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젖줄’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영산강은 4대강 중 오염도가 가장 심각하다.
광역은 물론 기초단체장까지 민주당 석권}
‘남도의 젖줄’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발해 광주시와 나주시를 거쳐 남도 끝까지 흐른다. 관통하는 광역시도는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2곳이다.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간직한 전남은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 이번 6·2지방선거에서도 광역단체장부터 기초단체장까지 대부분 지역에 민주당이 깃발을 꽂았다.
전남은 박준영 지사가 재선에 성공했고, 기초단체장은 22명 중 15명이, 광역의원은 57명 중 49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광주시장으로는 강운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기초단체장 5명 중 4명(1명은 무소속), 광역의원 22명 중 20명이 민주당 의원이다.
{지방정부 4대강 사업 현주소
138km에 2조6000억 사업비 … 상·하류 시각차}
영산강은 전체 길이 138km로 4대강 가운데 가장 짧다. 하지만 사업비는 금강(2조4800억 원), 한강(2조400억 원)보다 많은 2조6000억 원이다. 다른 강보다 상태가 나쁜 탓이다. 영산강 하류 무안 지점의 2008년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은 5.1ppm. 금강 부여 지점 4.2, 한강 노량진 지점 3.8, 낙동강 물금 지점 3.0ppm과 비교해 한참 뒤처진다. 영산강 하굿둑이 생긴 이후엔 물 흐름이 단절돼 강바닥에 오염된 흙이 쌓였다. 오염이 심하다 보니 상수도 보급률도 전국 평균 85.5%에 훨씬 못 미치는 45%다. 영산강 사업은 모두 10개 공구에서 이뤄지고 있다. 내년 12월까지 2공구와 6공구 두 군데에 보(洑)를 만들고, 3000만㎡를 준설한 뒤 친수공간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정비 작업이 진행된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장(이하 지자체장)들의 목소리는 어떨까. 4대강 사업에 대한 민주당의 원칙은 결사반대. 하지만 영산강 유역 지자체장들의 입장은 당론과 온도차가 있다. 해당 지역의 민심과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수질개선 사업에는 수긍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텃밭임에도 ‘사실상 찬성’ 또는 ‘소극적 반대’를 하는 지자체장이 많은 것. 하지만 강 상류지역 지자체장 중 다수는 당론에 따라 반대를 표명했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영산강 뱃길은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산강은 상류는 물이 마르고 하류는 오염돼 정비가 절실하다”며 “지역민을 생각한다면 사업을 진행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보였다. 오염도가 심한 영산강 중·하류 지역인 나주·목포시와 무안·영암군도 수질개선과 치수사업에 긍정적이었다.
사업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지자체는 특히 적극적이다. 영산강 사업 구간에서 골재적치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자체는 2군데. 적치장을 만들 경우 나주시는 100억 원, 광주 서구는 89억 원의 수익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임성훈 나주시장(민주당)은 “전남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뱃길 살리기 사업을 추진해왔다. 영산강 수질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전주언 광주 서구청장(무소속)은 현재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통화가 불가능했다.
반면 강운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상류지역 지자체장들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강 시장은 “보 설치와 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준설 작업은 중단해야 한다. 그것보다 가장 심각한 오염원인 광주시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사업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일부 기초단체장과 담양·함평군 군수도 사업에 회의적이다.
사업에 반대하는 지자체장들은 행정권한으로 사업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발표한 ‘4대강 하천 준설토 처리 지침’에 따르면, 강에서 파낸 흙을 쌓아두는 준설토 적치장과 흙으로 농경지를 정비하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의 인·허가권은 지자체장에게 있다. 따라서 관련 사업 허가를 거부함으로써 사업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장이 실제 관여할 부분은 많지 않다. 대부분 승인이 이미 떨어진 데다 공사가 상당 부분 진척돼 반대를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 이와 관련해 강 시장은 “4대강 살리기 사업 중 수질개선 항목 부문만 추진하고 보 건설, 준설 등은 현재 상태로 마감할 것이다. 잔여 사업비는 수질개선 사업비로 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광주시가 발주한 7공구의 공정률은 10개 공구 중 가장 낮은 0.42%다.
