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보기 힘든 짜임새를 갖췄다는 평을 받는 ‘판타스틱 Mr. 폭스’
웨스 앤더슨은 4000여 개 소품, 150여 개의 배경에다 20분의 1로 축소한 동물인형들을 동원해 그것들을 일일이 손으로 움직여 영화를 찍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한마디로 앤더슨 감독의 ‘판타스틱 Mr. 폭스’는 기막히게 멋지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동물들의 털과 슈트 스타일(앤더슨은 촬영장에서도 슈트를 차려입고 나타나는 슈트 마니아다), 살아 움직이는 질감을 빼면 이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은 구름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여우의 털. 너구리가 빼입은 양복 천의 감촉과 색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CG라는 매끈한 기술로는 성취할 수 없는 ‘손맛’이 ‘판타스틱 Mr. 폭스’에는 담뿍하다.
사실 주인공 여우는 말이 여우지 야생동물성을 억압하고 사는 우리네 인간과 무척 닮았다. 한때는 아내와 함께 닭을 훔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더 이상 땅을 파지도 않고, 점잖게 신문에 기고를 하며 살아간다. 산속 멋들어진 나무 위의 집도 샀건만 폭스 씨는 뭔가 허전하다.
조지 클루니가 목소리 연기를 하는 Mr. 폭스는 ‘바틀 로켓’이나 ‘맥스 군 사랑에 빠지다’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 같은 앤더슨 감독의 전작 캐릭터들과 ‘허영심’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게다가 조지 클루니 특유의 섹시함과 유들유들함마저 묻어난다. 여기에 외유내강의 아내와 아버지, 사촌에게 눌려 살면서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앓는 아들 애시 역시 부적절한 자의식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는 신경증적인 앤더슨의 인물이라는 것을 척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판타스틱 Mr. 폭스’는 앤더슨 감독을 모르고 동화책을 넘기듯 보아도 재미있고,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명품 애니메이션이다. 앤더슨의 영화세계는 휘황한 입체보다 클로즈업조차 단순하게 잡아내는 일그러진 평면성이 최대의 매력이니까.
앤더슨의 인간관은 세계와 인물을 융합시키기보다 ‘따로 또 같이’ 존재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뭔가 유니폼이나 운동복 같은 것을 맞춰 입어 함께 있다는 티도 내지만(‘로열 테넌바움’에서 빨간색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은 삼부자를 보라), 그러면서도 적당한 생각의 간극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앤더슨 감독은 한판 멋지게 놀았다. 어렸을 적 인형 합체놀이를 하듯, 미니어처를 조립하듯 그렇게 잘 놀았다. 이 허전하면서도 산만한 연출, 그러나 따뜻한 질감의 여우 털 색감으로 가득 찬 OK목장 결투를 어떤 인형극이 재현할 수 있단 말인가. 금보다 더 달다는 사과 주스를 놓고 벌이는 동물들의 도둑 행각을 쫓다 보면, 문득 서부극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판치던 고전 영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앤더슨적으로. 철저히 앤더슨적으로 해석된 ‘판타스틱 Mr. 앤더슨 월드’로의 초대장을 손에 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