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하게 들어선 오래된 건물들
서울 성곽, 낙산공원과 인접한 이화동 9번지 일대. 빽빽이 들어찬 집들은 성냥갑 같다. 가장 높은 집이 2층에 불과하고, 건물 높이도 성인남자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낮다. 가장 넓은 집도 1, 2층을 합쳐 20평이 채 안 된다. 그런 집들 사이로 70년대에나 있을 법한 구멍가게와 이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기가 힘든지 동네 곳곳에 스쿠터가 어지럽게 주차돼 있다.
하지만 이런 정경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시가 4월23일 제12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이화동 9번지 일대 이화 제1주택재개발정비구역에 대한 재개발 사업을 가결하면서 지금의 풍경은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다양한 형태의 건물 고작 41가구 증가
그동안 이곳 주민들은 서울시에 여러 차례 재개발 승인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주민들은 애초 11층 높이의 아파트를 짓고 싶어했다. 20, 30층을 넘나드는 서울 강남의 재개발 아파트들과 비교한다면 매우 ‘소박한’ 수준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승인을 거부했다. 서울시 주거정비과 한유석 재개발2팀장은 “이화동 9번지 일대가 성곽 근처에 자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재개발이 필요했다”며 “한국도시설계학회에 연구 용역을 의뢰해 주변 환경에 맞는 재개발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낙산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구릉지에 적합한 재개발 정비모델을 정착시키겠다는 게 서울시의 의지다.
가파른 비탈길은 낙후된 이화동 9번지 일대의 현주소다.
이렇게 재개발된다면 낙산공원이나 성곽이 그다지 시야를 가리지 않게 된다. 건물 사이사이는 경관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저층아파트가 세워지더라도 지금보다 15m 정도만 높아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옛 서울의 풍경을 여전히 즐길 수 있다. 서울시 조민주 도시관리팀장은 “구릉지에 고층아파트를 만들면 도시 경관을 저해하게 된다”며 “이번 저층아파트 재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재산권을 살리면서도 시민들의 조망권을 보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화동 9번지 일대는 사연이 많은 동네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모여들어 움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이 마을은 1958년 조선주택영단(현 대한주택공사)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조선주택영단은 주택을 신축한 뒤 철거민들에게 그중 일부를 분양했다. 하지만 건물 소유권에 대한 등기를 해줬을 뿐, 토지에 대해서는 등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1980년대 중반 건물부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이화동 주민들은 최근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고승덕 변호사를 찾아갔다. 당시 변호사 사무소를 처음 연 서른 초반의 고 변호사 도움으로 주민들은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토지를 시효취득할 수 있었다. 시효취득이란 물건이나 권리를 일정 기간 계속해서 사실상 점유하는 사람에게 그 물건이나 권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는 제도다. 고 변호사는 “승소하자 주민들이 재개발한 뒤 공덕비를 세워주겠다고 할 만큼 기뻐했던 게 기억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까지 재개발 사업은 고층아파트 건립 위주로 진행돼 부동산 가격 폭등을 일으킬 뿐 아니라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재개발 추세 속에 이화동 주민들은 ‘저층 재개발’에 선뜻 동의했다. 낙후한 환경에서 더는 살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화동 주민들은 ‘동네가 사라진다’는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는 협소한 도로, 계단과 계단으로 이어진 비탈진 골목길,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집들을 보면 주민들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화동 9번지 일대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이 산다. 길이 가파르다 보니 “이화동 노인들이 오래 사는 이유는 비탈진 골목길을 많이 걸어 건강하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네 노인들은 “자식들을 여기서 다 키웠지만, 젊은 사람들이 계속 이런 동네에서 살 수 있겠냐”며 “하지만 난 정들어서 떠나기가 싫다”고 입을 모은다.
이 지역의 재개발 이후 모습을 나타낸 투시도
하지만 동네가 재개발된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이화동 노인들은 확신하지 못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만난 한 70대 할아버지는 “집수리도 제대로 안 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에서 사는 게 너무 불안하다”며 “비록 재개발된 새집에 입주하지 못해도 재개발로 값이 오른 집을 팔고 나가면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화동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해도 자신들이 이화동 주민이었다는 점을 잊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화동 9번지 주택재개발추진위원회 이윤진(80) 위원장은 8세 때 이화동에 들어와 72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중 토박이다. 그는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들도 낳았다. 지금은 다들 떠나 있지만 손자를 봤을 때도 이화동에서 출생신고를 해 이화동 주민등록번호를 받게 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0013××으로 이뤄지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이화동 출신임을 나타낸다”며 “3남1녀와 6명의 손자손녀에게 모두 이 번호를 줬다”고 말했다. 집을 떠나더라도 이 동네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정겨운 풍경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사진 찍으러 낙산공원을 찾는다는 송영석(26) 씨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곳이라 자주 찾아오곤 한다”며 “이런 정경이 사라진다니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남들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고생할 수는 없다고 한다. 가끔 이곳으로 영화를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냐’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2, 3년이 지난 뒤 이화동 9번지 일대는 어떤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 서울 한복판에서 옛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곳이 줄었다는 아쉬움과 ‘자연을 존중하는 저층형’이라는 새로운 도시 재개발 사례로 남는 영광 중 어느 것이 더 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