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을 앞두고 국제사회가 관심을 기울였던 가장 큰 화두는 ‘인권이냐 경제냐’였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종가(宗家)를 자처해온 영국이 최근 민주화와 인권 관련 국제분쟁에서 반민주 정권을 지원한 중국 정부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베이징 하루, 상하이 하루로 짜인 2박3일의 방문에서 브라운 총리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경제협력과 무역증진, 그리고 영국 기업의 중국 내 투자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러브콜’로만 일관하다시피 했다.
“중국의 국부펀드에 대해 일부 국가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국만큼은 중국의 투자를 환영한다.”
브라운 총리는 이런 말로 중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중국의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중국투자공사의 첫 해외사무소를 런던에 개설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의 국부펀드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뉴욕과 경쟁관계에 있는 런던 증권거래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세일즈 외교’를 보여준 것이다.
브라운 총리의 이번 방중에는 25명이나 되는 영국 기업인들이 동행했다. 중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1조5000억 달러(약 1400조원)의 엄청난 외화를 유치하려는 영국 기업인들이 너도나도 브라운 총리와 함께 중국 대륙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러한 규모에 화답하듯 중국 정부도 두 나라의 교역 규모를 2010년까지 600억 달러로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 영-중 간 교역 규모는 4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영국 기업인 25명 동행 교역 규모 확대 합의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10년간 재무장관을 지낸 브라운 총리의 이런 친(親)기업 행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규모로만 따지면 영국은 유럽연합 내에서 맏형 노릇을 하고 있지만, 유독 대중무역에서만큼은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중(對中) 수출 규모는 독일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럽연합 내 4위에 그치고 있다. 영국 기업인들, 특히 중국에서 사업해온 기업인들이 영국 정부에 ‘대중 외교의 첫 번째 목표를 교역 증진에 맞춰달라’고 요구한 것도 벌써 여러 해 전부터다.
중국이 민감하게 느끼는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브라운 총리의 ‘조신한’ 태도는 환경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영국이 주도해 2012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이른바 ‘포스트 교토의정서’와 관련해서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영국으로부터 이산화 탄소 감축 의무량을 제시하라는 가장 큰 압력을 받은 나라가 바로 중국과 인도였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는 중국과 인도를 잇따라 방문하도록 짠 이번 아시아 순방외교에서 중국보다는 인도에 대한 비난에 더 많은 비중을 둠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체면을 크게 세워줬다.
국제사회에서 몇 가지 껄끄러운 이슈가 있음에도 영국과 중국 정부가 최고의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것은 전임 토니 블레어 총리와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임기간 내내 친미(親美) 노선을 걸었던 블레어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98년 취임 후 첫 중국 방문 때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양국 간 무역증진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인권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이 같은 발언으로 블레어 전 총리는 중국을 향해서 ‘할 말은 하는’ 총리 이미지를 남겼다.
영국서 본 중국, 이중적 이미지 여전
반면 브라운 총리는 중국 정부가 껄끄러워할 만한 인권문제나 국제분쟁에서 중국의 역할과 같은 문제는 테이블에 올려놓지도 않았다. 사실 중국 정부는 이미 수단 다푸르 학살이나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 탄압과 관련해 서방 국가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수단 정권에 재래식 무기를 공급하고 막대한 양의 석유를 수입해줌으로써 사실상 유엔의 개입을 무력화한다는 비난을 받은 당사자가 중국이다. 또 민주화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서슴지 않았던 미얀마 군부 정권을 지지해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도 중국이었다.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은 각국의 국내 여건에 견줘 바라봐야 한다’는 중국식 외교노선은 영국의 전통적 개입주의 노선과 상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영국에서 바라보는 중국은 아직도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수당 일부에서는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이유로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BBC 뉴스는 잊어버릴 만하면 영국 내 중국인들이 야생동물을 잡아 약재용으로 불법 유통시킨다는 뉴스를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해 내보낸다. 또 BBC의 베이징 특파원은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코앞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중국 정치의 민주주의 원칙 상실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렇듯 민주주의와 인권의 종가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영국인들 처지에서 중국은 경제적 협력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아직 ‘영국이 한 수 가르쳐줘야 할’ 후진국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예상되는 논란에도 브라운 총리는 중국 방문을 통해 인권외교라는 ‘명분’을 잠시 미뤄놓고 교역증진과 투자유치라는 ‘실리’를 챙기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물론 친미 외교노선을 분명히 했던 블레어 전 총리와 달리, 중국이라는 완충지대를 이용해 미국과 외교게임을 벌이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번 중국 방문 결과를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든, 그는 중국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경제뿐 아니라 외교 면에서도 ‘실용적’ 접근의 청사진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 전문가’ 이미지만으로 총리 취임 직후 여론 지지율에서 보수당을 보기 좋게 따돌렸던 브라운 총리의 ‘실용’ 코드가 외교 분야에서 영국 국민에게 어떻게 먹혀들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 하루, 상하이 하루로 짜인 2박3일의 방문에서 브라운 총리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경제협력과 무역증진, 그리고 영국 기업의 중국 내 투자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러브콜’로만 일관하다시피 했다.
