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최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개발 사장이 소유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뒤 임야를 아들 건호 씨(오른쪽 사진)가 지난 7월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권 여사는 지난 9월 노 전 대통령의 묘역 및 생가 시설 관리와 추모 기념사업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화’의 대표권을 행사하는 이사로 취임,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에 나설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10월엔 노무현 재단 출범 기념콘서트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부친보다 먼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아들 건호 씨는 재직 중이던 LG전자 미국 지사로 복귀하기 위해 최근 출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러 차례 의혹 제기된 곳
가족의 활동과는 별개로 최근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재단법인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을 출범했다. 11월24일엔 가족과 측근들의 노력으로 노 전 대통령의 육필원고와 육성기록을 담은 유고집도 발간됐다.
그 사이 노 전 대통령, 측근과 관련된 의혹들은 대부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실상 ‘영면(永眠)’ 상태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재정적 후견자로, 친형 건평 씨와도 절친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갖가지 의혹은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언론매체들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노 전 대통령은 물론, 가족과 측근 의혹에 대해서도 공세적인 보도를 최대한 자제했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자신의 진술이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로 대통령 가족과 관련된 수사가 종결되면서 결국 자신만 큰 틀에서 책임지면 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박 전 회장은 지난 9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300억원을 선고받고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처럼 대통령과 후원자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하루아침에 미묘하고도 비장한 관계가 된 이후 양측은 아무런 왕래나 만남도 없었을까. ‘주간동아’ 취재 결과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두 달 뒤인 지난 7월21일 박 전 회장의 최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개발 대표(휴켐스 전 부사장) 소유의 임야 2만2288㎡(약 6750평)를 건호 씨가 사들인 것.
정씨는 사실상 박 전 회장의 재정 책임자로,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헐값 매각사건과 관련해 입찰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며, 지난 9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건호 씨가 정 대표에게서 매입한 땅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ㄱ’자로 에워싼 임야. 공교롭게도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부지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 9번지(1만7950㎡)와 산 12번지(8628㎡)가 문제의 땅으로, 부동산 등기부상으로는 정씨가 2004년 12월과 2005년 2월 차례로 매입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땅이 주목받은 것은 2006년 11월 노 전 대통령이 산 9번지 일부(4280㎡)를 정씨에게서 사들인 이후부터다. 정씨는 이곳을 지분 분할(산 9-1)해서 팔았고, 노 전 대통령은 지목을 변경해 이곳에 사저를 지었다. 그러자 일부 언론매체에선 사저 부지 및 두 필지 임야의 서류상 소유주와 실질 소유주가 다르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월간조선’ 2007년 2월호는 산 9번지의 원소유주인 ‘김해김씨 안경공파 찬자배자후손회’ 관계자 등의 증언을 빌려 ‘노 전 대통령 사저 일대의 땅은 사실상 박 회장이 사서 노건평 씨에게 준 땅’이라고 보도했다. 다음은 기사에 나온 안경공파 관계자들의 증언 내용 중 일부.
정씨, 한 푼도 이득 없는 거래
“노건평 씨가 처음부터 우리 땅을 사고 나선 것이다. 2004년쯤 건평 씨와 사업을 같이 하는 이모 씨가 문중으로 연락을 해왔다. 그 후 우리가 건평 씨와 이씨를 함께 만났다. 생가를 짓고 공원을 만들려고 하니 문중 땅을 팔라고 부탁했다.”
당시 정씨는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정씨는 “고향 선배가 투자 목적으로 매입을 권유해 땅을 샀는데, 2006년 건평 씨가 땅을 팔 것을 요청해 거절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자신이 실제 주인이라는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통장으로 두 차례 입금한 내역까지 제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산 9-1번지 매입 대가로 건넨 돈은 1억9455만원.
정씨는 ‘신동아’ 2007년 5월호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땅을 살 때는 노 전 대통령 자택 신축 계획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 건평 씨와도 관련 없는 일이다. 봉하마을이 더 좋아질 것 같아서 2005년 투자 목적으로 사둔 것이다. 주말농장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땅값으로 전 소유주인 김해김씨 안경공파종친회 측에 4억5000만원 정도를 줬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급히 땅을 판 이유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부동산 거래였다면 분할해서 안 판다.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손해가 좀 나더라도 판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나머지 땅도 사겠다고 하면 팔 수 있다”고도 말했다.
산 9번지와 산 12번지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7월21일의 토지 매매로 건호 씨와 정씨 사이에 오간 매각대금은 2억5000만원. 정씨가 노 전 대통령에게 산 9번지 일부를 매각하고 받았다는 1억9455만원과 건호 씨에게서 받은 2억5000만원을 더하면 본인이 처음 산 9, 산 12번지를 매입할 때 원소유주들에게 지급했다는 4억5000만원과 거의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정씨는 4년간 보유한 부지를 한 푼의 이득도 얻지 못한 채 판 것이다. 토지 매매가 이렇듯 미리 약속된 것처럼 성사된 까닭은 무엇일까. ‘거래’의 성격은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