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14일 ‘이명박 특검법’ 처리를 둘러싸고 당시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근대국가를 세웠다. 중국의 근대국가 수립 시기도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과 중국 모두 일본보다 한 세기 정도 늦게 근대국가로 출발한 셈이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일본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일본 정치는 한국이나 중국보다 앞서 있다. 한·중·일 동북아 3개국 가운데 민주적이면서 안정적인 정치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일본뿐이다.
일본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우파에서 극좌파에 이르는 다양한 노선의 정당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매우 민주적인 정당체계를 갖췄다. 공산당도 합법적으로 인정됐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안정은 유지돼왔다.
일본의 정당정치는 언뜻 보면 비민주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자유민주당(자민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이 패전 이후 2009년까지 무려 반세기 넘게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당 내에서는 총리(총리대신)를 담당하는 인물이 수년마다 끊임없이 바뀌었다. 당내 여러 세력이 총리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권력경쟁을 벌인 결과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당이 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권력경쟁에 수반하는 원심력이 자민당 중심 정치라는 구심력을 깨뜨리지 못했던 것.
3개월 전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것은 일본 정치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다. 현재 민주당 정권은 자민당의 관료 중심 국정운영 체제를 정치인 중심 운영체제로 뜯어고치고 있다. 정부의 공공 토목사업을 되도록 최소화하는 대신 국민의 복지를 더욱 확충하고 대미 종속적인 일미동맹을 대등한 동맹으로 바꾸고,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발전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 변화를 과거 정권과의 단절로 봐서는 안 된다. 자민당 정권에 대해 축적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정도의 시도일 따름이다. 하토야마 유키오와 오자와 이치로가 이끄는 민주당은 자민당과는 ‘사촌’ 같은 정당이다. 두 당은 정책적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일본에서는 사촌 정당들 간의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식의 안정적인 민주정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정치가 이뤄지는 곳은 일본뿐
이처럼 일본 정치가 안정될 수 있었던 데는 총리의 역할이 컸다. 일본의 총리는 일인지배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배체제 리더의 위치만 가진 약한 지배자지만, 집단지배체제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는 구심점 노릇을 해왔다. 의원내각제는 일본에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강력한 정부를 유지하는 데 해가 되기는커녕 도움이 되는 정치제도로 정착했다.
여기에 일본의 정치적 안정에 공헌하는 또 하나의 정치구조가 바로 천왕제다. 일본 천왕은 일본의 역사시대 이전인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온 천왕가의 후손이다. 이 천왕가는 교체된 일이 없는 단일 왕조로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 역할을 현대에도 충실히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정치는 광복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안정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본보다 많이 경험했다. 민주정치가 자리 잡은 1987년 이후에는 물론 그전에도 시위, 쿠데타와 같은 비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수평적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의 집권정당은 자유당에서 민주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으로 바뀌었고, 최고통치자는 이승만에서 장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권력 추구자들 간의 권력투쟁은 매우 원심적이었으나 대통령 중심제의 일인지배체제가 그나마 이런 원심적 경향을 제어해왔다.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한 한국 정치가 그동안 파국을 맞지 않고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는 안전판 구실을 한 미국의 기여도 적지 않았다.
권력승계 제도화 중국도 효율적인 통치
한국 정치는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본 정치가 거의 100% 예측 가능한 데 비해 한국 정치는 100% 예측 불가능하다. 현재의 통치체제가 지속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다. 현재 이명박 집권세력은 대통령 중임제를 염두에 두고 내각제나 이원집정제를 추진하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은 이에 반대한다. 야당은 이 가운데 무엇이 유리한 길인지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당장 한나라당이 계속 유지될지, 깨질지도 알 수 없다. 다른 정당들의 장래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머지않아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빼내갈 것이고, 그럴 경우 한국 정치의 파국을 막는 최후의 안전판도 사라질 것이다. 미국이 물러간 뒤에 북한이 핵무장으로 한국을 위협할 때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불안정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게임의 룰’은 계속 흔들리고, 권력경쟁은 매우 원심적이면서 정당은 하루살이 정당들이고, 사회통합력도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자화상이다.
이에 비해 중국 정치는 비민주적이긴 해도 매우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이 지난 60년간 통치해왔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내부 권력투쟁으로 매우 불안정했으나, 권력승계 방법이 제도화한 지금은 비교적 안정됐다.
5년 임기의 국가주석직과 공산당 총서기직은 두 번만 할 수 있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역할분담에서 보는 것처럼 주석과 총리는 효율적인 국가통치를 위해 업무를 나눴다. 후계자도 예측 가능하다. 후진타오는 장쩌민 주석시대에 부주석으로 있다 장쩌민의 자리를 10년 만에 물려받았고, 후진타오는 그의 10년 집권이 끝나는 해에 현 부주석인 시진핑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 주석이 얼마나 집권하고, 다음에는 누가 집권할지 예측 가능한 것이 중국 정치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들은 권력누수 현상을 문제 삼아 부통령제 두기를 꺼려했고, 대통령의 ‘꼭두각시’에 그치는 총리직만 허용하는 옹졸한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일본과 중국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 정치는 민주화했지만 일본보다는 훨씬 뒤져 있고 어느 면에서는 중국보다도 뒤떨어졌다. 한·중·일 간의 이 같은 정치적 차이는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 쉽게 고쳐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차이가 앞으로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면, 한국 정치의 안정적 제도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