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존 케이지’(1990)
그러한 백남준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와의 만남이다. 음악가였던 존 케이지에게서 그는 예술이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 그것은 전통과 대면해 전통을 부수는 것이었다. 존 케이지는 서양 전통음악의 옥타브로 제한된 음과 대면해 소음을 끌어들였는데,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백남준은 공연장에서 전통악기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부쉈다. 그의 예술가로서 출발은 석고데생이나 지필묵이 아니라 퍼포먼스였다. 그때 요셉 보이스가 혜성처럼 나타나 백남준의 짓거리들을 옹호해줬고, 비로소 그는 미술계에 족보를 뿌리내리게 된다.
1963년에 백남준은 독일에서 12대의 텔레비전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그 전시회로 그는 일약 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됐고, 그 후 비디오아트는 엄청난 전염력으로 파급돼갔다. 만약 그 역사적인 전시회가 한국에서 열렸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전통에 기대 먹고사는 보수적인 기성 화단은 그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거나, 그림의 기초가 없다는 점을 문제삼아 난도질했을 것이다.
전통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라 대면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현대미술은 아카데미즘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술의 규범이 정해졌다고 믿는다거나, 특정한 기준에 근거한 교육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백남준은 예술이 전통과 대면해서 벌이는 의식의 게임이라는 점을 이해한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는 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해학을 지닌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