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진달래 군락, 멀리 바다 건너 석모도와 교동도가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창녕 화왕산, 여수 영취산, 달성 비슬산 등처럼 진달래 명소로 유명한 산들이 많다. 하지만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고려산(436m)처럼 멋진 진달래 명소를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곳도 흔치 않다. 고려산은 강화군의 강화읍, 내가면, 하점면, 송해면에 걸쳐 있는 작은 산이다. 원래 이름은 ‘오련산’이었으나 고려의 군사들이 훈련하던 곳이라 해서 고려산으로 개명됐다고 한다.
현재 고려산 정상에는 군부대 기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부근의 산비탈과 능선에 수도권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전체 규모만도 20여 만평에 이르는 이 군락지는 1986년의 대형 산불로 소나무와 잡목이 모두 소실된 뒤 생명력 강한 진달래만 살아남아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한다. 이곳 진달래 개화기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4월15일부터 25일 사이가 절정이다. 올해는 3월부터 꽃샘추위가 거의 없었던 탓에 개화기가 예년보다 5일가량 앞당겨졌다.
겉모습이 전통사찰 건물과 흡사한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산의 등산코스는 크게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 코스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백련사 코스를 이용하면 정상 부근의 진달래 군락지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의 경사가 완만하고 코스가 길지 않은 편이어서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 등산객도 적지 않다. 하점면 부근리에서 고려산 중턱의 백련사까지는 찻길이 나 있다. 그러나 등산객이 몰리는 진달래 철에는 일반 차량의 출입을 통제한다. 강화지석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쉬엄쉬엄 걸어도 백련사를 거쳐 정상까지 가는 데는 약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백련사 어귀와 가까운 하점면 부근리의 48번 국도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멋있는 고인돌이 있다. ‘강화지석묘’라 불리는 이 청동기시대 고인돌은 두 개의 굄돌에 올려진 덮개돌의 길이만 7.1m에 너비가 5.5m나 된다. 그 무게만도 자그마치 50t에 이르는 북방식 고인돌이다. 이것을 포함해 강화도의 120여 기 고인돌은 고창, 화순 지역 고인돌과 함께 2000년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한반도의 중간쯤에 자리한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시대 수도였던 개경과 한양의 길목을 지키는 전략 요충지였다. 그래서 고려 때의 몽고군 침략에서부터 조선 말기의 병인·신미양요에 이르기까지 숱한 외세의 침입을 받았다. 오늘날 강화도를 ‘역사의 땅, 눈물의 섬’이라 일컫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고려 무신정권 때 39년 동안이나 임시 수도가 자리했던 강화읍내에는 강화성, 고려궁터,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등의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그중 강화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의 세 겹으로 이루어진 철옹성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숱한 시련을 겪어오는 동안 성벽 대부분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돌로 쌓은 내성만 남아 있다. 고려산 진달래가 만개할 무렵에는 북문 진입로 양쪽의 벚나무 가로수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려 눈부신 꽃터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봄꽃의 개화가 예년보다 5~7일 빨라진 올 봄에는 4월 둘째 주말을 넘어서면서부터 꽃잎이 우수수 흩날리기 시작했다.
강화성 북문 초입에는 고려궁터가 있고, 고려궁터 아래쪽 골목에는 성공회 강화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 성당 건물은 전통적인 조선 한옥에 서양의 기독교식 건축양식을 절충해 지어졌다. 그래서 언뜻 보면 영락없는 절간이지만, 내부에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의 예배 공간이 마련돼 있다. 초창기 선교사들의 세심한 배려와 토착화 노력이 엿보이는 건물이다. 성당 부근에는 ‘강화도령’ 철종이 19세까지 살았던 용흥궁도 있다. 그리고 갑곶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 강화도 해안에 남아 있는 요새들은 조선 말기 서양 열강의 침입에 맞서 목숨으로 지켜낸 국방 유적이다.
강화도를 찾은 길에 마니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한 정수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규모도 작고 건물도 몇 채 없는 아담한 고찰(古刹)이지만, 바다 전망이 탁월한 데다 인적이 뜸해 산사다운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웅보전 전면의 문짝에는 꽃문살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사시사철 화사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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