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국회에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위원회’(이하 특위)가 만들어졌다. 17대 국회에 이어 두 번째다. 위원장은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3선)이 17대에 이어 그대로 맡았다. 민주당 측의 실질적인 협상 통로는 최인기 의원(2선)이다.
정치 경력은 허 의원이 앞서지만 행정고시로는 최 의원이 4기수 선배. 두 사람에겐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91년 최 의원이 내무부 차관일 때 허 의원은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함께 일을 추진해왔다. 그래서 두 사람이 구상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향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금의 행정구역과 그 지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인 만큼 지방의회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그동안 논의돼온 것처럼 시·군·구가 통합해 광역화된다면 현재의 광역의회는 축소되고 기초의회는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지방의회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여야 중진인 허 의원과 최 의원에게 향후 논의될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향과 지방의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광역화·자치화 ‘투 트랙’ 개편, 생산적인 지방의회 될 것”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
지방의원들의 도덕성과 자질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 지방의회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부족하다. 두 번째는 지방의원들의 권한이 너무 적고, 세 번째는 주민들의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영남에서는 1번, 호남에서는 2번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나라에서 후보가 아닌 기호를 보고 투표하는 행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지방의회가 주민의 바람대로 돌아가긴 어렵다. 기본적으로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지방기초의회는 더하다. 견제하고 감시할 만한 언론기관도, 시민사회단체도 거의 없다. 형식적으로 의회만 구성돼 있지, 따지고 보면 기초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이 종친이거나 학교 선후배다. 기초의회에 견제와 균형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무너진 지방의회가 정상화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권한과 일을 줘야 한다. 또 지방의원들이 자치단체에 대해 견제와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보조기능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렵다. 지방의원이 너무 많다. 공무원 월급조차 자체 재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은데, 지방의원 보좌진까지 유급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가능한 게 세 번째, 즉 유권자의 지대한 관심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지역주민들이 자질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
그 다음엔 뽑힌 의원이 기대치만큼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를 늘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지금은 지역주민 대부분이 자기 동네의 기초·광역의원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더 모른다. 지방의원, ‘그들만의 자치’인 셈이다. 이래서는 지방자치 무용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주민을 배신한 사람, 뇌물을 받은 사람, 구속됐다가 풀려난 사람을 또 뽑아주면서 제대로 하라니, 그게 가능하겠나. 지역주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인가.
“투 트랙이다. 하나는 시·군·구 광역화, 다른 하나는 읍·면·동 자치화다. 시·군·구가 통합해 광역화되면 교육권과 경찰권, 그리고 병무청과 보훈지청 등 지역별로 설치된 국가특별지방관서의 권한과 자치사무를 모두 지자체에 넘겨줄 계획이다. 광역화되면 이점이 많다.
예를 들어 전북 무주·진안·장수는 지자체별로 군수와 군 공무원, 경찰서장과 경찰, 의회 등이 있고 여기에 필요한 재정 및 인력이 있는데, 이를 통합하면 많은 비용이 절감된다. 이 예산을 지역개발에 쓰면 훨씬 이득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요즘 읍·면·동 공무원은 할 일이 없다.
가장 큰 민원 업무인 인감증명 발급도 조만간 없어질 예정이다. 여기에서 남는 인건비를 지역개발에 쓸 수 있다. 이로 인해 지자체에 대한 주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은 읍·면·동을 순수한 자치단체로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 읍·면·동 자치의 부활이다.
읍·면·동 규모의 자치가 세계적 추세다. 읍·면·동 자치는 정부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자치 단위다. 대표도 지역주민들이 직접 뽑고, 공공 기능을 수행할 인물도 지역주민들이 직접 고용한다. 지역주민에게 인사권이 있으니 누구라도 지역주민들을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행정체제가 개편되면 지방의회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 같나.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따라 광역화되면 지방의원들은 그만큼 중요한 의결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많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지방의원직을 희망할 테고, 지역주민들도 좀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광역 단위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지방의회와 의원들을 견제하고 감시 및 감독하는 기관도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방의회를 좀더 생산적이고 능력 있는 의회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여야 협상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한나라당은 특위 위원들을 다 결정했는데, 민주당이 아직 정하지 못해 특위 자체가 구성되지 못한 상태다. 민주당에서 원내대표 선거가 있고, 희망하는 의원도 너무 많아 교통정리를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6월부터 특위 활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 정부 임기 중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도 염려하는 바다. 다들 총론에는 찬성하는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통합광역시 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놓고 지역주민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아무튼 여건은 최적기가 아닌가 싶다. 대다수 국민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앙정부에 업무가 과부하가 걸려 있는 반면, 지자체는 일도 없고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피폐해져 존립 자체가 어렵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단 희망하는 지역부터 자발적으로 광역화를 추진하도록 유도하면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반발과 희생을 줄이면서 비용도 적게 들이는 방법이라고 본다.”
