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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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들 반란은 무죄!

록밴드·오토바이 마니아 등 ‘즐거운 일탈’ … 정서적 경험 채워가며 제2의 삶 설계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0-17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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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들 반란은 무죄!

    할리데이비슨 모임 ‘라스트라다’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레볼루션이에요.”

    올해 49세인 김유석(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디자이너) 씨는 지난 8월부터 한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영화제작을 배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단편영화 완성을 목표로, 영화제작 전반에 관한 이론과 실습 강의를 듣기 위해 퇴근 후 저녁시간을 고스란히 할애하고 있다. 회사 업무가 넘칠 때는 고되기도 하지만, 그는 요즘 무척 즐겁다. 자신만을 위해, 업무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대가 부럽지 않은 40대 급증

    “줄곧 남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종종거리며 살아왔거든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승진하고, 집을 사고, 8학군으로 옮기기 위해 돈을 모으고…. 계획했던 일을 하나하나 이룰 때면 뿌듯하기도 했지만, 30대 후반부터 답답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가 이 일(영화)을 했는데, 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독립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생겼다. 영화 외에도 패션디자인이나 제과제빵 같은 분야에 손을 뻗어볼 생각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영화로의 ‘일탈’이 김씨에게 20대 못지않은 활력을 준 것이다.



    김진홍(대학교수·44) 씨와 ‘라스트라다’ 멤버들은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이 있기에 ‘20대가 부럽지 않은 40대’다.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의 ‘라스트라다’는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의 호그(HOG 할리 데이비슨 오너스 그룹) 모임 가운데 하나로 멤버들은 대부분 30~50대 중년 남성이다. 회장을 맡은 김씨는 2년 전 지인을 통해 처음 할리데이비슨을 접하고, “말발굽 또는 맹수의 포효 같은 소리와 온몸을 전율하게 하는 진동 느낌에 반해” 오토바이를 샀다고 한다.

    “회원 중에는 FM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우연히 할리를 타본 순간 일탈을 경험하게 된 거죠.”

    이들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교외로, 때로는 지방으로 ‘애마’를 타고 달린다. 먼길을 달리지만 오토바이는 늘 반짝반짝 빛난다. 칫솔과 이쑤시개까지 동원해 하루에 몇 번씩 닦을 만큼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다. 가죽점퍼에 해골 모양의 액세서리 등 복장 역시 화려하다.

    “처음엔 가죽바지와 재킷만 입었어요. 그러다가 옷에 패치를 붙이기 시작했고, 반지 같은 액세서리나 팔찌, 나중엔 귀도 뚫고 타투(문신)까지 하게 됐죠.(웃음)”

    그렇다고 김유석 씨나 김진홍 씨가 유별난 40대는 아니다. 김유석 씨와 함께 강의를 듣는 7명의 수강생 중 3명이 40대 아저씨며, 인터넷 카페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할리를 타고 싶다”는 중년 아저씨들의 글이 올라온다.

    그뿐인가. 학창시절 문학청년이었던 누군가는 다시 펜을 잡고, 로커를 꿈꾸던 누구는 OB밴드 활동을 하거나 직장 동호회 밴드를 결성했다. 국내 1호 직장인 밴드 ‘갑근세 밴드’를 결성한 구자중(41) 씨에 따르면 “10여 년 전만 해도 흔치 않던 직장인 밴드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공자는 마흔 살을 ‘불혹(不惑)’,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이라고 칭했지만, 요즘의 마흔 살은 되레 뭔가 꿈틀거림이 시작되는 시점처럼 보인다. 서점에는 40대 남성을 겨냥한 인생 지침서가 쌓여 있고, ‘즐거운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 ‘와일드 호그’ 등 평범한 중년의 삶을 거부하고 록밴드 결성이나 바이크 여행을 통해 일탈을 감행하는 아저씨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줄줄이 개봉했다.

    아저씨들 반란은 무죄!

    직장인 밴드 ‘갑근세 밴드’, 영화 제작 강의를 수강 중인 김유석 씨(오른쪽).

    지루한 세상 재미있게 만드는 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명지대 여가경영학과)는 40대 남성들의 이런 변화를 “정서적 경험이 박탈됐던 한국 중년 남성들이 자신의 부족한 정서적 경험을 채워가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삶을 찾고 있는 최모(48) 씨에게도 해당한다. 그는 2년 전 동업하던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피아노, 그림, 여행, 요리 등 “옛날에 못 놀았던 것,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해보고 있다”는 그의 일탈을 두고 주변에서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의무도 있겠죠. 다만 지금은 ‘스스로 행복한 삶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생활 패턴은 같을지 몰라도, 이전과는 좀 다른 삶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중년 남성들의 호응을 얻은 영화 ‘즐거운 인생’의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 특히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저지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불만이 있으면 개선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현실을 흔들어야죠. 그리고 사실, 자신이 마음에 담아둔 뭔가를 ‘저지른다’고 해서 가정이 파괴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가장을 보면 ‘무책임하다’고 질책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위선 아닌가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가족이나 타인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봐요.”

    더불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아저씨의 ‘건강한’ 일탈은 개인을 성숙시키고, 지루한 세상을 좀더 재미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저씨들이여, ‘삶이 그대를 속인다’ 싶으면 한 번쯤 ‘일탈’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함으로써 자신과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집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문화가 발달하게 되죠.”(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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