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들은 웬만한 증상도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식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해 질병을 묻어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당연히 나오는 기침인 줄 알았던 증상이 노인천식이나 만성폐색성폐질환(COPD)의 징후로 밝혀진다든지, 단순한 식욕부진이 알고 보니 악성종양을 의미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필자의 진료실에서도 그런 일은 흔히 벌어진다. 어르신들이 걸을 때마다 느끼는 통증이나 불편함이 심하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혈관 질환의 신호였음을 미리 알아채는 가족은 거의 없다. 노화로 인해 뼈나 관절이 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증상은 실은 하지동맥폐색증이라는 매우 위험한 질환의 징후일 수 있다. 흔히 말초동맥 질환의 하나로 분류되는 이 질병은 특히 65세 이상의 노인, 흡연자, 당뇨병이나 고지혈증을 가진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 질병을 방치할 경우 사지절단(amputation)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며, 절단 이후에도 환자의 절반 정도는 5년 안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사지절단에 이르지 않더라도 말초동맥 질환은 결국 심장동맥 등 다른 혈관에 부담을 줘 관상동맥 질환 같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방심할 수도 없다. 이미 사지(四肢)를 지나는 동맥이 상당 부분 막혀 병이 진행됐어도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질병도, 발병 여부를 파악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요즘은 팔목과 발목의 혈압비를 측정해 다리 통증이 심혈관 질환에 의한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만약에 사지의 말초동맥이 심각하게 막혀 있다면 한두 시간의 간단한 비수술 요법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환자는 24시간 뒤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물론 치료의 용이함은 환자 가족의 관심에 비례한다. 질병을 일찍 파악할수록 치료가 쉽고 징후가 좋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