특위에서는 어떤 일을 우선순위로 삼을 것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기본법을 만드는 것이다. 올해 연말까지가 목표다. 전국 시·도 단위 공청회도 열고, 각계 전문가들도 참여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통합법이 만들어진다고 당장 통합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는 지금처럼 치러진다. 목표는 2014년 차차기 지방선거부터다.”
지역 간 이해관계 때문에 자발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통합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도록 엄청난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2012년 중반까지 통합을 유도한 뒤 중간 점검을 해서 더 이상 지연하기 어렵다면, 중앙정부가 강제조정권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 간 경쟁원리를 도입해 최대한 자율적으로 통합을 유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지방의회 광역화, 이명박 정부에선 실현되기 어렵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
지방의원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기본적으로 전문성 부족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질 미달과 비정상적 행태 등이 나타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출신 지역의 이익만을 대변하려는 지역이기주의도 문제다. 예를 들어, 한 지자체에서 20억원을 들여 큰 도로를 놓으려 하면 지방의원들은 그 예산을 자기 지역개발을 위해 나눠 가지려고 한다. 서로 다른 읍·면 출신 의원이 10명이라면 2억원씩 나눠 갖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도로는 놓지 못하고 지역별로 조그만 샛길 10개를 놓는 경우가 생긴다. 반면 혐오시설은 자기 지역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권에 개입하거나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지방의원도 많다.
“지방의원들은 건설업이나 자영업 등 다른 직업을 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현재의 의정활동비는 제대로 일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직업이 없는 사람이 지방의원을 하긴 어렵다. 건설업자나 자영업자가 의원직을 겸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권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또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이 같은 정당 소속이면 견제와 감시, 감독 기능이 잘 지켜지지 않고, 다른 정당 소속이면 반목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지역주민만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있다면.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지역주민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 봉사도 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물론 정당에서 선거공보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는 방법을 마련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당초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시작된 제도가 생활 방편으로 삼는 사람들이 의원직에 오르면서 혼탁해졌다.”
지방행정체제가 개편되면 지방의회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지금처럼 여러 명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자질 있는 소수를 뽑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기초의회는 합칠 필요가 있다.”
지방행정체제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재편되는 게 효율적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시·군·구는 기초자치 단위로, 결코 작은 단위가 아니다. 다만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광역화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권역, 경제권역, 개발권역 등을 묶어 광역 단위로 변환함으로써 현재의 다층제 구조에서 단층제 구조로 만들자는 것이다.
어떤 규모가 효율적인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30만명 정도의 규모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대신 기존의 읍·면·동 단위에는 자발적인 대표자회의를 두고 자문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하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주민의 편익도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논의할 계획인가.
“여야가 원칙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당장 서울시 문제가 그렇다. 구와 동을 없애고 시에서 통합 관리하는 단층제 구조로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몇 개의 기초자치단체를 둘 것인지, 몇 개의 구로 나눌 것인지, 아니면 하나로 통합할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광역시는 시장이 구의회의 동의를 얻어 구청장을 임명하는 방법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광역 시민들은 구별로 자치 의식이 별로 없다. 기존의 시·군은 경제권, 행정권, 생활권이 가급적 일치하도록 적게는 4~5개, 많게는 7~8개씩 자발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통합은 희망하는 지자체별로 시작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도 단위의 행정구역은 완전히 사라지는가.
“지역별로 광역화되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도가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자율성에 기초를 둔 합의 추진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광역화된 곳에 대해서는 지위를 인정하면서 지원을 해나가면 촉진될 것이다. 이때 남는 문제는 전국이 50개 정도로 광역화된 이후에 정부가 이들을 일일이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권역별로 관할하는 광역단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쉽지 않다. 지역별로 행정장관을 두는 것도 방법인데, 만일 국가기구로 하면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감독 권한이 강화되면서 지방자치권 침해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권역별로 자치권한을 주면 미국처럼 연방제가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이번 정권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나.
