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다. 천주교가 아니란다. 불교가 안 된단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다. 시국미사에, 성명서에 간단치 않다. 말 그대로 동티가 될 수도 있다.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공연히 건드려서 피해를 입는 것이 동티다. 물론 보기에 따라선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동티 운운이 기우일 수 있고, 속 보이는 호들갑일 수도 있다.
대개 어떤 주장이나 행위에 대한 시비(是非)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호오(好惡) 선택도 일종의 인권이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탓할 일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Schattschneider)란 정치학자는 이것을 민주정치의 조건 중 하나로 여겼다. 의도를 따지면 공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선의니 악의니 하는 것은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파장에 대해선 따져볼 수 있다. 천주교, 불교의 4대강 사업 반대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종교의 미움 받고 견디기 힘든 정치
현재 미국 정치의 보수세력 쪽 두뇌는 ‘신동’ 칼 로브일 것이다. 그는 ‘아들 부시’에게 두 번의 대선 승리를 안겼다. 그가 승리를 이끈 비결은 기독교 우파를 정치연합에 포함시킨 것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풀뿌리 조직이 약하다. 이 취약성을 기독교 우파로 메운 것이다. 논란이 있으나 결과로만 보면 탁월한 전략이었다.
중세가 무너지면서 종교는 정치와 결별했다. 정교 분리는 일종의 불문율이 됐다. 그러나 솔직히 종교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다. 아무리 높은 득표율로 승리했더라도 종교의 미움을 받고는 견디기 힘들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 영욕도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대선 때 개신교는 이명박 후보를 밀었다. 이처럼 종교나 종교인은 정치적 현실의 일부다.
박정희시대 때의 일이다. 토끼를 키우라고 권장하고, 얼마 뒤 성과를 측정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보고를 취합해보니 어찌나 토끼가 많은지 온 나라가 토끼로 뒤덮일 지경이었다. 성과 부풀리기 관행 때문이었다. 종교인의 통계에도 이런 거품이 있다. 2009년 정부의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있는 사람의 수는 7150여만 명이다. 이 중 불교는 3958만, 개신교는 1192만, 천주교는 488만 명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이처럼 많은 신도를 가진 불교와 천주교에서 반대하면 그 파장은 무시무시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은 한결같다. 반대가 찬성보다 훨씬 많다. 지난 3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정부의 원래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29%에 그쳤다. ‘규모를 축소해서 추진해야 한다’가 30.5%,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가 36.3%였다. 3대 7의 찬반구도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어떤 하나의 이슈에 대한 찬반이 곧바로 선거에서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투표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매개가 필요하다. 존 잴러(John Zaller) 교수의 말이 참고가 된다.
“정치에 민감한 사람조차 새로운 쟁점에 반응할 때는 엘리트가 던지는 메시지 속의 정당과 이념 편향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이른바 엘리트 단서(elite cue)론이다.
잴러 교수의 말에서 키워드는 엘리트다. 대중과 이슈를 연결해주는 엘리트의 언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천주교나 불교 교단 또는 일부의 4대강 반대가 갖는 의미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요컨대 문제는 천주교나 불교의 반대로 4대강 반대여론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4대강 이슈가 투표 이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찬반 비율을 가진 이슈가 투표의 결정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3월과 4월의 여론조사에서 지방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먼저 3월 조사결과다. ‘세종시 수정 논란’이 30.4%, ‘4대강 사업 논란’이 28.7%로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정권의 언론개입 논란’ 17.9%, ‘무상급식 논란’ 12.5% 등이 뒤따랐다. 4대강 사업은 이미 높은 순위의 투표요인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4월 조사에선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이 29.1%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서해 천안함 침몰사고가 19.4%, 세종시 수정논란이 17.8%, 무상급식이 12.4%,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및 재판이 9.4%였다. 수치는 3월 조사 때와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 특히 예민한 이슈인 천안함 침몰사고를 크게 누르고 4대강 사업이 1위에 올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표심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흔히 정당일체감, 지역주의, 이념성향, 경제상황 등을 거론한다. 특히 정당일체감이나 지역주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같은 사안에 대한 평가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예를 들면 클린턴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탄핵사유라 보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략적 공세라고 받아들였다.
따라서 엄청난 수의 천주교와 불교 신도 중에도 이미 특정한 고정된 투표요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들이 교단 지도부의 의견이라 해서 무조건 따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설사 따르더라도 이를 투표요인으로 삼을 사람은 제한적일 것이다. 이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도 추산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여론의 추세만 보면, 그리고 교단이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에 비한다면 그 파장이 실소로 응대할 만큼 작아 보이진 않는다.
MB식 마이웨이 추진도 투표 이슈
4대강 사업은 전형적인 대통령 어젠다(presidential agenda)다. 대통령이 애착을 갖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안이다.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 그 대통령의 소신은 누구라도 막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누가 감히 그에게 딴소리를 할 수 있으랴. 이럴 경우 공론화의 과정이나 커뮤니케이션 관리에서 문제가 생기기 쉽다.
4대강 사업이 드러내는 문제점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반대의견을 수렴하고 그들과 토론하는 과정이 대단히 부족했고, 지금도 그렇다. 급가속, 속도위반에다 어떤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이웨이다.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서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을 막고 있다. 방한한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뤼도 이 점을 지적했다.
