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 장안의 화제작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다 이 대목이 눈에 밟혔다. 소설 속 지영 씨가 아기를 낳은 뒤 하루 두 시간 이상 잠을 못 자며 집 안 청소를 하고, 젖병을 닦고, 옷과 수건을 빠느라 엉망진창이 된 손목을 보이려고 찾은 병원에서 나이든 남자 의사가 피식 웃으며 던진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 의사의 말이 맞다. 집집마다 전기밥솥, 세탁기, 청소기 등 각종 가전제품을 구비하는 일이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산더미 같은 빨래를 세탁기 없이 손으로 빠는 일은 엄두조차 못 낸다. 가전제품 덕에 50년 전과 비교해 현재 가사노동이 훨씬 수월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사노동 시간은 어떨까. 지난해 4월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평일 하루 3시간 25분이다. 1999년보다 30분가량 줄었다. 이상하다. 소설 속 지영 씨가 간파했듯이 ‘어떤 분야든 기술이 발전하면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가사노동 시간이 줄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전제품 덕에 가사노동이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집집마다 세탁기를 들여놓기 전 미국에서 빨래는 여성의 몫이 아니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족 여럿이 나눠서 해야 하는 노동이었다. 특히 여성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피가 큰 빨래는 아버지, 아들의 몫이었다.
세탁기를 들여놓은 뒤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변했다. 어느 정도 부피가 큰 빨래까지 세탁기로 빨 수 있게 되자, 빨래는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됐다. 그러니까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의 도입으로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엄마나 딸 같은 여성이 아닌, 아빠나 아들 등 남성이었다.
이뿐 아니다. 세탁기는 여성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준다. 세탁기를 집집마다 들여놓기 전만 해도 땀내 나는 옷을 이틀, 사흘씩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 옷에 얼룩이 좀 져도, 코 묻은 소매가 반들거려도 큰 흉이 아니었다. 어차피 다들 그렇게 때가 탄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세탁기가 매일 빨래를 하자 공동체의 청결 기준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전에는 흉이 아니던 아이 옷의 얼룩이 문제가 됐다.
1930년대 세균의 위험이 의학계를 넘어 일반인에게도 알려지자 깨끗함에 대한 강박은 더욱더 심해졌다. 더러운 옷을 방치하는 엄마는 남편과 아이를 오염이나 세균에 노출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 틈을 가전업계가 놓칠 리 없었다. ‘얼룩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아이’라는 식의 편견을 퍼트리는 광고가 당시 미국 중산층 여성 사이에 유행하던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세탁기 판매량은 증가했고, 덩달아 엄마의 가사노동 시간도 늘어났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카원은 1941년부터 81년까지 40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미국 대학교수 부인의 하루를 비교해 제시한다. 전형적인 중산층 여성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1941년 대학교수 부인에게는 하인 2명이 있다. 1명은 빨래와 힘든 청소를 했고, 다른 1명은 식탁을 치우고 간단한 청소를 하며 아이를 돌봤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집 안 청소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던 수많은 가난한 여성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겠지만, 아무튼 대학교수 부인 등 일부 여성은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침대를 정돈하고 청소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 다시 아이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돈한 뒤 다림질을 하거나 아이와 산책을 하면 저녁시간. 다시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대학교수 부인의 가사노동은 밤 10시가 돼서야 끝난다.
놀랍게도 이 대학교수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은 동시대 육체노동자를 남편으로 둔 부인의 그것과 거의 일치했다. 가사 기술의 발달이 여성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는커녕 중산층 여성까지 하향평준화한 것이다. 이쯤 되면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사 기술이 도입되면서 오히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늘었다는 카원의 결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소설 속 지영 씨의 통찰도 카원과 비슷하다.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보기는 한 걸까.’
참,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의 같은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평일 하루 39분이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인 3시간 25분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1999년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9분가량 늘어난 것을 고무적이라고 해야 하나.
2012년생 김서연 씨가 30대 중반이 되는 2047년에는 세상이 바뀔까. 세탁기, 청소기, 보일러는 물론이고, 집 안 곳곳의 전등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돼 집 밖에서도 자유자재로 조작이 가능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 시대의 도래를 선전하는 TV 광고 속 주인공도 맞벌이 부부인 것을 보면 전망은 밝지 않다.