“아무래도 이번 정권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 최소한 19대 총선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6월부터 특위가 가동하면 기본법을 만들어 자율·희망통합 원칙에 따른 지원은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통합은 19대 총선 선거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래야 정치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정치 경력은 허 의원이 앞서지만 행정고시로는 최 의원이 4기수 선배. 두 사람에겐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91년 최 의원이 내무부 차관일 때 허 의원은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함께 일을 추진해왔다. 그래서 두 사람이 구상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향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금의 행정구역과 그 지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인 만큼 지방의회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그동안 논의돼온 것처럼 시·군·구가 통합해 광역화된다면 현재의 광역의회는 축소되고 기초의회는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지방의회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여야 중진인 허 의원과 최 의원에게 향후 논의될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향과 지방의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광역화·자치화 ‘투 트랙’ 개편, 생산적인 지방의회 될 것”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
지방의원들의 도덕성과 자질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 지방의회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부족하다. 두 번째는 지방의원들의 권한이 너무 적고, 세 번째는 주민들의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영남에서는 1번, 호남에서는 2번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나라에서 후보가 아닌 기호를 보고 투표하는 행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지방의회가 주민의 바람대로 돌아가긴 어렵다. 기본적으로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지방기초의회는 더하다. 견제하고 감시할 만한 언론기관도, 시민사회단체도 거의 없다. 형식적으로 의회만 구성돼 있지, 따지고 보면 기초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이 종친이거나 학교 선후배다. 기초의회에 견제와 균형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무너진 지방의회가 정상화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권한과 일을 줘야 한다. 또 지방의원들이 자치단체에 대해 견제와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보조기능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렵다. 지방의원이 너무 많다. 공무원 월급조차 자체 재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은데, 지방의원 보좌진까지 유급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가능한 게 세 번째, 즉 유권자의 지대한 관심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지역주민들이 자질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
그 다음엔 뽑힌 의원이 기대치만큼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를 늘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지금은 지역주민 대부분이 자기 동네의 기초·광역의원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더 모른다. 지방의원, ‘그들만의 자치’인 셈이다. 이래서는 지방자치 무용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주민을 배신한 사람, 뇌물을 받은 사람, 구속됐다가 풀려난 사람을 또 뽑아주면서 제대로 하라니, 그게 가능하겠나. 지역주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인가.
“투 트랙이다. 하나는 시·군·구 광역화, 다른 하나는 읍·면·동 자치화다. 시·군·구가 통합해 광역화되면 교육권과 경찰권, 그리고 병무청과 보훈지청 등 지역별로 설치된 국가특별지방관서의 권한과 자치사무를 모두 지자체에 넘겨줄 계획이다. 광역화되면 이점이 많다.
예를 들어 전북 무주·진안·장수는 지자체별로 군수와 군 공무원, 경찰서장과 경찰, 의회 등이 있고 여기에 필요한 재정 및 인력이 있는데, 이를 통합하면 많은 비용이 절감된다. 이 예산을 지역개발에 쓰면 훨씬 이득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요즘 읍·면·동 공무원은 할 일이 없다.
가장 큰 민원 업무인 인감증명 발급도 조만간 없어질 예정이다. 여기에서 남는 인건비를 지역개발에 쓸 수 있다. 이로 인해 지자체에 대한 주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은 읍·면·동을 순수한 자치단체로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 읍·면·동 자치의 부활이다.
읍·면·동 규모의 자치가 세계적 추세다. 읍·면·동 자치는 정부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자치 단위다. 대표도 지역주민들이 직접 뽑고, 공공 기능을 수행할 인물도 지역주민들이 직접 고용한다. 지역주민에게 인사권이 있으니 누구라도 지역주민들을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행정체제가 개편되면 지방의회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 같나.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따라 광역화되면 지방의원들은 그만큼 중요한 의결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많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지방의원직을 희망할 테고, 지역주민들도 좀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광역 단위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지방의회와 의원들을 견제하고 감시 및 감독하는 기관도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방의회를 좀더 생산적이고 능력 있는 의회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여야 협상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한나라당은 특위 위원들을 다 결정했는데, 민주당이 아직 정하지 못해 특위 자체가 구성되지 못한 상태다. 민주당에서 원내대표 선거가 있고, 희망하는 의원도 너무 많아 교통정리를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6월부터 특위 활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 정부 임기 중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도 염려하는 바다. 다들 총론에는 찬성하는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통합광역시 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놓고 지역주민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아무튼 여건은 최적기가 아닌가 싶다. 대다수 국민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앙정부에 업무가 과부하가 걸려 있는 반면, 지자체는 일도 없고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피폐해져 존립 자체가 어렵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단 희망하는 지역부터 자발적으로 광역화를 추진하도록 유도하면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반발과 희생을 줄이면서 비용도 적게 들이는 방법이라고 본다.”
