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dest - 자신을 낮춰라
- Service -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 봉사하라
- Open Mind - 열린 마음을 가져라
- Idea - 늘 새롭게 발상하라
- Passion - 열정을 품어라
그런데 이 대통령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갑-을 관계가 역전됐다. 을 출신인 이 대통령은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을)이 되라”고 몰아붙였다. 공무원(갑)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때문에 ‘을의 세계’와 ‘을 마인드’가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다.
MB 등장으로 갑에서 ‘을’ 된 공무원들
“20여 년 전 네놈이 ‘이제 직장에서 퇴직하셨으니 아무 일 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라고 말해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내 나이가 여든이 넘었다. 네 말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백수로 살았다. 하지만 그냥 놀고먹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 네가 그 말을 안 했다면 일을 좀더 했을 텐데 말이다.”
80대 노인이 환갑 맞은 아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질책했다고 한다. 날로 고령화돼가는 추세로 볼 때 그저 웃고 지나칠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 노인이 노력했다면 새로운 잡(job)을 찾았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찾았다 한들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엔 경험이나 자본, 경영기술 같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바로 갑-을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천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갑-을 관계로 이뤄진다. 갑은 발주자이며 을은 수주자다. 갑은 고용자이고 을은 피고용자다. 상호 동등한 처지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갑의 행동에 따라 을의 상황은 달라진다. 갑은 물건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을 납품하는 상대일 수도 있다. 을은 갑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원래 갑과 을은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 쓰인다. 영문 계약서에는 ‘A’와 ‘B’ 혹은 ‘the one’과 ‘the former’로 표현된다. 서구 문화에서는 그야말로 일방과 그 상대방을 가리키기 때문에 관계의 불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실은 다르다. 특히 서양의 갑-을 관계와 달리 우리나라는 수직적이고 주종(主從)적인 성격까지 내포하기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종이문서에 불과한 계약서를 살펴보자. 여기에도 ‘상석(上席)’과 ‘말석(末席)’이 있다. 통상적으로 갑과 을은 계약서를 2부 작성해서 한 부씩 나눠 갖는다. 두 문서의 옆 부분을 맞대고 그 사이에 도장을 찍는 ‘간인(間印)’을 하는데, 이때 갑의 날인 자리는 항상 위쪽이다.
갑과 을이 상하관계를 갖는 독특한 구조에는 인정주의가 개인주의나 합리주의에 우선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우리는 더치페이를 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전부의 밥값을 낸다. 요즘 젊은이들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비즈니스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밥값과 술값은 자연스레 을의 몫으로 인식되기 일쑤다.
만약 소소한 밥값을 내지 않는 강심장을 보였다가는 갑의 눈 밖에 나서 비즈니스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을은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 과정에 을의 비애가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다음과 같은 경우다. 한 사업가의 회고다.
“한번은 갑과 식사 약속이 있어 갔습니다. 갑은 한 사람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갑이 물건을 납품하는 회사 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처지에서 보면 ‘갑의 갑’인 셈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갑과 ‘슈퍼갑’을 모시고 접대해야 했습니다.”
지난해 12월28일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환영하는 재벌 총수들. 이 대통령은 을(乙) 출신으로 대통령(甲) 자리에 오른 최초의 기업인이다.
이처럼 사업가 을은 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갑을 요리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을의 생존법’이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다 나온 사람들은 이 을의 세계에 대해 잘 모르며, 준비 또한 미흡하다. 따라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직장인 역시 마찬가지다. 사장이나 상사는 말단 직장인에겐 갑이다. 역시 갑-을 관계가 성립된다. 직장의 시계는 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팀장이 당구를 좋아하면 갑자기 팀원의 당구장 출입이 잦아진다. 상사가 술을 좋아하면 술 약한 부하도 술을 많이 먹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폭탄주를 즐겨 마시는 상사라면, 부하직원은 ‘죽을 각오’를 하고 술자리로 끌려간다. 반대로 상사가 술을 싫어한다면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직원이더라도 꾹 참고 물을 술 삼아 마실 수밖에 없다. 팀장이 골프광이라면 골프를 치지 못하는 직원은 당분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상사인 갑의 기호와 취미요, 을의 상황이나 생각은 고려되지 않는다. 을은 이 갑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쉽지만은 않은 게임이다.
직장 밖은 어떤가? 자신이 속한 회사가 거래처의 을인 경우 고달프기 짝이 없다. 영업하는 직장인은 하루 20~30통의 전화를 거는 것을 의무로 한다. 일부 회사에선 무작정 특정 빌딩을 정해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는 ‘빌딩치기’를 교육한다. 나이 지긋한 회사 사장이 거대한 회사의 새파란 갑을 만나 쩔쩔매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다.
직장인의 미래에는 대체로 네 가지 길이 있다.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맡은 업무를 수행해 중간관리자가 된 후 정년퇴직하는 길, 최선의 노력을 통해 임원 혹은 사장이 되어 최고 갑의 지위를 누리는 길,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겨 여전히 직장인이긴 하지만 제2의 생을 이어가는 길, 과감하게 직장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드는 길. 네 가지 길 모두 만만치 않지만 대부분의 직장인 앞에 펼쳐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미래라 할 수 있다.
인생 2모작이 필수인 이 시대에 결국 우린 을이 되어 만난다. 그러므로 직장이라는 거대한 갑은 평범하고 순진한 을, 그러니까 모든 직장인에게 시한부 보금자리일 뿐이다. 이 보금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을은 냉혹한 세상 속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러나 을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할지언정 비참하지는 않다. 을의 세계엔 무수한 동지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을이다. 내게는 갑인 사람도 누군가에겐 을이 될 수 있다. 회사에서는 갑인 내가 거래처에선 을이 되듯 말이다. 특히 비즈니스 하는 사람치고 을 아닌 이는 없다. 그런데 그 을들이 바로 세상을 움직인다. 비록 빛은 나지 않지만, 공(功)은 모두 갑에게 돌아가지만,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발바닥이 닳도록 뛰는 사람은 을이다.
놀라운 전투력과 독특한 필살기
사실 갑과 을은 비즈니스상의 용어지만, 갑-을 관계가 돈 문제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니다. 마음이든 돈이든 무언가 주고받아야 하는 모든 관계는 갑과 을로 이뤄져 있고, 갑-을 관계는 끊임없이 역전되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갑이자 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갑으로서 을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갑-을 관계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대부분이 갑인 동시에 을인 세상에서 양쪽 모두를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물론 비즈니스 전장에서 만난 승리한 을들은 놀라운 전투력과 독특한 필살기를 지니고 있다. 한 사업가는 늘 거래처의 갑을 생각하며 특별한 날마다 선물을 보낸다. 비 오는 날엔 날씨 핑계로 전화를 해 갑의 마음을 헤아린다. 때론 무작정 김밥을 싸들고 갑의 회사를 찾아가기도 한다. 어떤 직장인은 갑을 위해 언제든 웃통을 벗을 준비가 돼 있으며, 미운 갑을 만났을 땐 비록 마음엔 없지만 칭찬으로 상대의 가슴을 녹인다. 치열한 경쟁과 위협 속에서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생존하고 있는 그들은 ‘깨인 을’이며, 바로 이 시대의 진정한 파이터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