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석 전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왼쪽)이 임용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인천 중구 운북동 26번지의 논.
4월24일 뚜껑이 열린 이명박(MB) 정부의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남편이 농지법을 위반해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박미석 대통령사회정책수석은 이미 사의를 표명하고 청와대를 떠났다. 거짓 ‘자경(自耕)확인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억울하다”며 청와대를 떠난 박 전 수석을 위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관심을 끈다. “드러난 불법에 비해 처분이 과도하다”는 것.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데는 역시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죄질’이 더 불량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박미석 억울, 다른 인사들 죄질 더 불량”동생과의 토지거래 과정에서 탈세 의혹이 제기된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등 MB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부동산 문제에 발목이 잡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에게 씌워진 의혹도 위장전입, 땅투기 의혹 등 박 전 수석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은 모두 재산 문제가 논란이 된 이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거짓 해명을 해 의혹을 더욱 부풀렸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먼저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은 동생과의 토지거래 과정에서 탈세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 측이 “김 수석은 동생에게 4억5000만원을 받고 땅을 증여했고, 5000만원을 증여세로 완납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탈세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석 내정 후 청와대 입성 직전인 2월 말에야 문제의 땅(충남 아산)을 동생에게 증여했다는 사실은 “위장전입 사실을 감추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렀다. 게다가 김 수석은 문제가 된 땅을 1988년 매입하던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주소를 땅 매입지역 인근으로 옮기는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수석 측은 “유학시절 아버지가 산 땅이지만, 실정법을 어긴 측면이 있다”며 잘못을 시인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의 경우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1983년 본인 명의로 매입한 경기 성남시 금토동 일대 대지와 밭에 대해 “대학 3학년 때 증여받아 세금을 냈다. (부친이) 현금을 줘 사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25년간 주말농장으로 활용했다. 미국 유학시절(1984~92년)에도 관리인을 뒀고 자경확인서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곽 수석의 해명이 있던 다음 날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최근 들어서야 곽 수석은 “3개월 동안 주소지를 옮긴 건 맞다. 모든 재산은 부모가 관리했고 취득과정에 직접 관여한 바 없다.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여론은 이미 곽 수석을 떠난 뒤였다.
농지법 위반 사실과 함께 언론사에 기사청탁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이동관 대변인은 이번 공직자 부동산 투기 파문의 정점으로 자리하며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배우자 명의로 보유 중인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토지(신고액 4000만원 상당)가 그를 곤경에 빠뜨렸다.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만 해도 “2004년 11월 언론사(동아일보) 재직 당시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아 회사 동료 2명 등과 함께 매입한 것이다. 매입자 가운데 한 명이 실제 경작을 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던 이 대변인은 농지법 위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자 “소유자가 직접 경작해야 하는 실정법을 잘 몰랐다”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게다가 이 대변인은 자신과 관련된 보도를 준비하던 국민일보에 “한 번만 봐달라. 은혜는 꼭 갚겠다”며 압력성 청탁을 넣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압력이 아니라 호소였다. 언론사 동기에게 상식적으로 판단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을 뿐이다.
박 전 수석에서 시작된 이번 재산공개 파동이 어느 선까지 번질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똘똘 뭉친 야권에서는 연일 문제 공직자들의 전원 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이에 가세해 청와대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청와대 측은 일단 ‘추가 사퇴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그 선언이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청와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는 전언이다. 과연 박 전 수석의 뒤를 이을 ‘낙마자’는 나올 것인가. 청와대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마티즈 모는 김진항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
“내 재산 왜 줄여 … 난 행복한 사람”
| 이런 공직자도 있다. 마티즈를 타고 다니며 공시지가 6000만원짜리 빌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 주인공은 30년간 군생활을 마치고 지난달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1급)에 임명된 김진항(사진) 실장이다. “마티즈 타고 다니는 게 뭐 어떤가. 일주일 내내 타고 다녀도 기름값이 4만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주차비도 반값이다.”
김 실장이 신고한 부동산 목록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1989년 돌아가신 부친 명의의 부동산 3건이 재산신고돼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의 말은 이렇다.
“군생활을 하면서 30년간 야전으로만 돌다 보니 집안살림을 돌볼 기회가 적었다. 20년 전 돌아가신 부친의 재산조차 상속절차를 거치지 못했다. 세금은 정상적으로 모두 냈지만 가정에 소홀하고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죄스럽다.”
현재 그의 재산은 5억여 원. 그러나 이것도 상당히 부풀려진 결과다. 공시지가 6000만원대인 빌라를 재산신고 목록에 1억7000여 만원으로 신고하면서 재산이 대폭 늘어났다. 재산 줄이기에 혈안이 된 여타 고위공직자들과 다른 그의 재산공개법,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공시지가는 6000만원 정도지만 난 이 집을 분명히 1억7000만원대에 샀다. 내 재산을 줄일 이유가 없어 매입가격을 적었다. 재산공개 당시에도 관련 기관에서 ‘왜 공시지가를 적지 않았느냐’고 문의해왔는데 나는 ‘왜 내 재산을 줄이려 하느냐. 매입가격으로 써달라’고 되레 부탁했다. 남들은 공직생활을 30년 넘게 한 사람의 재산이 너무 적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들 잘 키웠고 매달 연금도 받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자리에까지 와 있지 않은가. 난 행복한 사람이다.” | |
이색 재산 가진 공직자들
금 700g … 주식 백화점 … 고가 미술작품 …
| 이명박 대통령이 신고한 재산목록에 포함된 두 점의 미술작품 중 하나인 서양화가 김창렬 씨의 물방울 그림. MB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신고한 재산 중에는 이색 재산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700g(186.6돈, 금 한 돈의 무게는 3.75g)이 넘는 금덩이를 배우자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있는가 하면, 장녀가 총 47개 종목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신고한 ‘주식 백화점’ 공직자도 있었다(이만의 환경부 장관, 시가 1억1533만원). 수년째 특허권 분쟁에 휘말린 항암치료제 제조업체 천지산에 400만원가량을 투자하고 있는 대검찰청 고위간부(길태기 공판송무부장)는 전북 남원에만 63건의 전답과 임야를 보유해 부동산 보유 건수 1위를 차지했다.
다수의 고위공직자들은 고가의 미술작품도 소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명박 대통령도 두 점의 미술작품을 신고했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김창렬 씨의 1970년대 작품과 동양화가 이상범 씨의 설경이 그것. 이 작품들은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각각 6000만~9000만원, 1000만~2000만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이 보유한 서양화가 사석원 씨의 작품도 경매시장에서 3000만~5000만원대에 거래되는 고가 미술품이다. 한 미술업계 관계자는 “사석원 씨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작가다. 중견작가 가운데 가장 인지도가 높고 작품 거래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김중수 경제수석이 보유한, 20세기를 대표하는 국내 화가로 유명한 도상봉 씨의 회화작품(36×50cm)은 경매시장에서 수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외제차를 신고한 고위공직자도 8명에 달했다. 그중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신고한, 배우자 명의로 된 2004년식 볼보자동차(2922cc)가 4096만원(신고액 기준)으로 가장 비쌌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신고한 푸조자동차가 그 뒤를 이었다(신고가액 3571만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