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에서 2골을 몰아넣은 이청용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佛·伊 세대교체 실패로 쓴잔
세대교체의 중요성은 부연이 필요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세대교체에 성공한 나라들은 좋은 성과를 올렸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모조리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조별리그 탈락의 ‘믿을 수 없는’ 쓴잔을 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환상적인 인프라를 구축했음에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두 나라는 1승도 챙기지 못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무적함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선전한 것과 확실히 대조된다.
반면 남미와 북중미는 강했다. 호비뉴, 파비아누 등을 앞세운 브라질과 리오넬 메시, 이과인을 내보낸 아르헨티나는 유럽 강호들과는 달랐다. 칠레도 평균연령 23세 이하의 젊은 피로 무장해 이탈리아 등을 물리치고 16강전에 진출했다. 젊은 선수들의 투지, 기본 기량, 환상의 조직력이 하모니를 이뤘고 여기에 사령탑의 명쾌하고 정확한 지시가 시너지가 돼 세계 축구의 중심에 우뚝 섰다. 한국을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한 우루과이도 예상보다 선전했다.
허정무호는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적뿐 아니라 세대교체도 충실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말 그대로 ‘히어로’가 된 박지성(맨유)을 발굴한 사람이 바로 허 감독이다. 항간에는 ‘내기하다가 뽑았다’ ‘바둑 두다 선발했다’는 근거 없는 루머가 나돌았지만 결국 허 감독의 ‘간택’을 받은 박지성은 현재 한국 축구에서 없어선 안 될 인물이 됐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최상의 선택이었다. 이번 월드컵호에서도 세대교체가 틈틈이 이뤄졌다. 이청용(볼튼)과 기성용(셀틱)으로 대표되는 ‘뉴 페이스’들이 월드컵 예선을 통해 서서히 자리를 잡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개했다.
축구 기자들은 세대교체를 언급할 때마다 2008년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최종예선 원정 경기를 떠올린다. 당시 한국은 주장이었던 김남일(톰 톰스크)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줘 패배 직전까지 갔다. 기성용의 A매치 데뷔 골이자 천금의 동점포로 값진 승점 1점을 땄다. 허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돌던 상황.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회의 끝에 한국 최고 미드필더로 꼽히던 김남일을 다음 소집에서 제외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주장 완장을 맡은 이도 놀라웠다. 바로 박지성이었다.
선택은 주효했다. ‘캡틴’ 박지성으로 대변되는 ‘소통의 리더십’ ‘수평의 리더십’은 벤치에서의 일방통행식 지시가 아닌, 자율적이고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적절한 틀을 완성했다. 주력 미드필더가 김남일-설기현 중심에서 기성용-김정우 콤비로 바뀐 것도 그 시점이었다. 이청용 역시 최대 수확 중 하나. 이후 김남일이 절치부심하다 대표팀에서 제외된 지 1년여 만인 2009년 9월 호주와 평가전을 앞두고 다시 승선한 것 역시 유명한 일화다.
남아공 무대를 끝으로 익숙한 이름의 수많은 스타를 떠나보낸다. 이운재(수원), 안정환(다롄), 이동국(전북), 이영표(알 힐랄) 등이 그 주인공. 30대 초·중반인 이들 4인방의 대표팀 은퇴는 이번 월드컵이 개막되기 전부터 거론됐던 사안이다. 은퇴와 관련해 공식 언급은 없었지만 차두리(셀틱) 역시 우루과이와 16강전이 끝난 뒤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세대교체는 옵션 아닌 필수
다음 월드컵에서 박지성의 출전이 불투명해지면서 그를 대신할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의외로 다음 대회가 기대되는 인물도 꽤 있다. 그간 이영표라는 그림자에 철저히 가려졌던 김동진(울산)이 왼쪽 풀백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보이고, 차두리 대신 오범석(울산)이 있다. 오범석은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뼈아픈 실책을 범했지만 충분한 기량을 갖추고 있다. 센터백 역시 1980년생 이정수가 30대 중반에 접어들기 때문에 변수가 있으나 조용형(제주)이 건재하고, 김형일(포항)과 강민수(수원) 역시 언제든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을 갖췄다. 곽태휘(교토)도 마찬가지.
허리진은 이미 꽤 세대교체가 단행됐다. 이른바 G세대로 대표되는 20대 초반 기성용과 이청용은 브라질뿐 아니라 2018년 월드컵까지 노릴 수 있다. 김보경(오이타) 또한 마찬가지. 비록 최종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나 구자철(제주)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공격진은 이근호(이와타), 이승렬(서울) 등 남아공행에 실패했거나 거의 뛰지 못했던 ‘예비 스타’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승렬, 김보경 등은 올해 초 남아공과 스페인을 오가며 진행된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성인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허 감독은 2008년 1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이름값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선수를 불러 테스트했다. 무려 26명이 A매치에 데뷔했고, 이 중 10명이 남아공행 티켓을 잡는 행운을 누렸다. 앞서 거론된 새내기들의 본격 성장도 여기서 비롯됐다.
물론 세대교체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도 기본적으로 선수층이 두터워야 하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틀(인프라)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아울러 지도자가 마음 놓고 선수를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김학범 전 성남 일화 감독은 “되도록 많은 선수가 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좋지만, 선수들이 축구에 입문할 때 맞을 첫 번째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K리그에 ‘업 · 다운’ 제도가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부 리그가 없어 승격 및 강등 제도를 운영하지 못할 경우, 정식 리그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김 전 감독이 2부 리그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종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이사(중앙대 교수)도 “유럽을 보면 2부 클럽들이 선수 위주가 아닌, 팀 위주의 플레이로 1부 리그 승격을 노린다”고 말했다.
풍부하고, 완벽한 환경 속에서도 제대로 선수들을 성장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일부 유럽 국가를 볼 때, 최상이 아닌 최악에 가까운 틀에서 자란 선수들이 주축이 돼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의 선전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세대교체가 연착륙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 축구의 강호로 떠오른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