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황인종으로 그려 논란이 됐던 고갱의 ‘황색 예수’.
사실 고갱이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눈으로’ 예술 활동을 편 것은, 타히티로 건너가기 전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황색예수’에서부터다. 이 그림은 프랑스 브르타뉴의 순박한 농부들의 삶에 매료돼 그린 것으로, 황색예수 상과 갈색 십자가, 세 사람의 브르타뉴 여인과 붉은색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다. 고갱이 서양과 백인들의 종교였던 기독교의 예수, 원래는 인간이었으나 신격화된 예수를 ‘황색으로’ 그린 것은 예수를 모독하는 불경한 짓에 불과한 것일까.
아폴론과 맞선 마르시아스, 제우스에게 벌 받은 프로메테우스
하지만 신(성)에게 도전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도 많다. 음악의 신 아폴론과 피리 연주를 겨룬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마르시아스는 어느 날 아테나 여신이 버린 피리를 주워 피리의 달인이 되고자 밤낮으로 솜씨를 닦았다. 아프로디테와 헤라에게 모욕을 당한 아테나가 이 피리를 부는 자는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길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은 바로 그 피리였다.
연주 솜씨에 자신이 생긴 마르시아스는 아폴론과 피리연주 시합을 벌였다. 첫판은 심판인 미다스 왕이 마르시아스의 손을 들어줬다. 화가 난 아폴론은 미다스 왕이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며 악기를 뒤집어서 연주하자고 했다. 그런데 아폴론의 키타라는 현악기여서 뒤집어도 연주할 수 있지만, 마르시아스의 나무피리는 관악기여서 그것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아폴론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이 벗겨질 판에 미다스 왕은 “신들은 인간을 벌하시되 까닭 없이 벌하지는 않는다”며 신들의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에 아폴론은 “신들은 인간이 무릎을 꿇을 때만 자비롭다”며 오히려 벌까지 내렸다.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죄로 미다스의 귀에 당나귀 귀를 붙여버린 것이다.
화가 귀도 레니는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론’, 티치아노는 ‘살가죽이 벗겨지는 마르시아스’ 등을 그려 마르시아스가 ‘예술의 순교자’라는 걸 표현했다. 한국의 소설가 심상대는 아예 필명을 마르시아스 심으로 하고, 인간의 예술은 자유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신에게 도전한 이야기로는 포세이돈의 두 아들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의 예도 있다.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는 해마다 몸통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키가 1.8m씩 자라다 아홉 살 때 하늘로 올라가겠다며 올림포스 산 위에 또 산을 쌓고 아르테미스, 헤라 여신과 각각 결혼하려다 둘 다 죽고 만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그들이 너무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아폴론이 다 자라기도 전에 죽여버렸다고 전한다. 화가 벨라스케스는 ‘현실과 신화의 절묘한 조화’에서 수공업의 여신 아테나와 베짜기 시합을 벌였다가 북으로 한 대 얻어맞고 거미로 변한 그리스의 직녀 아라크네를 추모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이 신에게 도전한 이야기도 있다.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다. 그리스 시인 아이스킬로스(기원전 525~기원전 456)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현암사)는 “신이면서 인간 편에 섰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보행능력, 건축기술, 기상측정, 산수, 문자창조, 목축업 등 문명을 세우는 법을 가르쳐줘, 인간의 모든 기술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스킬로스는 제우스를 지독한 폭군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위대한 순교자로 노래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날마다 제우스의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바이런(1788~1824) 또한 시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여!/ 그대의 신성한 죄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대의 끈질긴 인내로 이겼으니 하늘도 땅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대 불굴의 정신이 보여준 끈기와 저항에서/ 우리는 큰 가르침을 받는다”고 노래했다. 프로메테우스를 이렇게 보는 것은 일제강점기 윤동주의 ‘간’은 물론이거니와 “불을 달라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무릎 꿇고 구걸했던가/ 바스티유 감옥은 어떻게 열렸으며/ 센터 피터폴 요새는 누구에 의해 접수되었는가/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고통으로 끝났던가(‘나를 노래한다’)”라고 한 군사독재 시대의 저항시인 김남주의 시에도 투영돼 있다.
예언능력이 있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아들 중 누가 제우스에게 반역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면 쇠사슬을 풀어주겠다고 유혹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이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참혹한 고통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
신화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이야기
윤동주 김남주 바이런 아이스킬로스가 ‘인간을 위한 신’ 프로메테우스라는 거울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얼굴, 그 저항의 상징성이었으리라. 자유기고가 유시주가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푸른나무)에서 지적한 대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자유’의 다른 이름이자 부당한 고통을 견디는 고결한 정신, 억압에 항거하는 투쟁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왜 신에게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토록 무수히 지어냈을까. 신이 인간에게 부당한 고통과 저주를 줘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프로메테우스처럼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였을까. 카뮈의 ‘그리스 신화 다시 쓰기’인 에세이 ‘시지프 신화’(책세상)는 이 질문의 답일 듯싶다.
시시포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에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난 코린토스의 왕이었다. 호메로스는 시시포스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신들에게는 엿듣기 좋아하고, 입 싸고 교활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가 신들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신들은 시시포스에게 바위를 쉬지 않고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벌을 내렸다. 산꼭대기에 올려놓은 바위는 제 무게 때문에 저절로 굴러 내려온다. 신들은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아무 희망도 가치도 없는 ‘군대식 얼차려’ 노동을 시킨 것일까. 삶에 대한 정열이 무(無)를 얻는 데 다 바쳐지는 게 가장 참혹한 형벌이라는 걸 알려주려 했던 것일까.
반항의 소설가 카뮈는 저 잠깐 동안의 멈춤, 내려감 그리고 바위 굴리기의 영원한 반복의 부조리가 관심을 끈다고 했다. 끝 모를 고통을 향해 무겁지만 단호한 걸음걸이로 내려가는 그 사람 시시포스가 저 모든 순간에 자기의 운명을 넘어서기에 바위보다도 단단하다고 한다.
카뮈는 인간의 삶을 ‘시시포스 신화’에 비유해, 인간 시시포스가 신처럼(아니 신보다) 위대한 까닭은 “다시 굴러떨어질 것임을 알면서도, 부질없는 노동이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알면서도 수백 수천 수만 번 바위를 밀어올리는 행위”에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카뮈는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의 노력을 헛된 것이라 보지 않고, 시시포스의 운명을 통해 인간의 삶이란 좌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실존의 부조리임을 역설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신화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창조한 것은 인간이기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신에게 도전한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이야기가 바로 신화이고,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 안에서 늘 자유롭게 변하는 신의 나라가 오히려 신의 부조리라는 것을 역설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