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호지스 ‘all of us’, 272.7x162.5cm, 1997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작품은 어디에?”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천장 구석에 아슬아슬하게 쳐진 거미줄, 파란색 볼펜으로 낙서해놓은 종이 냅킨, 실크로 만든 인조 꽃, 일부러 표면에 금을 낸 거울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라 그냥 지나치기 쉽죠. 작품이 되지 않았으면 진작 쓰레기로 분류됐을 재료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짐 호지스(Jim Hodges·52)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예술적 경지에 이른 레이스 뜨기 문화가 살아 숨쉬던 아일랜드로 여행하게 됐는데요. 그때 받은 인상은 이후 미국 시애틀에서 콘서트 무대장치로 사용된 어마어마한 크기의 밧줄 거미줄을 목격한 경험과 결합됩니다. 작가는 자연 속의 레이스 뜨기인 거미줄이야말로 가장 조각적이고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지녔고, 또 거미줄은 그가 콘서트장에서 본 것처럼 언제나 예기치 않은 장소에 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는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갤러리 천장 구석에 가는 은 체인으로 거미줄을 만든 작품 ‘all of us(우리의 모든 것)’를 통해 인공적인 갤러리 공간을 자연의 일부로 연장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발견의 기쁨을 선사하고요.
그럼 작품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누군가를 기다릴 때 무심코 끼적이던 냅킨 위 꽃그림은 한 개인의 기억이 남긴 흔적입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죠. 쉽게 버려질 종이 냅킨을 벽 위에 모아둠으로써 그는 과거로부터 살아남은 기억을 기념합니다.
이번엔 실크로 만든 인조 꽃들을 보죠. 작가는 큰 종이 위에 인조 꽃들을 실로 꿰맵니다. 커튼 형태가 되면 뒷면의 종이를 떼어내 얇은 막을 만들죠. 물론 엄청난 수공이 들고, 혼자 힘으로 불가능한 일인데요. 이 작품은 그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꽃 장식을 만들던 기억이 작용했어요. 가족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향수이자, 과거의 시간을 영원히 멈추게 하고픈 불가능한 바람이 녹아 있죠. 꽃은 관대한 자연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의 꽃과 연인 손안에 있는 꽃은 다른 의미를 지니죠. 인생의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꽃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습니다. 인조 꽃이니 시들 리가 없죠. 또 한 계절에 피기 어려운 꽃들이 한꺼번에 있는 것을 보니 17세기 네덜란드의 꽃 정물화가 생각납니다. 교양과 부의 상징이던 네덜란드 정물화는 계절을 달리하는 꽃들을 한꺼번에 꽃병에 꽂음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정지하며 자연의 순환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무상한 꿈을 피웠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작품이 어디에나 널린 하찮은 재료로 완성됐다는 사실은 일상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최근 작업 재료로 사용하는 거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울을 보면 해답보다는 질문이 많이 생기지요.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이게 바로 삶이 주는 교훈이죠.”
New Exhibition | 악동들 지금/여기展 노충현展 공간의 부재를 통해 상실의 정서를 표현해온 노충현의 세 번째 개인전. 전시 제목은 ‘실밀실’(室密室·closed-door room)로, 보이지 않는 사회적 밀실이 곳곳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전시는 크게 폐쇄와 감시를 은유하는 공간작업과 규율,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배열작업으로 나뉜다. 12월11일까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02-733-0440
악동들 지금/여기展 한국 현대미술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어떻게 사회에 개입하며 발언했는지를 살펴보는 기획전. 양아치, 김상돈, 박찬경, 배종헌, 믹스라이스, 최원준, 노순택 등 1990년대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미술을 실험, 실천하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다. 2010년 1월3일까지/ 경기도미술관/ 031-481-7007
백남준 국제예술상 수상작가展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백남준의 창조정신을 부활한다는 취지로 국제예술상을 제정했다. 첫 번째 수상자로 미술가 이승택과 로버트 애드리안 엑스, 시엘 플로이에, 아방가르드 무용의 선구자 안은미를 선정했고, 이번 전시는 이를 기념한 것이다. 2010년 2월28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031-201-85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