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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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교란 노린 ‘치밀한 소행’

북 전통적 대남 전략전술로 회귀 …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정면 도전

  •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kjstar@kyungnam.ac.kr

    입력2010-05-24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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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교란 노린 ‘치밀한 소행’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는 예상보다 훨씬 치밀했다. 이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반론과 의혹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질문은 북한의 도발 이유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북한의 대남 적대성은 세월이 흐르고, 국제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울 것 없다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탈냉전 이후 북한이 벌인 가장 큰 규모의 도발 원인을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번 도발은 사건 해역의 조건이나 대담성을 고려할 때 의도적이고도 치밀한 작전 아래 이루어졌다. 달리 말해 군 하부 단위에서 자의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최고지도부가 명령을 내렸거나, 적어도 김정일이 사전에 승인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은 왜 큰 위험부담을 안고 이런 판단을 내렸을까.

    우선 2009년 11월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가 4000여 발의 대응사격을 받고 반파 상태로 쫓겨 간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1차 연평해전 이후 김정일이 서해함대를 찾아 보복을 명령해 2차 연평해전으로 이어진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보복이라면 2차 연평해전과 같이 드러내놓고 해야 할 터. 그렇다면 이번처럼 은밀하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더구나 북한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한다. 이 같은 행태는 ‘아웅산 사건’이나 ‘KAL858 사건’과 유사하다. 두 사건은 보복보다 남조선 교란을 위한 것이었다.

    북한군의 사기 진작, MB정부 대북정책 정조준

    따라서 이번 도발은 대남 응징용이라기보다 내부용일 가능성이 있다. 즉, 선군정치 아래서 김정일이 가장 의지하는 군의 사기 저하를 방지한다는 이유가 작용했을 수 있다. 최근 북한 정세는 심상치 않다. 화폐교환으로 재산을 빼앗긴 이른바 ‘부자’들의 불만이 높다. 뺏길 것 없는 하층민들과는 달리 이들의 불만은 북한정권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 안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군의 충성심을 유지하려면 사기 진작이 필요하다. 안보적 각성이라는 부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은밀하게 도발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은폐하면서 서해 NLL 지역이 평화롭지 않고, 안정되지 않은 곳임을 보여주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미국과 평화협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이 내걸고 있는 요구들을 미국이 쉽게 수용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당장 그런 기대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평화협정 논의 국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심모원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관계에 긴장을 유발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꾸게 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상회담을 구걸까지 했던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 괘씸죄를 걸었다고도 할 수 있다. 더구나 11월에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대북지원에는 인색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잘나가는 남한을 가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은 북한에게도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중국 대외정책의 핵심적 이익인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북한이 1980년대식 테러를 저지른 가장 큰 이유는 한국사회 교란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를 접고, 아예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동시에, 이 같은 도발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남한이 불안한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전략전술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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