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는 어떤 사내인가. 도대체 그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축구천재인가, 아니면 몽상가인가. 텁석부리 수염에 작달막한 사내. 명품시계(250개 한정판 스위스 브랜드 위블로·인터넷 경매 2만2500달러)를 양손에 하나씩 2개나 차고, 귀고리에 팔찌까지 한 사내. 왼쪽 종아리에 피델 카스트로, 오른쪽 팔뚝에 체 게바라의 문신이 새겨진 사내. ‘부시는 전범’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반미집회를 이끌었던 사내. 한때 코카인 중독으로 죽을 뻔했던 사내. 기자들에게 공기소총을 난사하는 사내. 탈세로 전 재산을 몰수당한 사내….
소통 중시 친근한 형님 스타일
허정무 감독이나 마라도나나 리더십 스타일은 비슷하다. 결코 선수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둘 다 친근한 ‘형님 스타일’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따뜻한 카리스마와 대화로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낸다. 칭찬과 찬양, 고무로 선수들의 기를 살려준다. 마라도나는 한술 더 뜬다. 수시로 선수들과 껴안고, 볼 키스는 물론 손 키스를 퍼붓는다. 언론과의 인터뷰 때도 메시 등 자기 선수들 칭찬하기 바쁘다. 언뜻 작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세계 최고의 선수가 수두룩한데 시시콜콜 지시할 필요가 뭐 있을까. 자신이 세계 최고 스타 출신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스타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 감독은 한국에선 스타였을지 모르나 세계적인 스타는 아니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엔 선수로 나갔고,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엔 한국대표팀 트레이너로 참가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땐 코치로 3연속 출전했다. 3번 모두 처참하게 깨졌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무수히 깨지면서 세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배웠다. 그러면서 물이 차지 않으면 결코 배를 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 선수를 키우지 않고는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젊은 선수를 발굴했다. 박지성, 이영표, 이승렬, 김보경, 기성용 등이 좋은 예다. 주위의 비난에도 꿋꿋하게 신념대로 밀고 나갔다. 마라도나가 천재의 길을 걸어왔다면, 허정무는 쓴 나물 먹고 한뎃잠 자며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길을 걸어왔다.
마라도나는 격식이나 예의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공식회견장에 사과를 아삭아삭 깨물며 나오는 건 흔한 일이다. 6월 17일 한국과의 경기 직전 그라운드에서 아르헨티나 기자들과 ‘깜짝 인터뷰’를 하는가 하면, 아르헨티나 서포터즈들이 진을 친 본부석 쪽으로 걸어가 펜스에 몸을 기댄 채 연방 ‘손 키스’를 날렸다. 마라도나의 ‘손 키스’에 아르헨티나 응원단은 큰 환호로 화답했고, 마라도나 역시 사방에 ‘손 키스’를 날리며 로커룸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라운드에서도 깡충깡충 뛰거나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감싸는 등 온몸으로 즉석 퍼포먼스를 해댄다.
허허실실 전법에 손 못 쓰고 무너져
허 감독은 경기에 앞서 “다혈질이고 격정적인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조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를 좀 더 어렵게, 초조하고 과격하게 만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강팀도 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따라붙어 그들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마라도나는 교활했다. 그는 한국 전술을 환히 꿰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조급해하지 않았고, 전혀 다혈질도 아니었다. 되레 능글맞았다. 천천히 한국 선수들을 앞쪽으로 끌어낸 뒤 기회다 싶으면 번개처럼 골문으로 내달렸다. 메시는 골을 넣기보다는 절묘한 드리블로 2, 3명의 한국 수비를 달고 다니다가 빈 공간의 동료에게 송곳 같은 패스를 찔러줬다.
마라도나를 강하게 태클하는 허 감독.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허 감독은 마라도나를 전담 마크했다.
스페인같이 패스력이 정교한 팀도 단 한 번 스위스의 역습에 무너지는 게 축구다. 하물며 한국처럼 패스가 도중에 자주 끊기는 팀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설픈 공격이 화를 불렀다. 마라도나의 허허실실 전법에 허 감독이 당한 것이다.
허정무와 마라도나는 1986년 6월 2일 멕시코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한국-아르헨티나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한국은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은 참이었다.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마라도나가 얼마나 잘하는지, 그의 드리블 특징이 뭔지, 그의 움직임이 어떤지 아무것도 몰랐다. 세계축구 흐름에도 캄캄했다.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강이라는 것만 알았지, 어떤 전술을 쓰는지 모른 채 경기에 나섰다.
전반에 한국은 5-3-2 포메이션을 썼다. 아예 수비만 하겠다는 거였다. 전반 내내 공은 거의 한국 진영에서 놀았다. 마라도나는 멈칫멈칫, 갈 듯 말 듯 그 특유의 지그재그 드리블로 한국 선수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때 한국의 전담 마크맨이 허정무였다. 허정무는 ‘악으로 깡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바람 같았다.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도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요리조리 한국 진영을 미꾸라지처럼 잘도 헤집고 돌아다녔다. “나 잡아봐라! 용용 죽겠지!” 마라도나는 심술꾸러기 개구쟁이였다.
경기장 밖에서도 팽팽한 신경전
마라도나는 한국의 태클로 전반에만 6번 운동장에 나뒹굴었다. 전반 44분 허정무의 태클은 옐로카드를 줘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었다. 공을 찬다는 게 그만 마라도나의 왼쪽 허벅지를 걷어찼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사진으로 남은 ‘태권축구’ 장면이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6분 허정무의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을 마라도나가 찼다. 그 슛은 공이 한국 수비수를 맞고 튀어나왔고, 이를 다시 마라도나가 헤딩으로 떨어뜨렸다. 그것을 발다노가 받아 가볍게 오른발로 넣어 그물을 출렁였다. 한국은 제 실력의 반도 발휘해보지 못한 채 1대 3으로 무릎을 꿇었다.
