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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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면허 철폐하라” 10년 단식 투쟁

인도 마니푸르 주 샤르밀라 인권운동가…동북부 상황 알려지며 폭발적인 지지

  • 델리=신민하 통신원 aparajito@naver.com

    입력2010-11-29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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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이란 수식어가 붙어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주인공은 인도의 이롬 차누 샤르밀라(38)다. 인도 동북부 마니푸르 주에 사는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그는 11월 2일 세상에서 ‘가장’ 길게 단식한 인물로 인도 언론들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의 단식 기간은 무려 10년. 언론에 공개된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37kg밖에 안 되는 몸은 더없이 야위었다.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내장기관은 많이 상했고, 30대 초반에 이미 월경도 멈췄다. 물과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그의 단식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죽음을 바로 곁에 두면서 단식을 이어가는 것일까?

    샤르밀라는 2000년 11월 2일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8명의 무장군인이 10명의 시민을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단식을 시작했다. 경찰은 11월 6일 인도형법 307항에 명시된 자살 시도 혐의로 그녀를 체포했다.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 단식이 2주일 이상 계속되자 경찰은 플라스틱 튜브를 그의 코에 강제 삽입해 액화된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등을 주입했다.

    반군세력 체포 및 사살할 권한

    인도에서는 자살 시도 혐의로 체포되면 재판 없이 364일 동안 구금된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도 단식을 멈추지 않아 지난 10년간 체포와 석방되기를 반복했다. 샤르밀라는 몇 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정 자살을 시도했다면 단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내 단식은 죽음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단식을 통해 저항하고자 한 것은 10명의 시민에게 무차별 사격을 한 군인들에게 부여된 무장병력특별권한법(Armed Forces Special Powers Act·이하 AFSPA)이다.

    AFSPA는 1958년 제정된 법으로 인도 독립 당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했던 마니푸르에서 시작해 1980년대 동북부 7개 주와 서북부의 카슈미르 지역으로 확대된 뒤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AFSPA는 앞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보안군에게 반군세력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체포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사살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 법의 철폐를 요구하는 측은 AFSPA와 관련한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보안군은 기소면제가 되므로 이는 곧 정부가 내준 ‘살인면허’라고 비난한다. 이들은 “단순한 의심으로 고문하거나 백주에 시장 한복판에서 사살하는 페이크 인카운터(Fake-encounter)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바깥 활동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2004년 7월 마니푸르에서 주부 탕그조람 마노르마라는 반군단체의 일원이란 의심을 받아 보안군에게 체포돼 살해됐고 길가에 버려진 뒤 부패한 채 발견됐다. 그의 몸에는 고문과 강간을 당한 흔적이 너무나 선명히 있어 주민들 사이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고 심각한 폭력사태로 이어졌다. 분노에 찬 12명의 여성은 ‘마니푸르의 어머니들(Mothers of Manipur)’이란 조직을 결성하고 마니푸르의 주도인 임팔에 있는 군부대로 행진했다. 이들은 옷을 모두 벗고 ‘인도군이여, 우리의 살을 가져가라’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깃발을 몸에 두른 채 시위를 벌였다.

    마니푸르 주를 비롯한 동북부 지역과 서북부의 카슈미르 주에 많은 병력이 배치된 이유는 이곳이 파키스탄과 중국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1980년까지 동북부 지역은 아삼 주와 아삼 주에서 차례로 독립한 5개 부족주(아루나찰 프라데시, 나갈랜드, 마니푸르, 메갈라야, 트리푸라)로 구성됐다. 특히 동북부 주 주민은 대부분 부족민으로 인도 독립 당시부터 자기네 부족을 분리독립시켜 달라고 요구해왔다. 인도 정부는 부족주를 신설해 부족민에게 자치생활 지역을 제공하면 분리독립 요구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마니푸르는 독립 당시 자치권을 부여받았지만 불과 2년 뒤 인도에 합병됐다. 1954년부터 마니푸르 지역 지도자 리샹 케이싱이 마니푸르 대표정부를 세우려 했지만 당시 인도 중앙정부 내무부 장관은 의회연설에서 “마니푸르의 부족민은 정치적으로 후진적이며 행정기구 역시 미약하다”며 독립주 인가를 미뤘다. 이후 1972년 마니푸르가 주로 승격될 때까지 중앙정부가 직접 행정에 관여했다. 독립된 주로 승격한 이후에도 분리독립 요구는 계속됐다.

    1980년 나갈랜드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분립독립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갈랜드국가사회주의자위원회(National Socialist Council of Nagaland)가 설립되자 인도 정부는 마니푸르에 파견하는 병력을 증강했다. 당시 마니푸르 고지대에 거주하던 탕쿨족(Thankuls)이 나갈랜드 분리주의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마니푸르 지역에서 17개의 무장단체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미 1만 명 이상이 폭력사태와 관련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 인도 정부는 AFSPA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는 노력을 했다. 2004년 지반 레디 판사 등은 위원회를 꾸려 AFSPA를 대체할 ‘더 인간적인’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2005년 6월 6일 제출한 147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AFSPA가 반드시 대체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샤르밀라 단식 10주년을 맞아 인도 정부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인도의 주요 언론들은 마니푸르 주를 비롯한 동북부 주와 관련된 소식을 소홀히 다뤘지만, 최근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샤르밀라의 단식과 그 배경을 알게 된 일반인이 급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진정성 사람들 마음 움직여

    단식은 힘없는 사람들의 저항수단이었다. 특히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가 독립운동을 하며 단식을 비폭력 투쟁방식으로 삼아 도덕적 명분까지 얻었다. 그러나 인도의 많은 정치인과 시위자는 단식을 투쟁수단으로 이용했음에도 국민들에게서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인도인들은 “단식이 교착상태를 타개하기보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더 큰 폭력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르밀라의 단식은 특별하다. 그가 단식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날 마니푸르의 주도 임팔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그에게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그 전날에는 각기 다른 9개의 종교 신자가 그의 건강과 단식투쟁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 밖에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에서 그를 지지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현지 언론은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마른 무명천으로 이를 닦는 샤르밀라의 진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년간 홀로 이어온 샤르밀라의 지루했던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외롭지 않을 듯싶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살인을 한 사람보다 가혹하게 다뤄진다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내일이면 더 늘어나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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