“정치에 관한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기간이 선거철인데, 어떠한 선전이나 집회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 이런 사정도 4대강이 투표 이슈로 작용하게 만드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투표 이슈로 부각되면 될수록 여권에는 부담이다. 선거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 후도 큰일이다. 선거는 민심의 가장 간명하고, 강력한 표출이다. 만약 4대강 사업이 쟁점화된 선거에서 여권이 패배한다면, 이후 정책 추진의 동력이 많이 약화될 것이다. 결국 천주교나 불교의 4대강 반대는 ‘강하게 때리는’ 모양새가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형태로 선거와 향후 정치에 심상찮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대개 어떤 주장이나 행위에 대한 시비(是非)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호오(好惡) 선택도 일종의 인권이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탓할 일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Schattschneider)란 정치학자는 이것을 민주정치의 조건 중 하나로 여겼다. 의도를 따지면 공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선의니 악의니 하는 것은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파장에 대해선 따져볼 수 있다. 천주교, 불교의 4대강 사업 반대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종교의 미움 받고 견디기 힘든 정치
현재 미국 정치의 보수세력 쪽 두뇌는 ‘신동’ 칼 로브일 것이다. 그는 ‘아들 부시’에게 두 번의 대선 승리를 안겼다. 그가 승리를 이끈 비결은 기독교 우파를 정치연합에 포함시킨 것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풀뿌리 조직이 약하다. 이 취약성을 기독교 우파로 메운 것이다. 논란이 있으나 결과로만 보면 탁월한 전략이었다.
중세가 무너지면서 종교는 정치와 결별했다. 정교 분리는 일종의 불문율이 됐다. 그러나 솔직히 종교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다. 아무리 높은 득표율로 승리했더라도 종교의 미움을 받고는 견디기 힘들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 영욕도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대선 때 개신교는 이명박 후보를 밀었다. 이처럼 종교나 종교인은 정치적 현실의 일부다.
박정희시대 때의 일이다. 토끼를 키우라고 권장하고, 얼마 뒤 성과를 측정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보고를 취합해보니 어찌나 토끼가 많은지 온 나라가 토끼로 뒤덮일 지경이었다. 성과 부풀리기 관행 때문이었다. 종교인의 통계에도 이런 거품이 있다. 2009년 정부의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있는 사람의 수는 7150여만 명이다. 이 중 불교는 3958만, 개신교는 1192만, 천주교는 488만 명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이처럼 많은 신도를 가진 불교와 천주교에서 반대하면 그 파장은 무시무시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은 한결같다. 반대가 찬성보다 훨씬 많다. 지난 3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정부의 원래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29%에 그쳤다. ‘규모를 축소해서 추진해야 한다’가 30.5%,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가 36.3%였다. 3대 7의 찬반구도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어떤 하나의 이슈에 대한 찬반이 곧바로 선거에서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투표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매개가 필요하다. 존 잴러(John Zaller) 교수의 말이 참고가 된다.
“정치에 민감한 사람조차 새로운 쟁점에 반응할 때는 엘리트가 던지는 메시지 속의 정당과 이념 편향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이른바 엘리트 단서(elite cue)론이다.
잴러 교수의 말에서 키워드는 엘리트다. 대중과 이슈를 연결해주는 엘리트의 언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천주교나 불교 교단 또는 일부의 4대강 반대가 갖는 의미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요컨대 문제는 천주교나 불교의 반대로 4대강 반대여론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4대강 이슈가 투표 이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찬반 비율을 가진 이슈가 투표의 결정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3월과 4월의 여론조사에서 지방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먼저 3월 조사결과다. ‘세종시 수정 논란’이 30.4%, ‘4대강 사업 논란’이 28.7%로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정권의 언론개입 논란’ 17.9%, ‘무상급식 논란’ 12.5% 등이 뒤따랐다. 4대강 사업은 이미 높은 순위의 투표요인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4월 조사에선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이 29.1%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서해 천안함 침몰사고가 19.4%, 세종시 수정논란이 17.8%, 무상급식이 12.4%,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및 재판이 9.4%였다. 수치는 3월 조사 때와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 특히 예민한 이슈인 천안함 침몰사고를 크게 누르고 4대강 사업이 1위에 올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표심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흔히 정당일체감, 지역주의, 이념성향, 경제상황 등을 거론한다. 특히 정당일체감이나 지역주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같은 사안에 대한 평가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예를 들면 클린턴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탄핵사유라 보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략적 공세라고 받아들였다.
따라서 엄청난 수의 천주교와 불교 신도 중에도 이미 특정한 고정된 투표요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들이 교단 지도부의 의견이라 해서 무조건 따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설사 따르더라도 이를 투표요인으로 삼을 사람은 제한적일 것이다. 이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도 추산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여론의 추세만 보면, 그리고 교단이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에 비한다면 그 파장이 실소로 응대할 만큼 작아 보이진 않는다.
MB식 마이웨이 추진도 투표 이슈
4대강 사업은 전형적인 대통령 어젠다(presidential agenda)다. 대통령이 애착을 갖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안이다.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 그 대통령의 소신은 누구라도 막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누가 감히 그에게 딴소리를 할 수 있으랴. 이럴 경우 공론화의 과정이나 커뮤니케이션 관리에서 문제가 생기기 쉽다.
4대강 사업이 드러내는 문제점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반대의견을 수렴하고 그들과 토론하는 과정이 대단히 부족했고, 지금도 그렇다. 급가속, 속도위반에다 어떤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이웨이다.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서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을 막고 있다. 방한한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뤼도 이 점을 지적했다.
“정치에 관한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기간이 선거철인데, 어떠한 선전이나 집회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 이런 사정도 4대강이 투표 이슈로 작용하게 만드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투표 이슈로 부각되면 될수록 여권에는 부담이다. 선거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 후도 큰일이다. 선거는 민심의 가장 간명하고, 강력한 표출이다. 만약 4대강 사업이 쟁점화된 선거에서 여권이 패배한다면, 이후 정책 추진의 동력이 많이 약화될 것이다. 결국 천주교나 불교의 4대강 반대는 ‘강하게 때리는’ 모양새가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형태로 선거와 향후 정치에 심상찮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