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의 모임 ‘민본21’은 개혁 성향 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 5월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정쇄신·당쇄신·당화합 어떻게 해낼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민본21 긴급토론회.
민본21은 복수노조 제한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을 골자로 하는 자체 입법개정안을 마련해두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선 노·사·정 6자 대표가 협상 시한인 전날 밤늦게까지 절충을 시도했지만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협상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조찬모임에 참석한 민본21 회원 11명(전체 회원 13명 중 2명 불참)은 아침 7시30분부터 2시간30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 복수노조는 노·노 갈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이 확인됐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의 경우, 전임자 1인당 노조원 수를 몇 명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500명, 1000명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결국 참석자들은 “노·사·정의 후속 논의를 지켜보면서 우리도 정부, 당, 노동계와 더 조율해보자”는 정도로 입장을 정리한 뒤 구체적 대안을 만들 ‘4인 소위’를 구성했다.
친이-친박 멤버 간 묘한 시각차
민본21은 지난해 9월4일 계파를 초월해 초선 의원 12명이 결성한 모임이다. 발족 당시 회원은 권영진 권택기 정태근 김성태 김영우 의원(친이명박계), 김선동 현기환 의원(친박근혜계), 김성식 주광덕 황영철 윤석용 신성범 의원(중립)이었다. 이후 중립 성향의 김세연, 박민식 의원이 참여해 14명이 됐다가 지난해 6월 김영우 의원이 탈퇴함으로써 13명이 모임에 나오고 있다. 결성 당시엔 김성식, 주광덕 의원이 공동간사를 맡았고 지금은 권영진, 황영철 의원이 2기 체제 공동간사다.
한나라당 안에 다양한 공부모임이 있지만 유독 민본21이 주목받는 이유는 활동 영역이 폭넓은 데다 참신한 정책대안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영진 간사는 민본21의 지향점에 대해 “국회개혁과 보수-진보를 떠난 시대적 가치 창출”이라고 정리했다. 정쟁에만 몰두하는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고, 한나라당을 국민의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초선 의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런 목표는 구호로만 그치지 않았다.
민본21은 지난 6월21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성공적 국정과 당을 위한 쇄신 제언’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즉흥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내부 논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날의 핵심은 ‘탈이념·중도실용의 정신에 입각한 국정기조의 재확립’이었다. 민본21은 이 문건을 당 쇄신특위에 제출했고,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e메일로도 보냈다. 이런 제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중도실용과 친(親)서민정책을 공식화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7월 민본21 멤버들은 여·야 의원들의 여론을 수렴해 국회개혁을 위한 5대 법률(국회법, 국정감사·조사법, 정당법, 국가공무원법,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에도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 비정규직법 개정 움직임을 견제하는 의견서를 당 정책위에 제출하는 등 여당 내에서 개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엔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면서 당·정·청 전면 쇄신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활동의 초점을 ‘정치’보다 ‘정책’에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정가에선 민본21이 한나라당 쇄신 논의의 동력을 잃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민본21 멤버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비롯한 당 쇄신론은 여전히 내부에서 살아 꿈틀대고 있다”며 “다만 지금은 예산국회가 열리고 있고, 세종시나 4대강 사업 같은 대형 이슈들이 등장해 있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 있고, 여당 안에서도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의 알력이 고조된 만큼 민본21이 정치적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권 간사는 “지금은 정치권 전체가 갈등 상황이어서 쇄신론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며 “예산과 세종시 문제가 일단락되면 (내년 초쯤)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민본21은 정국의 양대 현안인
4대강 사업과 세종시에 대해선 통일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11월26일 조찬모임에서는 노사 문제와 함께 4대강 사업을 중심으로 내년도 예산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여·야가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했으니 일단 지켜보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내부 토론을 거쳐 대안을 내놓자는 정도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12월10일쯤으로 예상되는 정부의 수정안 발표 이후의 추이에 따라 민본21의 역할을 찾기로 했다.
“여러 계파 개혁노선 한 길, 시너지 효과”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도 민본21이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노사 문제에 비해 결코 정책적 무게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사안을 ‘뜨거운 감자’로 여기면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바로 민본21에 두 쟁점에서 입장 차이를 보이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민본21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과거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 모임이었던 ‘미래연대’와 ‘새정치수요모임’의 사례를 떠올린다. 두 단체는 처음엔 당내에서 개혁 목소리를 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당내 계파 다툼 끝에 뿔뿔이 흩어졌다. 민본21은 이미 한 차례 그런 위기를 넘겼다. 지난 6월 친이 직계인 김영우 의원이 이 모임에서 탈퇴한 이유는 청와대를 겨냥한 민본21의 쇄신론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 의원은 “당에서 정말 필요한 모임이지만 상황을 풀어가는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같은 한계론에 대해 친박계 김선동 의원은 “회원들 사이에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신뢰가 쌓여 있고,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며 “개혁노선이라는 한 길을 가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 권택기 의원도 “그런 (계파 대립) 구도로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 아니냐”며 “계파에 속박되지 말고 개혁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모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간사는 “당내의 세 싸움에 휘말리는 논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특히 정책 분야에 초점을 맞추면 모임 안에 여러 계파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