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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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쥐 식품, ‘원인 미상’으로 끝내나

이물질 식품 늑장 대응 국민 공분 “조사 끝나고 회수 조치 말이 안 된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5-24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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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 일명 ‘노래방새우깡’ 사건 이후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지만 단속기관과 각 식품업체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응은 수위를 넘고 있다. ‘노래방새우깡’은 국민 건강식으로 40여 년을 사랑받아온 농심 새우깡(노래방용)에서 생쥐 머리가 발견되면서 붙은 별명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고 각종 조사가 진행됐지만 그에 대한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중국 공장의 새우깡 원료 밀가루 반죽공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갔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가 중국과의 통상마찰로 비화하자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식약청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생쥐가 들어간 새우깡과 같은 시기, 같은 공정으로 생산된 노래방용 새우깡은 회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농심은 소비자가 신고를 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야, 그것도 식약청의 공식발표가 있고서야 자진회수에 나서 비난을 샀다. 하지만 문제의 새우깡이 제대로 회수됐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법상 문제점을 찾지 못하고 조사가 종결됐기 때문에 회수 내용을 공개할 법적 의무가 기업에 없기 때문이다.

    뒷북행정에 사후약방문식 처벌

    이런 난맥상은 최근에도 재현됐다. 식약청은 5월 18일 쥐 사체가 발견된 신세계 이마트의 튀김가루(PL제품, 자체개발상품)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월 10일부터 11일까지 튀김가루의 실제 생산업체인 ㈜삼양밀맥스 아산공장에서 이뤄진 식약청의 현장조사 발표와 쥐 사체에 대한 DNA 분석, 부검 결과는 충격 자체였다. 다음은 식약청의 발표 내용.

    “포장지에 튀김가루를 담는 최종 공정의 설비 공간 내에 쥐가 혼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공장 내부의 제품 제조구역 등에서도 쥐가 활동한 흔적인 쥐 배설물이 발견됐으며, 제품에서 발견된 이물질과 같은 종류인 ‘생쥐’가 공장 내부 냉장창고에서 쥐덫(끈끈이)에 걸려 말라붙은 채 죽은 현장이 확인됐다. 소비자가 이물질이 발견됐다고 신고한 제품의 생산일자는 2009년 9월 17일인데, 이 업체가 방역업체를 통해 같은 해 8월 4일에서 9월 23일까지 자체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에서도 쥐 4마리가 제조 작업장·창고 출입구와 주변 등에서 잡힌 사실이 확인됐다. 발견된 이물질(쥐 사체)과 공장 현장에서 잡힌 쥐 사체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유전자가 동일한 ‘설치류(생쥐)’로 확인됐다.”



    식약청은 이 제품에 대해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유통판매금지 조치를 내리고, 삼양밀맥스 아산공장에는 시설 개수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같은 날, 같은 공정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회수 조치 등 행정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식약청 식품관리과 관계자는 “이번 행정 조치는 현장 확인 결과 제조 환경·시설 등이 미흡해 이물질(쥐) 혼입의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해 내린 조치일 뿐, 튀김가루 안에 든 쥐 사체가 아산공장의 생산공정이나 유통과정에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쥐가 튀김가루에 들어간 것을 본 사람이 나타나거나, 쥐가 들어간 현장 사진이 나오는 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농심 새우깡 사건처럼 원인 미상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소비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런 식이라면 문제가 된 제품을 그 당시에 생산한 직원의 내부고발이 있지 않는 한 처벌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정황상 증거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약청이 ‘원인 미상’의 추론을 내린 데는 삼양사의 반발도 한몫했다. 삼양사 홍보팀 관계자는 “쥐가 발견된 곳은 제조공정과 관계없는 창고였다. 식약청의 발표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서는 국민에게 죄송하지만, 엑스레이와 중량검사를 하기 때문에 제조공정에서 쥐 사체가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만큼, 해당 제품은 자진 회수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자진 회수에 나섰지만 시중에 남아 있는 해당 제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제품의 생산일자는 2009년 9월 17일, 소비자 김모 씨가 구입한 시점은 올 1월, 신고한 시점은 4월 27일인데 식약청이 자진 회수를 권고한 시점은 5월 10일이다. 즉, 회수에 나선 시점에는 제품의 대부분이 소비자 배 속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다. 식약청 관계자는 “제조업체가 양심껏 빠르게 자진 회수하지 않는 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제조업체 양심만 믿으라고…

    이물질이 들어간 식품 회수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이물질이 발견된 시점부터 식약청이 조사를 마치고 행정처분을 확정지을 때까지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정작 업체가 행정처분 이행을 위해 회수에 들어가려 하면 해당 식품은 시중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체가 이물질 신고와 동시에 스스로 잘못을 시인한 사안에 대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식약청이 5월 13일 1만2000여 개의 회수 명령을 내린 농심켈로그 ‘철심 시리얼’ 제품의 경우, 회사 측이 소비자에게 신고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제조공정에서 떨어진 부속품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혀내고 식약청에 알렸으나 식약청이 행정처분을 내리기까지는 무려 한 달 보름이 걸렸다. 농심켈로그 관계자는 “금속 체망이 발견된 ‘스페셜K’는 3월 29일, 22cm 스테인리스 재질 금속관이 발견된 ‘콘푸로스트’는 4월 13일 각각 제조공정 라인 설치물의 일부가 해당 제품에 떨어져 들어간 것임을 식약청에 신고했지만 회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회수할 제품이 시중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최종 행정처분은 회수를 얼마나 성실히 했느냐에 따라 결정돼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식약청 관계자는 “업체가 스스로 인정했다 해도 조사 없이 어떻게 행정처분을 내리나.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자진 회수에 나서면 될 일이었다”고 발끈했다.

    이물질이 들어간 제품의 회수 조치에 대한 법 규정도 비상식적이다. 식약청이 5월 13일 발표한 시정 대상에는 플라스틱이 들어간 제품(오곡으로 만든 첵스초코)도 포함돼 있었지만 회수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플라스틱 물질은 치아 손상 등의 위험이 크지 않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소비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요즘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고무벨트와 플라스틱 제품은 치아를 손상시킬 만한 강도를 지닌 것도 있고, 열이 가해지면 발암성분을 발생하는 것도 있는데 천편일률적으로 플라스틱만 제외시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농심의 경우 노후한 제품 이송벨트의 일부가 파손돼 제품에 들어간 쌀새우깡과 옥수수자루 조각이 발견된 과자에 대해 시설개수 명령만 받았을 뿐 제품 회수 조치는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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