{영산강 유역 민심 르포
“좋긴 헌데, 이렇게 빨리하면 곤란하지”}
영산강을 보러 가는 내내 날씨 걱정을 했다. 비라도 내리면 공사 현장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광주 햇살은 지중해처럼 뜨거웠고, 거대한 공사 현장 구석구석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승촌보가 들어서는 전남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6공구 현장. 흙으로 쌓아올린 축구장
2배 넓이의 가물막이 안에서 개미처럼 꼬물대는 굴착기와 덤프트럭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덤프트럭, 불도저, 굴착기 등 장비 200여 대가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완공시기를 맞추려면 24시간 몰아치듯 일해야 해요. 이곳에 온 뒤로 늘 새벽에 귀가합니다.”
시공사 한양에서 근무하는 이준범 팀장의 말이다. 영산강 공사는 모두 10개 공구에서 이뤄진다. 승촌보가 포함된 6공구는 영산강의 딱 중간 지점. 승촌보~광주 서구 치평동에 이르는 13.2km 구간과 광주시 광산구 선암동~영산강 합류지점에 이르는 6.5km 등 모두 19.7km 구간이다. 6공구의 공정률은 25%. 2011년 12월 완공을 위해 일반 도로·택지 공사의 3배속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팀장은 “장마가 오기 전에 가물막이를 걷어내려면 화장실 갈 틈 없이 일해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왼쪽)영산강 6공구에 들어설 승촌보 건설 현장. (오른쪽)번화한 포구였던 영산포마을의 주민들은 대체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지한다.
6공구 사업은 크게 준설 작업, 준설토를 옮겨 제방을 보강하고 농경지를 리모델링하는 작업, 승천보 건설 작업으로 나뉜다. 그중 핵심은 준설 작업. 강바닥의 흙을 파내 물그릇을 넓히는 일이다. 6공구 구간 곳곳도 온통 흙바닥이었다. 도로에는 덤프트럭 수십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다가 어디론가 흩어졌다. 임 사무관은 “땅 위로 나온 흙은 적치장에 쌓아두거나 필요로 하는 곳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준설토는 성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져요. 고수부지와 제방을 보강한 뒤 남은 흙은 저지대 농경지를 높이는 리모델링 작업에 활용하죠. 마지막에 남은 굵은 모래는 각 지자체에서 처리하고요.”
덤프트럭 바퀴가 멈춘 곳은 인근 농경지였다. 광주시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에는 2m가 넘는 높이의 긴 흙벽 수백 개가 쌓여 있었다. 흙벽은 농경지의 겉흙. 표면 흙을 걷어낸 자리에 준설토를 60cm 정도로 깔면 지대가 높아져 비가 내려도 침수 걱정이 없다. 마을 주민인 고철성(62) 씨는 “리모델링 사업을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번에 검은 흙이 들어와서 한번 돌려보냈는디, 지금 들어오는 놈은 좋은 것이여. 공짜로 해줘서 좋긴 헌데 당장 일을 못하제. 2, 3년 지나면 자연 침하도 일어날 테고.”
승촌보에서 가장 인접한 마을은 전남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봉호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문화재 타당성 조사를 거쳐 종합 친수공간인 ‘구하도’가 들어설 전망이다. 지근거리에서 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공사 현장에 무심한 시선을 던지던 박종섭(72) 씨는 서운한 속내를 내비쳤다.
“서울 가락시장 미나리 70%가 다 여기서 나는 겨. 근디 이제 그걸 못 허니 어쩌냐고. 농사꾼들은 땅이 있어야 디야. 수지보다 중요한 게 그거여. 4대강 사업은 난 모르겠어.”
