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은 헌법조항을 바꾸면 그만인 단순 작업이 아니다. 다양한 현실 세력 간에 벌어지는 극렬한 권력투쟁이다. 지금의 헌법도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 간의 오랜 갈등 및 대립 끝에 나온 산물이다. 따라서 비록 많은 ‘개헌 수요’로 개헌이 절박한 당위라 할지라도 실제로 그것이 이뤄질지의 여부는 다른 문제라고 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언급한 개헌은 ‘통치권력과 권력구조’에 손을 대자는 것이다. 권력분산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권력분산형으로 가면 이 대통령으로선 나쁠 게 없다. 자신의 권력을 당장에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차기 대통령의 힘이 줄어든다면 ‘퇴임 후’에 대한 걱정도 줄게 된다. 당연히 이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정치세력의 운신 공간도 넓어진다.
4대강, 미디어관계법 논란 잠재우기 효과
이득은 또 있다. 개헌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되면 여타의 다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4대강 관련 예산이나 방송 개편 등 민감한 이슈가 뒤로 밀리게 될 것이다. 대중적 여론에서 비판 의견이 많은 이슈를 밀쳐내고, 유리한 어젠다를 중심 이슈로 삼는 것에 따른 치환 효과는 적지 않다. 정치에서 가장 파괴적인 현상은 실재하는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다른 힘에 의해 치환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통찰이다.
따라서 “현실성 있도록 범위를 좁혀서” 추진하자는 이 대통령의 말은 곧 개헌을 성취해 실익을 챙기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친이(親李)진영의 셈법이다. 하지만 친박(親朴)진영의 생각은 다르다. 미디어관계법 강행 처리 이후 박근혜 전 대표의 위상이 적잖이 손상된 터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대표직과 총리직 교체를 통해 정몽준, 정운찬을 ‘대권 시장’에 본격 등장시켰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아들 현철을 중심으로 진행하던 대권주자그룹 관리 프로그램도 다시 가동되고 있다. 또 있다. 지난 당내 경선에서 그랬듯 이 대통령의 기반이 중도로 확장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의 기반은 축소됐다. 개헌 문제에 대한 친박진영의 속내를 읽으려면 먼저 이런 정황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의 여론 흐름이나 정치구도는 박 전 대표나 친박진영에 결코 유쾌하지 않다.
박 전 대표에게 권력분산형 개헌이 갖는 위험성은 대권 레이스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박 전 대표가 독주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승리로 거머쥐게 되는 권력이 클수록 대세론의 효과도 커진다. 졌을 때 얻을 게 하나도 없다면 당연히, 그리고 서둘러 이기는 쪽에 줄을 서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승자 독식이 아니라 나눠먹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굳이 줄서기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나 조급함이 줄어든다. 또한 1위 후보의 위상이나 대세를 무시하고 다른 그림, 다른 플랜을 추진해볼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친박진영이 개헌 드라이브에 무조건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다. 먼저 개헌 수요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또 과거의 내각제 시도처럼 현 권력자의 음모라고 단정해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기보다 대권주자로서의 유·불리만 따진다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다. 손해날 것 같으니 반대한다는 비판 말이다.
민주당은 이미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정국을 호도하려는 저의가 숨어 있다’는 논리다. 민주당 처지에서 가장 큰 손해는 역시 어젠다 리더십, 이른바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는 것이다. 만일 개헌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이 대통령이나 여권의 어젠다로 추진된다. 여권으로선 수세에 몰려서 하는 개헌이 아니기 때문에 능동적 주체의 이점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반면, 민주당으로서는 끌려다니거나 따라다니는 수세(守勢)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권력분산, 즉 여러 사람이 권력을 나눠먹음으로써 여권의 몸집이 불어나고 분란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도 민주당에겐 나쁜 구도다. 민주당의 고민 역시 무턱대고 안 된다고 하기 곤란하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이 어디까지 나설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대통령의 정치적 음모라고 공격할 만한 빌미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개헌 시기를 ‘약한 고리’로 삼으려 하고 있다. 지방선거 후에 개헌하자는 논리다. 그나마 이 정도가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일 만큼 현재 민주당의 형편은 어렵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53.8%(한길리서치 9월 조사)나 되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권 혼자 강행할 수 없는 딜레마
자유선진당은 이 대통령이 나서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 민주당과 초점만 다를 뿐 어쨌든 여권이 주도하는 개헌이 싫은 것이다. 국민 누구도 헌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여야 합의에 의해 공론화를 시작한다면 이는 블랙홀처럼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이다. 여권이 주도하는 이런 소용돌이를 거치고 나면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은 그 존재감조차도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랏일을 맡고 있는 세력은 여권이다. 계속 주도하고 싶은 게 기본 속성이다. 끊임없이 자기가 펼치는 사안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길 원한다. 그리고 이를 동력 삼아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정권 재창출을 도모한다. 이는 어떤 여권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정치문법이다. 하지만 야권은 다르다. 그들로선 여권이 행한 일에 대해 잘못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가능성보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 시비를 따지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 측면에서 기정사실화한 정책 가운데 국민의 반대여론이 높은 것을 계속해서 정치 쟁점으로 삼으려 한다. 여권을 과거에 묶어놓아야 야권에게 미래가 있다는 정치문법이다. 개헌에는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야권이 반대하면 개헌은 어렵다는 점이다. 개헌안은 다수결로 밀어붙일 수 없는, 즉 강행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사실은 여권도 알고, 야권도 안다.
