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下心) 수행’이죠. 수행하지 않으면 목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1월6일 오후 한나라당 이인기(57) 의원이 11시간 동안 택시운전대를 잡았다. 일일 택시기사가 돼 경북 칠곡군 일대를 돈 것. 2005년 9월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후 거의 매년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올해도 새해 연휴 끝나고 1월4일에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폭설도 내렸으니 연기하라고 해서 6일로 정했죠.”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은 금방 ‘택시 얘기’가 쏟아져나올 듯한 표정이다.
“택시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기사와 손님이 서로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죠. 국회의원이 택시운전을 하니까 승객들도 굉장히 기분 좋아하세요. 잔돈을 안 받기도 하고, 감동받았다며 장문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하고요.”
국회에서 그가 ‘택시 마니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는 드물게 자기 차량이 없고, 집도 서울이 아니라 고향(왜관)에 있어 ‘콜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KTX로 이동한 뒤 대구에서 왜관까지는 늘 택시를 탄다. 택시비만 4만원. 생계비 가운데 교통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 ‘인기 지수’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2000년부터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살고 있어요. 서울에는 볼일을 보러 오죠. 그러니 택시 이용이 잦을 수밖에요. 집사람도 이젠 (택시비 문제는) 이해해줍니다.”
택시업계 사정을 잘 아는 덕에 그는 시도지사가 택시 공급 계획을 세우고 비용을 일부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뼈대로 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으로 지난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래도 선량(選良)들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일일 택시기사로 ‘변신’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온 게 사실.
“(웃음) 우리 동네(지역구인 경북 고령, 성주, 칠곡)에서 택시기사분들은 거의 다 저를 알아요. 많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택시회사 구내식당에 들러 3500원짜리 식사도 종종 하니까요.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택시 외에 다른 걸 했겠죠. 택시운전과 환경미화원 활동 등은 ‘하심’을 얻기 위한 방편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라는 뜻의 불교용어 ‘하심’과 택시의 상관관계가 흥미롭다. 이야기는 이랬다. 왜관의 소작농 가정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이 의원은 어려운 성장기를 거치며 ‘어려운 사람과 늘 함께해야 한다’는, 일종의 ‘이인기 도그마’가 형성됐다.
“왜관에서 대구의 중학교(계성중)로 진학했는데, 보통은 학교 앞에서 자취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형편이 안 돼 왜관에서 기차로 등하교를 했는데, 도저히 등교시간을 맞출 수 없더라고요.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동안 지각하고 벌을 서는 고난의 행군 끝에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 그때서야 학교에서도 ‘한 시간 지각’을 용인해줬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되니 가끔 어렸을 적 결심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운전대나 빗자루를 잡으며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향에서 택시기사, 환경미화원, 방범대원, 참외농가 품앗이를 하며 ‘촌사람 모드’로 살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하심 수행법은 아침참선. 그의 집 안방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는 좌우명이 붙어 있는데, 측근들은 이 의원이 매일 아침 이 문구를 읽으며 30분간 참선한다고 전한다.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저런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해요. 늘 겸손하게 살아야죠.”
그는 이날 12만6000원을 벌어 사납금 7만원과 가스비 4만원을 냈고, 남은 돈은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이 의원은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 관악서 수사과장 등을 지낸 뒤 199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96년 15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나서서 낙선한 뒤 16~18대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1월6일 오후 한나라당 이인기(57) 의원이 11시간 동안 택시운전대를 잡았다. 일일 택시기사가 돼 경북 칠곡군 일대를 돈 것. 2005년 9월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후 거의 매년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올해도 새해 연휴 끝나고 1월4일에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폭설도 내렸으니 연기하라고 해서 6일로 정했죠.”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은 금방 ‘택시 얘기’가 쏟아져나올 듯한 표정이다.
“택시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기사와 손님이 서로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죠. 국회의원이 택시운전을 하니까 승객들도 굉장히 기분 좋아하세요. 잔돈을 안 받기도 하고, 감동받았다며 장문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하고요.”
국회에서 그가 ‘택시 마니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는 드물게 자기 차량이 없고, 집도 서울이 아니라 고향(왜관)에 있어 ‘콜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KTX로 이동한 뒤 대구에서 왜관까지는 늘 택시를 탄다. 택시비만 4만원. 생계비 가운데 교통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 ‘인기 지수’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2000년부터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살고 있어요. 서울에는 볼일을 보러 오죠. 그러니 택시 이용이 잦을 수밖에요. 집사람도 이젠 (택시비 문제는) 이해해줍니다.”
택시업계 사정을 잘 아는 덕에 그는 시도지사가 택시 공급 계획을 세우고 비용을 일부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뼈대로 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으로 지난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래도 선량(選良)들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일일 택시기사로 ‘변신’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온 게 사실.
“(웃음) 우리 동네(지역구인 경북 고령, 성주, 칠곡)에서 택시기사분들은 거의 다 저를 알아요. 많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택시회사 구내식당에 들러 3500원짜리 식사도 종종 하니까요.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택시 외에 다른 걸 했겠죠. 택시운전과 환경미화원 활동 등은 ‘하심’을 얻기 위한 방편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라는 뜻의 불교용어 ‘하심’과 택시의 상관관계가 흥미롭다. 이야기는 이랬다. 왜관의 소작농 가정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이 의원은 어려운 성장기를 거치며 ‘어려운 사람과 늘 함께해야 한다’는, 일종의 ‘이인기 도그마’가 형성됐다.
“왜관에서 대구의 중학교(계성중)로 진학했는데, 보통은 학교 앞에서 자취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형편이 안 돼 왜관에서 기차로 등하교를 했는데, 도저히 등교시간을 맞출 수 없더라고요.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동안 지각하고 벌을 서는 고난의 행군 끝에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 그때서야 학교에서도 ‘한 시간 지각’을 용인해줬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되니 가끔 어렸을 적 결심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운전대나 빗자루를 잡으며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향에서 택시기사, 환경미화원, 방범대원, 참외농가 품앗이를 하며 ‘촌사람 모드’로 살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하심 수행법은 아침참선. 그의 집 안방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는 좌우명이 붙어 있는데, 측근들은 이 의원이 매일 아침 이 문구를 읽으며 30분간 참선한다고 전한다.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저런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해요. 늘 겸손하게 살아야죠.”
그는 이날 12만6000원을 벌어 사납금 7만원과 가스비 4만원을 냈고, 남은 돈은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이 의원은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 관악서 수사과장 등을 지낸 뒤 199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96년 15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나서서 낙선한 뒤 16~18대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