4대강 사업, 보상과 별개로 정든 땅을 잃는 게 싫다는 얘기. 논두렁에서 만난 김광일(75) 씨는 보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100년 벌 수 있는 걸 돈 주고 못하게 한 거잖여. 국가 하천부지라도 내 땅처럼 수십 년을 농사짓고 살았는디, 4대강 한다고 뭐가 좋겠어. 자기 땅 있는 사람도 평당 16만~17만 원 받았지비.”
영산강이 코앞에 내다보이는 명당 평상에서 만난 봉호마을 어르신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 자체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 결과와 속도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내비쳤다. 문재섭(75) 씨의 말이다.
“강은 살려야 써. 영산강은 썩을 대로 썩었으니 그건 분명혀. 근디 요로코롬 하면 강이 살지 안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녀? 정부가 반은 잘하고 반은 못하는 거 같은디, 결과를 보고 기다 아니다 평가할 수 있겄제. 빗물이나 안 넘치면 다행이제.”
“나라에서 해준달 때 해야제”
6공구 인근 마을 주민들은 강 살리기에 동의하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엇갈렸다. 그렇다면 공사 지역에서 한 발짝 떨어진 지역 민심은 어떨까. 현장에서 나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나주시 영산동 영산포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영산포마을은 영산강이 가로지르는 유일한 도심 마을이다. 과거 뱃길이 열렸던 시절 인근에서 가장 번성했었다. 영산강의 부활이 마을의 부활인 만큼 주민들의 관심도 뜨겁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창원 영산강뱃길연구소 소장은 4대강 사업이 영산포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어릴 적엔 늘 배가 들락날락거리고 활기가 있었지라. 찰랑 넘치고. 지금은 1m가 될까 말까 한 수심에 물이 썩어 냄새가 나고…. 어여 땅을 파서 배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당께.”
영산포마을은 논 반, 산 반이다. 마을 주민 1만5000여 명 중 70% 정도가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자영업 등에 종사한다. 이곳에서 만난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주민 다수가 4대강 사업을 지지했고, 일부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어장사를 하는 최기환(29) 씨는 “영산강은 수질이 너무 안 좋다. 사업이 제대로 되고 나면 물도 깨끗해지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축산업을 하는 50대 후반 주판선 씨는 “도시에서 생활하수를 흘려보낸 뒤로 (물이) 맛이 갔다. 영산강은 어느 정도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대체적인 지역 민심에 대해서는 둘 다 “반반 정도인 것 같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내용을 속속들이 알기보다는 막연히 강이 좋아진다는 기대심리가 크다”고 답했다. 60대 이상 주민 중에는 옛 향수에 젖어 강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고배 과수원을 한다는 박정복(64) 씨는 “재첩이 한 바가지씩 나오던 옛 영산강이 그립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전 영산강은 물 반, 고기 반이었어. 지금은 물이 더러워져서 올해에는 강진에서 쌀을 사다 먹을까벼. 잘 모르면서 반대하는 도시민들은 한번 와서 봐야 뎌. 상류지역에 사는 광주시민들은 피해본 게 없제. 그네들이 사업에 대충 반대하는 것은 옆집에 쓰레기 버리고 나는 상관없다는 태도여.”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두고 찬반 대립을 하는 박준영 전남지사와 강운태 광주시장에 대한 시각은 어떨까. 봉호마을 주민인 나문식(70) 씨는 “광주지역을 관통하는 4대강 사업 구간은 일부다. 전체적으로 공사가 한참 진행됐는데 계속 진행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영산포마을 주민인 박성도(65) 씨는 “쓸모없어진 강을 나랏돈으로 살려준다는데 뭐가 나쁘냐. 당과 상관없이 지역에 이득 되는 일이라고 본다”며 실리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준범 팀장은 “광주시는 수질개선 사업에 필요한 예산 2조여 원을 매칭펀드 형식으로 준비하겠다고 한다. 사실상 돈이 준비되지 않으면 사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