특위에서는 어떤 일을 우선순위로 삼을 것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기본법을 만드는 것이다. 올해 연말까지가 목표다. 전국 시·도 단위 공청회도 열고, 각계 전문가들도 참여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통합법이 만들어진다고 당장 통합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는 지금처럼 치러진다. 목표는 2014년 차차기 지방선거부터다.”
지역 간 이해관계 때문에 자발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통합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도록 엄청난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2012년 중반까지 통합을 유도한 뒤 중간 점검을 해서 더 이상 지연하기 어렵다면, 중앙정부가 강제조정권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 간 경쟁원리를 도입해 최대한 자율적으로 통합을 유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지방의회 광역화, 이명박 정부에선 실현되기 어렵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
지방의원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기본적으로 전문성 부족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질 미달과 비정상적 행태 등이 나타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출신 지역의 이익만을 대변하려는 지역이기주의도 문제다. 예를 들어, 한 지자체에서 20억원을 들여 큰 도로를 놓으려 하면 지방의원들은 그 예산을 자기 지역개발을 위해 나눠 가지려고 한다. 서로 다른 읍·면 출신 의원이 10명이라면 2억원씩 나눠 갖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도로는 놓지 못하고 지역별로 조그만 샛길 10개를 놓는 경우가 생긴다. 반면 혐오시설은 자기 지역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권에 개입하거나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지방의원도 많다.
“지방의원들은 건설업이나 자영업 등 다른 직업을 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현재의 의정활동비는 제대로 일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직업이 없는 사람이 지방의원을 하긴 어렵다. 건설업자나 자영업자가 의원직을 겸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권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또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이 같은 정당 소속이면 견제와 감시, 감독 기능이 잘 지켜지지 않고, 다른 정당 소속이면 반목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지역주민만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있다면.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지역주민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 봉사도 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물론 정당에서 선거공보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는 방법을 마련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당초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시작된 제도가 생활 방편으로 삼는 사람들이 의원직에 오르면서 혼탁해졌다.”
지방행정체제가 개편되면 지방의회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지금처럼 여러 명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자질 있는 소수를 뽑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기초의회는 합칠 필요가 있다.”
지방행정체제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재편되는 게 효율적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시·군·구는 기초자치 단위로, 결코 작은 단위가 아니다. 다만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광역화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권역, 경제권역, 개발권역 등을 묶어 광역 단위로 변환함으로써 현재의 다층제 구조에서 단층제 구조로 만들자는 것이다.
어떤 규모가 효율적인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30만명 정도의 규모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대신 기존의 읍·면·동 단위에는 자발적인 대표자회의를 두고 자문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하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주민의 편익도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논의할 계획인가.
“여야가 원칙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당장 서울시 문제가 그렇다. 구와 동을 없애고 시에서 통합 관리하는 단층제 구조로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몇 개의 기초자치단체를 둘 것인지, 몇 개의 구로 나눌 것인지, 아니면 하나로 통합할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광역시는 시장이 구의회의 동의를 얻어 구청장을 임명하는 방법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광역 시민들은 구별로 자치 의식이 별로 없다. 기존의 시·군은 경제권, 행정권, 생활권이 가급적 일치하도록 적게는 4~5개, 많게는 7~8개씩 자발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통합은 희망하는 지자체별로 시작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도 단위의 행정구역은 완전히 사라지는가.
“지역별로 광역화되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도가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자율성에 기초를 둔 합의 추진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광역화된 곳에 대해서는 지위를 인정하면서 지원을 해나가면 촉진될 것이다. 이때 남는 문제는 전국이 50개 정도로 광역화된 이후에 정부가 이들을 일일이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권역별로 관할하는 광역단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쉽지 않다. 지역별로 행정장관을 두는 것도 방법인데, 만일 국가기구로 하면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감독 권한이 강화되면서 지방자치권 침해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권역별로 자치권한을 주면 미국처럼 연방제가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이번 정권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나.
“아무래도 이번 정권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 최소한 19대 총선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6월부터 특위가 가동하면 기본법을 만들어 자율·희망통합 원칙에 따른 지원은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통합은 19대 총선 선거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래야 정치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