’ 장안의 화제작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다 이 대목이 눈에 밟혔다. 소설 속 지영 씨가 아기를 낳은 뒤 하루 두 시간 이상 잠을 못 자며 집 안 청소를 하고, 젖병을 닦고, 옷과 수건을 빠느라 엉망진창이 된 손목을 보이려고 찾은 병원에서 나이든 남자 의사가 피식 웃으며 던진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 의사의 말이 맞다. 집집마다 전기밥솥, 세탁기, 청소기 등 각종 가전제품을 구비하는 일이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산더미 같은 빨래를 세탁기 없이 손으로 빠는 일은 엄두조차 못 낸다. 가전제품 덕에 50년 전과 비교해 현재 가사노동이 훨씬 수월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사노동 시간은 어떨까. 지난해 4월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평일 하루 3시간 25분이다. 1999년보다 30분가량 줄었다. 이상하다. 소설 속 지영 씨가 간파했듯이 ‘어떤 분야든 기술이 발전하면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가사노동 시간이 줄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전업계의 악마적 상술
이 미스터리를 풀려면 미국 역사학자 루스 카원의 연구를 살펴야 한다. 카원의 연구는 요즘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는 교양 필수 항목이 돼버렸다. 카원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가정에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이 도입되면서 가사노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조사했다.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전제품 덕에 가사노동이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집집마다 세탁기를 들여놓기 전 미국에서 빨래는 여성의 몫이 아니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족 여럿이 나눠서 해야 하는 노동이었다. 특히 여성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피가 큰 빨래는 아버지, 아들의 몫이었다.
세탁기를 들여놓은 뒤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변했다. 어느 정도 부피가 큰 빨래까지 세탁기로 빨 수 있게 되자, 빨래는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됐다. 그러니까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의 도입으로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엄마나 딸 같은 여성이 아닌, 아빠나 아들 등 남성이었다.
이뿐 아니다. 세탁기는 여성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준다. 세탁기를 집집마다 들여놓기 전만 해도 땀내 나는 옷을 이틀, 사흘씩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 옷에 얼룩이 좀 져도, 코 묻은 소매가 반들거려도 큰 흉이 아니었다. 어차피 다들 그렇게 때가 탄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세탁기가 매일 빨래를 하자 공동체의 청결 기준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전에는 흉이 아니던 아이 옷의 얼룩이 문제가 됐다.
1930년대 세균의 위험이 의학계를 넘어 일반인에게도 알려지자 깨끗함에 대한 강박은 더욱더 심해졌다. 더러운 옷을 방치하는 엄마는 남편과 아이를 오염이나 세균에 노출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 틈을 가전업계가 놓칠 리 없었다. ‘얼룩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아이’라는 식의 편견을 퍼트리는 광고가 당시 미국 중산층 여성 사이에 유행하던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세탁기 판매량은 증가했고, 덩달아 엄마의 가사노동 시간도 늘어났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카원은 1941년부터 81년까지 40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미국 대학교수 부인의 하루를 비교해 제시한다. 전형적인 중산층 여성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1941년 대학교수 부인에게는 하인 2명이 있다. 1명은 빨래와 힘든 청소를 했고, 다른 1명은 식탁을 치우고 간단한 청소를 하며 아이를 돌봤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집 안 청소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던 수많은 가난한 여성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겠지만, 아무튼 대학교수 부인 등 일부 여성은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웠다.
40년 전보다 더 힘들어진 여성
그렇다면 40년이 지난 1981년에는 대학교수 부인의 하루가 어떻게 변했을까. 대학교수 부인은 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지하실로 내려가 세탁기에 빨래를 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에게 옷을 입힌 뒤 남편과 아이가 먹을 아침식사를 차린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고 남편을 출근시킨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침대를 정돈하고 청소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 다시 아이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돈한 뒤 다림질을 하거나 아이와 산책을 하면 저녁시간. 다시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대학교수 부인의 가사노동은 밤 10시가 돼서야 끝난다.
놀랍게도 이 대학교수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은 동시대 육체노동자를 남편으로 둔 부인의 그것과 거의 일치했다. 가사 기술의 발달이 여성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는커녕 중산층 여성까지 하향평준화한 것이다. 이쯤 되면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사 기술이 도입되면서 오히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늘었다는 카원의 결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소설 속 지영 씨의 통찰도 카원과 비슷하다.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보기는 한 걸까.’
참,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의 같은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평일 하루 39분이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인 3시간 25분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1999년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9분가량 늘어난 것을 고무적이라고 해야 하나.
2012년생 김서연 씨가 30대 중반이 되는 2047년에는 세상이 바뀔까. 세탁기, 청소기, 보일러는 물론이고, 집 안 곳곳의 전등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돼 집 밖에서도 자유자재로 조작이 가능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 시대의 도래를 선전하는 TV 광고 속 주인공도 맞벌이 부부인 것을 보면 전망은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