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을 밝힐 성화(聖火)가 프랑스 파리 봉송 도중 세 번이나 꺼졌다는 것은 잘못 전해진 얘기다. 성화는 성화로와 랜턴, 그리고 토치라 불리는 성화봉 등 3단계의 안전장치가 돼 있어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설사 성화봉의 불이 꺼진다 해도 랜턴에는 불씨가 남아 있고, 랜턴도 불안해 성화로에 불씨를 남겨놓기 때문이다.
성화봉에는 압축 프로판 가스가 들어 있어 물속에서도 불이 타오를 수 있다. 호수든 강이든 바다든, 수압만 높지 않으면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물에서 봉송할 때는 성화봉의 불을 랜턴으로 옮긴다.
유사시 대비 랜턴과 성화로에 불씨 남겨
성화봉의 무게는 사람이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400g 내외. 봉송의 부담을 덜기 위해 손잡이 부분도 얇게 설계된다.
성화 봉송 때는 한 사람이 500m 이상은 이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잖게 든다. 4월27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서울시청에 이르는 22km 코스에는 모두 69명의 봉송 주자(체육인, 연예인 포함)가 동원됐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해당 도시(서울),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성화 봉송을 후원하는 업체 3곳(코카콜라, 삼성, 컴퓨터 회사 Lenovo) 등 총 6곳에서 추천한 69명이 오후 2시에서 7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성화를 봉송했다. 마지막에는 88서울올림픽 개막식 행사 때 굴렁쇠를 굴렸던 윤태웅 씨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청 앞에 마련된 소형 성화대에 성화를 옮겨 붙였다.
‘마라톤 영웅’ 황영조, 전 국가대표 역도선수 전병관, 가수 바다와 탤런트 송일국,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등 69명의 성화 봉송 주자들은 사전에 2시간가량 교육을 받은 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가 지급한 유니폼을 입고 지정된 코스를 뛰었다. 서울시에서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봉송 비용을 충당했지만 기본적으로 봉송 주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성화 봉송에 얽힌 이야기●●●
성화 봉송이 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인 때는 제1회 아테네올림픽이 열린 지 꼭 40년째가 되던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이었다. 당시 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려 했던 독일의 히틀러가 발칸반도 국가의 청년들을 동원해 베를린까지 릴레이를 시킨 것이다.
성화는 1928년부터 1948년까지는 단순히 ‘올림픽의 불(Olympic fire)’이라 지칭됐는데, 50년 처음으로 올림픽 헌장에서 ‘성화(Sacred olympic fire)’라고 규정했다. 성화와 성화 봉송, 성화 최종 점화는 올림픽 개막 행사의 일부가 됐으며, 고대 올림픽 정신을 지킨다는 의미로 비중 있게 자리잡았다.
성화는 개최지에 따라 비행기나 배로 운반되며, 육지에서는 릴레이로 전달된다. 최종 점화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는 최종 점화자가 남자선수에서 여자선수로 바뀌기도 했으며, 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는 남녀 한 쌍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96년 무하마드 알리 떨리는 손으로 점화 깊은 인상 남겨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 당시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전 권투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성화를 점화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는 하늘을 날기 위해 대기하던 비둘기가 성화에 타 죽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성화 해외 봉송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시작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해 올림픽이 1896년 근대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108년 만에 열리는 만큼 역대 올림픽 개최지에 성화를 봉송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결국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된 성화는 역대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 런던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도쿄 서울, 그리고 멜버른을 거쳐 그리스 국내를 돌다가 개막식 날 주경기장을 밝혔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로는 110m 허들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유시앙, 성화 최종 점화자는 중국 출신 NBA 스타 야오밍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과 개막식 점화가 어떤 묘미를 가져다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최근 서울에서의 성화 봉송 과정에서 일부 중국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자국에서 펼쳐질 올림픽의 순수한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성화봉에는 압축 프로판 가스가 들어 있어 물속에서도 불이 타오를 수 있다. 호수든 강이든 바다든, 수압만 높지 않으면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물에서 봉송할 때는 성화봉의 불을 랜턴으로 옮긴다.
유사시 대비 랜턴과 성화로에 불씨 남겨
성화봉의 무게는 사람이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400g 내외. 봉송의 부담을 덜기 위해 손잡이 부분도 얇게 설계된다.
성화 봉송 때는 한 사람이 500m 이상은 이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잖게 든다. 4월27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서울시청에 이르는 22km 코스에는 모두 69명의 봉송 주자(체육인, 연예인 포함)가 동원됐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해당 도시(서울),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성화 봉송을 후원하는 업체 3곳(코카콜라, 삼성, 컴퓨터 회사 Lenovo) 등 총 6곳에서 추천한 69명이 오후 2시에서 7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성화를 봉송했다. 마지막에는 88서울올림픽 개막식 행사 때 굴렁쇠를 굴렸던 윤태웅 씨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청 앞에 마련된 소형 성화대에 성화를 옮겨 붙였다.
‘마라톤 영웅’ 황영조, 전 국가대표 역도선수 전병관, 가수 바다와 탤런트 송일국,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등 69명의 성화 봉송 주자들은 사전에 2시간가량 교육을 받은 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가 지급한 유니폼을 입고 지정된 코스를 뛰었다. 서울시에서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봉송 비용을 충당했지만 기본적으로 봉송 주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3월2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채화되고 있다.
성화 봉송이 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인 때는 제1회 아테네올림픽이 열린 지 꼭 40년째가 되던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이었다. 당시 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려 했던 독일의 히틀러가 발칸반도 국가의 청년들을 동원해 베를린까지 릴레이를 시킨 것이다.
성화는 1928년부터 1948년까지는 단순히 ‘올림픽의 불(Olympic fire)’이라 지칭됐는데, 50년 처음으로 올림픽 헌장에서 ‘성화(Sacred olympic fire)’라고 규정했다. 성화와 성화 봉송, 성화 최종 점화는 올림픽 개막 행사의 일부가 됐으며, 고대 올림픽 정신을 지킨다는 의미로 비중 있게 자리잡았다.
성화는 개최지에 따라 비행기나 배로 운반되며, 육지에서는 릴레이로 전달된다. 최종 점화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는 최종 점화자가 남자선수에서 여자선수로 바뀌기도 했으며, 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는 남녀 한 쌍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96년 무하마드 알리 떨리는 손으로 점화 깊은 인상 남겨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 당시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전 권투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성화를 점화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는 하늘을 날기 위해 대기하던 비둘기가 성화에 타 죽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성화 해외 봉송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시작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해 올림픽이 1896년 근대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108년 만에 열리는 만큼 역대 올림픽 개최지에 성화를 봉송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결국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된 성화는 역대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 런던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도쿄 서울, 그리고 멜버른을 거쳐 그리스 국내를 돌다가 개막식 날 주경기장을 밝혔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로는 110m 허들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유시앙, 성화 최종 점화자는 중국 출신 NBA 스타 야오밍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과 개막식 점화가 어떤 묘미를 가져다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최근 서울에서의 성화 봉송 과정에서 일부 중국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자국에서 펼쳐질 올림픽의 순수한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