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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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도 못 주는 ‘로또 선거’ 후유증

교육감 선거 사무원들 소송이라도 할 판 …‘후보 난립’ 등 온갖 모순의 현주소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6-28 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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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당도 못 주는 ‘로또 선거’ 후유증

    피켓을 들고 율동하며 후보를 알리는 선거사무원들. 이들의 활약이 당락을 결정짓기도 한다.

    “너무 괘씸해요. 낙선한 A후보가 미라처럼 누워 지낸다며 수당을 지급하기 곤란하다고 하는데, 빌려서라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박모(41) 씨는 A교육감 후보 선거사무원으로 활동했다. 기간은 법정 선거운동기간인 5월20일부터 6월1일까지 13일. 박씨 등 선거사무원들은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역 주변에서 홍보전단을 뿌렸고, 낮에는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상가를 돌아다니며 A후보를 알렸다. 선거사무원들은 허리 통증과 발바닥 물집 등에 시달렸지만 하루 7만 원의 수당을 생각하며 버텼다. 하지만 박씨는 4일치 수당은 지급받았지만 9일치 63만 원은 아직 받지 못했다. 박씨뿐 아니라 다른 선거사무원 500여 명 모두가 9일치 수당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는 4억여 원에 달한다. A후보 측 관계자는 “당선됐다면 급전이라도 빌릴 수 있었을 텐데…. 선거비용보전 기준인 15% 득표를 넘은 만큼, 하늘이 두 쪽 나도 수당 지급에는 문제가 없다. 보전액 지급일인 8월 1일까지 기다려달라”고 해명했다.

    당장 수당을 지급하라는 선거사무원과 A후보의 충돌은 교육감 선거의 일그러진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광역 단위로 치러진 서울시와 경기도교육감 선거의 경우 법정 선거비용 한도액이 약 40억 원에 이른다. 각 후보는 교육자 출신이지만 선거에서는 다른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다. 이기려면 자신의 주머니를 털고 모자라는 돈을 빌리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선거사무원들은 이런 후보의 절박함을 이용해 ‘단기간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당선에 힘이 되겠다”며 모여들지만, 후보의 교육철학이나 정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서로 신뢰감이 없으니 제때 수당만 받으면 그만이다.

    “낙선했다고 지급 곤란 괘씸하다”

    후보자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직접 행동에 나서는 선거사무원도 있다. A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운 한 지역 연락사무소 소장은 “이젠 돈을 줘도 받지 않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발끈했다. 선거비용 청구와 관련한 서명과 날인도 거부했다. 이 소장은 “사전예고 없이 못 주겠다는 후보를 믿을 수 없다. 선거사무원들이 고생한 만큼 바로 지급하는 게 도리 아니냐. 노동청에 진정을 넣는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소개한 박씨 등도 소액재판 신청, 노동청 진정 등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8월 1일이 돼도 이들 선거사무원이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관계자는 “후보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민사재판까지 가야 받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선거법에 따르면 후보가 선거비용 보전을 청구할 때는 항목별로 하지만 선관위는 항목 구분 없이 보전액 총액을 후보의 계좌에 송금한다. 즉, 후보가 수당 지급을 미룰 여지가 있다.

    신뢰를 잃은 A후보는 재기가 힘들게 됐다. 현 교육감 선거에서는 돈 댈 능력이 없으면 선거운동 자체가 어렵다. A후보도 막판까지 1, 2위를 다투는 접전을 펼치느라 물량공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선거비용 부담 때문에 선거사무원을 쓰지 않았다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선거비용을 아끼고 당선되기는 힘들다.

    선거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은 교육감 당선자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후보들은 집을 담보 받거나 지인에게 보증을 부탁하는 등의 방법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하지만 부족하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들은 이해관계자에게 ‘후원’을 받기도 한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선거비용을 대형 학원과 급식업체 등으로부터 빌려 말썽이 됐다. 이해관계가 얽힌 업체들에게 돈을 받으면 정책을 펼칠 때 그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사교육 통제 불능, 아이들 급식의 질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돈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 전 교육감은 6월 16일 서울서부지법으로부터 거액의 뇌물 수수, 인사권 부당 행사 등으로 징역 4년, 벌금 1억 원, 추징금 1억46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선을 노리는 교육감들은 다음 선거에 필요한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당선자는 당선 축하금 성격의 돈봉투를 전달하려는 공무원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후 선거비용 마련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교육감 후보와 관련자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유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한 교육계 인사는 “교육감 선거에 법정 선거비용을 넘는 막대한 돈이 드는 게 현실이다. 한 후보는 낙선한 후 회한에 잠기기보다 몇십억 원의 빚을 어떻게 갚을까부터 걱정했다”고 말했다. 낙선한 후보는 빚 청산의 부담이, 당선한 후보는 선거비용과 관련한 유혹을 이기고 청렴하게 일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6·2지방선거 뒤 교육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서 선관위는 지방교육자치법의 규정에 따라 각 정당이 특정 교육감 후보와 정책 연대를 하거나 지지,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민주당 등이 당 색깔에 따라 보수, 진보 교육감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공천 없이 선거가 이뤄지다 보니 교육감 선거는 기호를 잘 뽑으면 당선된다는 ‘로또 선거’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데, 1번을 뽑은 교육의원 후보는 선거운동 없이 여행을 가기도 했다.

    “교육감 선거 개혁” 한목소리

    이러니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후보가 짝을 이루는 러닝메이트제, 교육감 후보가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이 공천하는 정당공천제, 선거기간에 한해 교육감 후보의 당적 보유를 허용하는 부분적 당적허용제 등이 힘을 얻고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당과 상관없이 후보들이 난립해 출마하다 보니 선거비용만 낭비되고,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을 이해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해 후보 난립을 막고,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책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감 선거는 끝났지만 수당을 받지 못한 사무원들이 남았다. 그들의 사정 속에서 교육감 선거의 개선할 부분을 찾고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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