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시냇물이 있는 ‘산골의 하루’의 녹두닭백숙과 감자전.
도시 음식은 가볍다. 화려하고 세련된 문화 속에서 소비되니 때깔과 맛이 거기에 맞춰진 것이다. 이에 반해 시골 음식은 투박하다. 언뜻 보면 부정형인 데다 거친데, 자연에 가까운 곳의 음식이니 그렇게 차려지는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음식은 자연에 가까울수록 맛있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런데 시골스러운 때깔과 맛을 원하지는 않는다.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다. 시골 음식을 맛있다고 여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원 중심가에 ‘산골의 하루’라는 음식점이 있다. 신라호텔 등에서 20여 년간 요리를 하다 칭기즈칸 등 외식업체를 성공적으로 이끈 이의 최근 ‘작품’이다. 식당을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요즘 외식업체는 기획에서부터 인테리어, 음식, 물류, 서비스까지 총합적이며 창의적으로 완성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산골의 하루’는 디톡스(detox)를 콘셉트로 도입했다. 디톡스는 인체에 쌓인 독소를 뺀다는 개념의 제독요법을 말한다. 즉 섬유질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식재료를 이용, 건강에 좋은 음식을 내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디톡스 효과를 볼 수 있는 식재료인 호박, 칡, 녹두, 부추, 도토리로 음식을 낸다. 물론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나무가 있고 실개천이 있는 산골 풍경을 인테리어로 연출했고, 산골에서 먹던 옛날 음식을 재해석해 도시인의 입맛에 맞게끔 조리한다.
음식은 코스로 나오는데 샐러드와 호박죽, 도토리묵사발이 먼저 상에 오른다. 시원한 육수에 담긴 찰랑찰랑한 도토리묵이 곱다. 도토리묵사발 육수는 푹 삭힌 동치미 국물에 황태머리, 멸치, 다시마로 낸 국물을 더해 공력이 느껴지는 깊은 맛이다. 샐러드드레싱은 토마토를 즉석에서 갈아낸 것이라 향이 좋다. 이어 나오는 닭백숙은 녹두와 함께 익힌 것이다. 보통은 백숙을 먹고 남는 국물에 녹두를 넣어 죽을 끓여서 내는데, 이렇게 한 접시로 조리되니 색다른 맛이 난다. 녹두의 씁쓸한 맛이 닭의 구수한 맛과 잘 어울린다. 감자전도 있고 삼합도 나온다. 삼합은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 수육에 홍어무침, 양파채와 무쌈이 곁들여진다. 밥으로는 열무김치와 된장에 비지를 곁들인 보리밥이 나오고 들깨칡국수, 감자 옹심이(새알심)를 선택할 수도 있다. 강원도 음식을 표방하면서 새롭게 맛을 냈기 때문에 음식들이 예사롭지 않다. 감자 옹심이의 경우, 감자를 강판에 갈고 남은 건더기를 하룻밤 발효시켜 감자 앙금에 섞어 때깔과 맛을 더하는 식이다. 배추김치도 물에 불린 마른 고추를 갈아 질감을 살리고, 양파즙과 배즙을 넣어 단맛을 더했다. 이러니 음식에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어 660여 m2 규모의 식당엔 조리사만 8명이다.
앞에 설명한 코스의 메뉴는 ‘이장님 밥상’이다. 1인에 1만3800원이다. 여기에 음식이 추가되면서 ‘군수님 밥상’ ‘나라님 밥상’으로 나뉘는데, ‘이장님 밥상’이 가장 인기 있다. 이 음식만으로도 식당의 매력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나무와 시냇물 조경이 오밀조밀 아름다워 아이들이 야외에 나온 듯 즐거워한다. 가족 외식 자리로 더없이 좋다.
찾아가는 길 수원 갤러리아백화점 바로 뒤 하나은행 건물 8층에 있다. 전화 031-222-64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