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강사 유수연
“전략노트 갖고 왔어요? 대답 안 해? 대답 나올 때까지 한다. 전략노트 가져왔어요?”
지난 12월 중순 찾아간 스타강사 유수연(37) 씨의 토익 강의는 시작부터 살벌했다. 200명으로 가득 차서 겨울임에도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강의실은 유씨의 몇 마디로 ‘제압’된다. 그는 매 강의 시작 10분 정도를 ‘토익 밖의 이야기’로 채운다. 가끔 경어를 사용하나 대부분이 반말이다.
“나, 오늘 4시간도 못 잤지만 사는 데 지장 없어. 지난 8년간 만날 이러고 살았어요. 누가 그러대, 그렇게 살면 행복하냐고. 난 행복이 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격지심은 없어. 후회나 미련도 없고. 그만큼 최선을 다했어. (중략) 여러분은 지난 1년간 뭐 했어? 아니, 당장 2시간 전을 돌아봐. 뭐 하나 제대로 부딪쳐서 인생에 도움 될 만한 일을 했어? 이런 걸 왜 해야 하냐고 불평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고생 20일(학원 한 달 강의 일수)로 단축해 (토익) 끝내도록 하세요.”
“회초리 한 대 맞은 느낌”
유씨는 ‘까칠한’ 강사로 유명하다. 개강 첫날 “나는 잔소리 많이 하고 까칠하니까 스타일이 안 맞으면 부드러운 강사를 찾으라”고 말할 정도. 그럼에도 유씨의 강의는 매달 전 타임 등록이 마감된다. 한 달에 무려 1000~1500명의 수강생이 그의 강의를 듣는다. 지난 10월 펴낸 자전 에세이집은 출간 한 달 만에 10쇄를 넘으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대학 4학년생인 한효정(25) 씨도 그중 하나. 2개월간 유씨의 강의를 들은 그는 토익 강의에서 “시험기술뿐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강의를 듣고 나면 회초리를 한 대 맞은 느낌? 먼저 사회 경험했고 성공한 선배에게 조언을 듣는 느낌이에요.”(한효정)
유씨와 같은 카리스마는 많은 인기 강사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다. 고객을 ‘모셔야’ 하는 여타의 서비스 업종과 달리, 학원강사에게는 스승으로서의 ‘권위’나 ‘신뢰’가 중요한 덕목이다. 스타강사들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지식 ‘퍼포먼스’를 보여 매료시킨다. 강사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게끔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능력 있는 스타강사들의 특징이다.
동기부여 방식은 다양하다. 신랄하게 독설을 던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연예인 못지않은 화려한 의상과 열정적인 강의를 선보여 압도하며, 형이나 언니 같은 다정함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방법도 있다. 때론 욕을 하기도 한다.
‘삽자루’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수학강사 우형철(45·비타에듀 · EBSi) 씨의 강의에서는 욕을 포함한 비속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삽자루라는 예명은 학원에서 ‘땡땡이’ 치거나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삽을 휘두른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우씨는 “중요한 건 체벌이나 욕이 아니다”고 말한다.
“일단 학생들이 ‘쟤(선생님)는 그래도 된다’고 인정했다는 거죠. 그만큼 내가 자기들에게 애착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또 내가 자기들보다 더 고생하고 있다는 걸 느끼니까.”(우형철)
유씨나 우씨 모두 자신의 인기 비결로 “(수강생들의) 절박함을 잘 알고 그에 맞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꼽았다.
이는 다른 스타강사들도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다. 메가스터디의 외국어 강사이자 쎄듀 대표인 김기훈(40) 씨는 “나는 내 의지대로 된다” “Be the miracle” 등의 어록으로 유명하다. 학습용 사이트 외에 개인 블로그를 따로 운영하는 김씨는 “일부 학생들은 수업 내용보다 내가 들려주는 삶의 목표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메가스터디 강사 김기훈, 이근갑 씨(왼쪽부터)
물론 수강생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수강생 못지않게) 강사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메가스터디의 언어강사 이근갑(42) 씨는 인터넷 수강생들에게까지 개인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많을 땐 하루 수백 통의 문자를 받는다는 그는 2000년 고등부 학원강사로 입문한 후 8년간 한 차례도 휴강을 한 적이 없다. “각종 모임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강의를 했을” 정도.
“하루 종일 연강을 하다 보면 너무 피곤해서 몸이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강사의 상태는 아이들이 금세 알아요. 어쩔 수 없이 진통제를 먹고 강의를 하죠. 요즘엔 위가 많이 나빠졌어요.”(이근갑)
열성에 더해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자신의 강의에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기훈 씨는 “‘선생님만 믿고 따르면 성적이 오른다’는 확신을 줘야 하는데, 이는 실력 없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의를 오후 1시에서 저녁 10시까지 할 경우, 강의가 끝난 다음 새벽 2시까지 교재 연구를 하고, 다음 날 아침 8시에 일어나 점심까지 다시 강의 준비를 합니다. 교과 범위가 같을지라도 강의 내용은 늘 새로운 것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강생들이 알아채죠.”(김기훈)
이 때문에 많은 스타강사들은 자체 교재 개발에만 2억~3억원을 투자할 만큼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또 대부분 매니저를 비롯해 교재연구와 수강생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전담하는 5~10명의 연구원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 수강생들과의 적절한 눈맞춤, 표정, 말투, 심지어 판서 글씨체까지 모두 매력 있는 수업의 구성요소로서 역할을 한다. 이근갑 씨는 “수강생들에게 고루 시선을 나눠주는 것, 리듬감 있게 목소리 톤을 조절하고 강조할 부분을 확실히 반복해주는 것 등은 효과적인 전달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강사는 뇌의 반은 강의할 내용에, 나머지 반은 수강생의 반응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죠.”(이근갑)
서울 노량진 한 사설학원의 강의실 모습.
최근에는 대부분의 스타강사들이 인터넷 강의에 출연하면서 옷차림이나 외모도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게 됐다. 삽자루 우형철 씨는 “인터넷 강의 초기엔 화장을 하다가 요새는 피부관리만 받는다”면서 “아이들의 문화를 알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꾸준히 체크하고 코미디 프로그램 등은 빠뜨리지 않고 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타강사는 만들어지는 걸까. 관계자들은 오히려 ‘타고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스타강사들은 “자신의 색깔을 잃을까봐 다른 인기강사의 강의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수연 씨는 “연예인이 무대에서 연기나 노래를 보여준다면, 강사는 강단에서 지식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며 “고유한 스타일이 없으면 결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0년 초 강사 양성을 위해 쎄듀강사아카데미를 운영한 바 있는 김기훈 씨도 “훈련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은 70% 정도고 나머지는 고유한 부분이라 바꿀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도 최근 들어 팬서비스 역시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 예로 김씨는 2004년부터 매년 수능 시즌이 되면 자신이 직접 부르고 연주한 ‘수능 대박송’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며,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스타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강생 응원메시지 영상이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은 일반화됐다. 일부 스타강사들은 1억원 가까운 사비를 털어 수능 이후 수험생을 위한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메가스터디의 손은진 전무는 “강의 못지않게 응원영상의 조회 수가 높다”면서 “연예인처럼 강사를 친근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