이야말로 자연과 가장 닮은 유기적 형태라고 봤기 때문. 이런 정신은 건축물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확고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펼친 그는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하다. 자연보호, 산림보호, 반핵운동 등에 앞장서 성명을 발표했고, 캠페인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시위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피력했다. 식물을 단계적으로 이용한 자연정수 시스템을 개발하고, 부식토 변기를 만들어 사용했던 그는 유럽 각국에서 환경보호상을 받았했다. 생애 말년 그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2000년 뉴질랜드에서 유럽으로 오는 퀸 엘리자베스 2세호 갑판에서 세상을 떠난 훈데르트바서는 유언에 따라 그의 정원 튤립 아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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