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열린 그룹전 ‘첫걸음’의 팸플릿.
이런 상황에도 몇몇 컨템포러리 작가들은 밖으로 행보를 돌리고 있다. 1월19일 10여 명의 작가가 싱가포르에서 그룹전을 개막했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제작한 팸플릿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마크 위에 마치 60년대 포스터에나 나올 법한 어색한 글씨체로 ‘첫걸음’이라고 쓰여 있다. 국내 작가들을 바라보는 해외시장의 시선이 얼마나 낯선지 짐작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2월5일까지 열린 ‘첫걸음’전은 차이나 TV와 블룸버그 TV를 통해 보도됐고, 전시 오픈 전에 80% 이상의 작품들이 선구매됐다. 참여작가는 배준성 김동유 김덕용 홍성도 김준 정광호 이유진 임태규 최수앙 등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관망세인 요즘에도 이들의 작품 가격은 상향 조정되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면 이들의 작품 가격은 아직 2, 3차 시장에서 시세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 1차 시장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1차 시장에서 작가가 조금씩 가격을 올리고 있는 데 보조를 맞춰 컬렉터들도 그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컬렉터와 작가의 관계는 단순하게 구매자와 판매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뢰를 바탕으로 먼 훗날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는 관계다. 2005년부터 2007년 말까지 10배 이상 가격이 치솟아 올랐던 작가에게도 어려운 시절 묵묵히 작품을 구매해주던 컬렉터들이 있었다. 작품 가격이 올랐을 때 작가는 이들에게 보답했다는 기쁨으로 더욱 뿌듯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으로 작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자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작가를 발굴해 장기적으로 후원하면서 함께 발전해나가는 방식의 투자다.
‘첫걸음’은 싱가포르에 이어 베이징 런던 베를린 브뤼셀 암스테르담으로 순회전시가 예정돼 있다. 열정적인 우리 작가들은 팸플릿 하나 들고 직접 세계를 향해 소중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후원단체 없이 작품 판매 비용으로만 충당되는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얼마나 해외전시에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순회전시가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