“중국의 국부펀드에 대해 일부 국가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국만큼은 중국의 투자를 환영한다.”
브라운 총리는 이런 말로 중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중국의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중국투자공사의 첫 해외사무소를 런던에 개설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의 국부펀드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뉴욕과 경쟁관계에 있는 런던 증권거래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세일즈 외교’를 보여준 것이다.
브라운 총리의 이번 방중에는 25명이나 되는 영국 기업인들이 동행했다. 중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1조5000억 달러(약 1400조원)의 엄청난 외화를 유치하려는 영국 기업인들이 너도나도 브라운 총리와 함께 중국 대륙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러한 규모에 화답하듯 중국 정부도 두 나라의 교역 규모를 2010년까지 600억 달러로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 영-중 간 교역 규모는 4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영국 기업인 25명 동행 교역 규모 확대 합의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10년간 재무장관을 지낸 브라운 총리의 이런 친(親)기업 행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규모로만 따지면 영국은 유럽연합 내에서 맏형 노릇을 하고 있지만, 유독 대중무역에서만큼은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중(對中) 수출 규모는 독일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럽연합 내 4위에 그치고 있다. 영국 기업인들, 특히 중국에서 사업해온 기업인들이 영국 정부에 ‘대중 외교의 첫 번째 목표를 교역 증진에 맞춰달라’고 요구한 것도 벌써 여러 해 전부터다.
중국이 민감하게 느끼는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브라운 총리의 ‘조신한’ 태도는 환경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영국이 주도해 2012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이른바 ‘포스트 교토의정서’와 관련해서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영국으로부터 이산화 탄소 감축 의무량을 제시하라는 가장 큰 압력을 받은 나라가 바로 중국과 인도였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는 중국과 인도를 잇따라 방문하도록 짠 이번 아시아 순방외교에서 중국보다는 인도에 대한 비난에 더 많은 비중을 둠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체면을 크게 세워줬다.
국제사회에서 몇 가지 껄끄러운 이슈가 있음에도 영국과 중국 정부가 최고의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것은 전임 토니 블레어 총리와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임기간 내내 친미(親美) 노선을 걸었던 블레어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98년 취임 후 첫 중국 방문 때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양국 간 무역증진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인권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이 같은 발언으로 블레어 전 총리는 중국을 향해서 ‘할 말은 하는’ 총리 이미지를 남겼다.
영국서 본 중국, 이중적 이미지 여전
반면 브라운 총리는 중국 정부가 껄끄러워할 만한 인권문제나 국제분쟁에서 중국의 역할과 같은 문제는 테이블에 올려놓지도 않았다. 사실 중국 정부는 이미 수단 다푸르 학살이나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 탄압과 관련해 서방 국가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수단 정권에 재래식 무기를 공급하고 막대한 양의 석유를 수입해줌으로써 사실상 유엔의 개입을 무력화한다는 비난을 받은 당사자가 중국이다. 또 민주화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서슴지 않았던 미얀마 군부 정권을 지지해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도 중국이었다.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은 각국의 국내 여건에 견줘 바라봐야 한다’는 중국식 외교노선은 영국의 전통적 개입주의 노선과 상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영국에서 바라보는 중국은 아직도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수당 일부에서는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이유로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BBC 뉴스는 잊어버릴 만하면 영국 내 중국인들이 야생동물을 잡아 약재용으로 불법 유통시킨다는 뉴스를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해 내보낸다. 또 BBC의 베이징 특파원은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코앞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중국 정치의 민주주의 원칙 상실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렇듯 민주주의와 인권의 종가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영국인들 처지에서 중국은 경제적 협력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아직 ‘영국이 한 수 가르쳐줘야 할’ 후진국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예상되는 논란에도 브라운 총리는 중국 방문을 통해 인권외교라는 ‘명분’을 잠시 미뤄놓고 교역증진과 투자유치라는 ‘실리’를 챙기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물론 친미 외교노선을 분명히 했던 블레어 전 총리와 달리, 중국이라는 완충지대를 이용해 미국과 외교게임을 벌이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번 중국 방문 결과를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든, 그는 중국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경제뿐 아니라 외교 면에서도 ‘실용적’ 접근의 청사진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 전문가’ 이미지만으로 총리 취임 직후 여론 지지율에서 보수당을 보기 좋게 따돌렸던 브라운 총리의 ‘실용’ 코드가 외교 분야에서 영국 국민에게 어떻게 먹혀들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