빌라르도 아르헨티나 감독은 경기 후 “한국은 전반에 경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팀 같았다. 그런 극도의 수비 포메이션은 정말 굴욕적인 것이다. 한국이 1골(박창선)을 만회한 후반에는 그런 대로 잘했다”고 말했다. 마라도나도 불평을 쏟아냈다. “한국 선수들은 축구공이 아니라 내 다리를 가지고 경기를 했다. 축구와 미식축구를 반반 섞어놓은 게임이었다. 심판들이 좀 더 정확하게 휘슬을 불어줬어야 했다.”
2010년 6월 17일 허정무와 마라도나는 감독으로 다시 만났다. 경기 하루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마라도나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한국의 허정무 감독을 잘 알고 있다. 상대방 감독으로서 인사를 건넬 것이지만, 거친 경기는 물론이고 다리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발차기 등 반칙에 심판이 엄격히 판정해야 한다. 메시를 강하게 공격하고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지 못하게 한다면 심판이 강하게 나서야 한다.”
허 감독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축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라도나는 아직도 어린 티를 못 벗은 것 같다. 24년이 지난 이야기다. 엄연히 경기에 주심이 있고 심판이 경기 운영을 하고, 우리로선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당시 우린 32년 만에 월드컵에 나가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경험도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선수들은 당당하다. 유럽에서 경험한 선수도 많다. 그때와는 다르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잔뜩 주눅이 들어서 경기를 했지만, 이번엔 선수들에게 즐기라고 말했다. 결코 아르헨티나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경기장에서도 그들은 사이드라인 감독 박스 10m 사이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경기 전 두 사람은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대신 마라도나와 박지성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했을 뿐이다. 마라도나는 24년이 지나 벤치에 있었지만 악동 기질은 여전했다. 그는 잠시도 앉지 않았다. 끊임없이 소리 지르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뭔가 표현을 해댔다. 선수들에게 손으로 뭔가를 지시하고, 슈팅이 빗나갈 땐 머리를 쥐어뜯었다. 잔디가 패도록 그라운드를 걷어차기도 했다. 공이 마라도나 쪽으로 흘러나오자 오른쪽 구둣발 뒤꿈치로 가볍게 차서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팬들은 “와하!” 탄성을 질렀다. 왕년의 실력은 여전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인기 스타의 몸짓이나 다름없었다.
두 감독 모두 선수들을 친근한 형님 스타일로 이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넘어질 때마다 한국 벤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마치 허 감독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처럼 굴었다. 허 감독은 불쾌했다. 이번엔 대기 심판에게 마라도나 감독을 자제시키라고 부탁했다.
마라도나는 경기 뒤 “한국이 기회를 잡은 것은 우리가 실수할 때뿐이었다. 실수를 제외하고는 가능성을 전혀 내주지 않았다”며 기고만장했다. 거친 플레이는 아르헨티나가 더 많았다. 경고가 한국 2개, 아르헨티나 3개인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AP통신은 “그가 사이드라인에서 펼친 연극은 오스카상을 받을 만했다”고 평했다.
마라도나는 선수시절이나 지금이나 자유분방하다. 천재 기질이 역력하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허 감독은 신중하다. 하지만 독하다. 마음 깊이 비수를 품고 있지만, 결코 그걸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 ‘태권축구’란 말이 나올 때마다 자존심이 엄청 상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참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주도면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강했다. 24년 전 마라도나가 있었다면 이번엔 메시가 있었다. 메시는 마라도나처럼 한국 진영을 휘젓고 다녔다. 차이가 있다면 메시가 마라도나보다 겸손하고 진지하다는 것뿐이었다. 작전도 24년 전보다는 나았지만, 한국은 그때처럼 너무 움츠러들었다. 히딩크의 말처럼 허리에서 강하게 압박을 했으면 적어도 큰 점수로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년 후 웃는 사람은 과연 누구?
결국 개인기가 문제였다. 아무리 훌륭한 작전을 써도 선수 개인의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모래성을 쌓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옛날 한국 축구와는 달랐다. 허 감독은 24년 전의 한국 축구와 비교해달라는 기자들 물음에 “1대 4냐, 1대 3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 분명한 것은 1986년보다 우리 선수들의 능력이 훨씬 좋다는 것이다. 실점은 많았지만 좋은 경기였다. 경기를 하다 보면 득점을 할 수도, 실점을 할 수도 있다. 실점으로 경기 내용까지 규정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아마 경기 후 허 감독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24년 만에 이뤄진 마라도나와의 리턴매치. 결국 모든 것은 축구 실력으로 말해진다. 승자는 승리를 만끽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 하지만 패자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먼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꿈은 살아 있다. 한국도 16강에 올랐다. 누가 알겠는가. 4년 후, 아니 8년 후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4대 1로 무릎 꿇게 할지. 한국 축구에도 메시보다 나은 축구천재가 나타날지. 물론 그것은 도끼날을 갈아 바늘로 만드는 일이다.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 바늘로 우물을 파는 ‘고난의 행군’이 없이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허정무와 마라도나. 허정무는 앞으로 한국 축구를 꽃피울 책임이 있다.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한국 최고 명장의 자리에 올랐다. 차범근이 역대 한국 선수로서 최고였다면, 감독으로선 누가 뭐래도 허정무가 으뜸이다. 중국, 일본 등 외국 월드컵대표 감독으로 물망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인 감독이 됐다. 진정 허정무의 축구인생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라도나와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허 감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승부는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마라도나는 활짝 핀 꽃밭에서 마음껏 여유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10년 후 그들의 승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