따라서 문제는 개헌 성사 여부가 아니다. 개헌 이슈를 통해 누가 국면을 주도하고,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전쟁이 정치의 또 다른 수단이듯, 개헌 문제의 핵심도 역시 정치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는 이 대통령, 더 넓게는 여권이 이점을 누리는 이슈라고 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언급한 개헌은 ‘통치권력과 권력구조’에 손을 대자는 것이다. 권력분산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권력분산형으로 가면 이 대통령으로선 나쁠 게 없다. 자신의 권력을 당장에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차기 대통령의 힘이 줄어든다면 ‘퇴임 후’에 대한 걱정도 줄게 된다. 당연히 이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정치세력의 운신 공간도 넓어진다.
4대강, 미디어관계법 논란 잠재우기 효과
이득은 또 있다. 개헌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되면 여타의 다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4대강 관련 예산이나 방송 개편 등 민감한 이슈가 뒤로 밀리게 될 것이다. 대중적 여론에서 비판 의견이 많은 이슈를 밀쳐내고, 유리한 어젠다를 중심 이슈로 삼는 것에 따른 치환 효과는 적지 않다. 정치에서 가장 파괴적인 현상은 실재하는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다른 힘에 의해 치환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통찰이다.
따라서 “현실성 있도록 범위를 좁혀서” 추진하자는 이 대통령의 말은 곧 개헌을 성취해 실익을 챙기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친이(親李)진영의 셈법이다. 하지만 친박(親朴)진영의 생각은 다르다. 미디어관계법 강행 처리 이후 박근혜 전 대표의 위상이 적잖이 손상된 터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대표직과 총리직 교체를 통해 정몽준, 정운찬을 ‘대권 시장’에 본격 등장시켰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아들 현철을 중심으로 진행하던 대권주자그룹 관리 프로그램도 다시 가동되고 있다. 또 있다. 지난 당내 경선에서 그랬듯 이 대통령의 기반이 중도로 확장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의 기반은 축소됐다. 개헌 문제에 대한 친박진영의 속내를 읽으려면 먼저 이런 정황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의 여론 흐름이나 정치구도는 박 전 대표나 친박진영에 결코 유쾌하지 않다.
박 전 대표에게 권력분산형 개헌이 갖는 위험성은 대권 레이스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박 전 대표가 독주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승리로 거머쥐게 되는 권력이 클수록 대세론의 효과도 커진다. 졌을 때 얻을 게 하나도 없다면 당연히, 그리고 서둘러 이기는 쪽에 줄을 서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승자 독식이 아니라 나눠먹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굳이 줄서기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나 조급함이 줄어든다. 또한 1위 후보의 위상이나 대세를 무시하고 다른 그림, 다른 플랜을 추진해볼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친박진영이 개헌 드라이브에 무조건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다. 먼저 개헌 수요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또 과거의 내각제 시도처럼 현 권력자의 음모라고 단정해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기보다 대권주자로서의 유·불리만 따진다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다. 손해날 것 같으니 반대한다는 비판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개헌 발언에 친박진영과 민주당은 복잡한 정치 셈법을 하느라 분주하다.
게다가 권력분산, 즉 여러 사람이 권력을 나눠먹음으로써 여권의 몸집이 불어나고 분란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도 민주당에겐 나쁜 구도다. 민주당의 고민 역시 무턱대고 안 된다고 하기 곤란하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이 어디까지 나설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대통령의 정치적 음모라고 공격할 만한 빌미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개헌 시기를 ‘약한 고리’로 삼으려 하고 있다. 지방선거 후에 개헌하자는 논리다. 그나마 이 정도가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일 만큼 현재 민주당의 형편은 어렵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53.8%(한길리서치 9월 조사)나 되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권 혼자 강행할 수 없는 딜레마
자유선진당은 이 대통령이 나서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 민주당과 초점만 다를 뿐 어쨌든 여권이 주도하는 개헌이 싫은 것이다. 국민 누구도 헌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여야 합의에 의해 공론화를 시작한다면 이는 블랙홀처럼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이다. 여권이 주도하는 이런 소용돌이를 거치고 나면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은 그 존재감조차도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랏일을 맡고 있는 세력은 여권이다. 계속 주도하고 싶은 게 기본 속성이다. 끊임없이 자기가 펼치는 사안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길 원한다. 그리고 이를 동력 삼아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정권 재창출을 도모한다. 이는 어떤 여권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정치문법이다. 하지만 야권은 다르다. 그들로선 여권이 행한 일에 대해 잘못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가능성보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 시비를 따지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 측면에서 기정사실화한 정책 가운데 국민의 반대여론이 높은 것을 계속해서 정치 쟁점으로 삼으려 한다. 여권을 과거에 묶어놓아야 야권에게 미래가 있다는 정치문법이다. 개헌에는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야권이 반대하면 개헌은 어렵다는 점이다. 개헌안은 다수결로 밀어붙일 수 없는, 즉 강행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사실은 여권도 알고, 야권도 안다.
따라서 문제는 개헌 성사 여부가 아니다. 개헌 이슈를 통해 누가 국면을 주도하고,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전쟁이 정치의 또 다른 수단이듯, 개헌 문제의 핵심도 역시 정치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는 이 대통령, 더 넓게는 여권이 이점을 누리는 이슈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