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 정치는 유권자가 아니라 여론조사가 이끌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2년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 정몽준 당시 후보가 단일화를 이룬 이후,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의 공천이 본선 경쟁력이라는 명분 아래 여론조사 방식으로 결정된 지역이 많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여론조사가 중요한 후보 결정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정치적 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의 흐름(경향성, 트렌드)을 평가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공직 선거 후보자를 결정하는 이유는, 본선 승리를 염두에 둔 각 정당들이 민심을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수단이 여론조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권의 믿음에는 문제가 없을까.
조사 시점과 기법에 따라 지지율 요동
1935년 갤럽에 의해 최초의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도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점에 봉착해 있다. 첫째는 여론조사의 충실성 문제로, 표본 및 설문의 적확성에 대한 의문이다. 둘째는 응답자 간 정보 격차의 문제다. 셋째는 여론조사의 지나친 합리주의 경향으로, 여론의 동태적이고 감성적인 흐름과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반 여론조사에 비해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문제점이 좀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정치 여론조사의 결과를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조사 시점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전 20%대에 머물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정상회담 직후 5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여론조사 결과가 특정 사건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슈와 조사 시점 간의 관계 외에도 조사 시점과 응답자의 관계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최근의 예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여론조사에서 조사 시점이 일요일 오전이냐 오후냐가 문제로 부각됐다. 조사 시점이 일요일 오전일 경우 지지층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명박 후보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론조사 신뢰도 측면에서 의혹이 가장 많은 부분은 조사 설계 및 조사 기법이다. 4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보름 전 조사에 비해 13.7%포인트나 하락해 파문이 일었던 YTN-글로벌리서치 여론조사도 결국 ‘선호도’ 조사와 ‘지지도’ 조사 간의 괴리로 인해 생긴 결과다. ‘누가 대통령에 적합하냐’는 설문과 ‘오늘 당장 투표한다면 누구를 찍겠느냐’는 설문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에 관한 여론조사 논란도 ‘긍정·부정’(2점 척도)으로 질문했을 때와 ‘매우 긍정·대체로 긍정·대체로 부정·매우 부정’(4점 척도)으로 질문했을 때의 차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긍정·부정으로만 질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을 쳤다.
정치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 자체보다는 편승효과(Bandwagon Effects)의 폐해 등 조사 결과가 공표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점이 더 크게 지적된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광주 경선 직전에 발표된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 결과가 결국 노 대통령을 대선후보로 만들었다는 분석을 들 수 있다.
편승효과는 ‘어떤 정당 또는 후보를 왜 지지하는가’보다 ‘누가 될 것 같은가’에 관심이 많은 한국 유권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론조사 결과는 ‘대세론’ 및 ‘사표방지론’을 투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유권자의 지지 흐름을 바꾸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최근 나타났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손학규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초반 4연전에서 패배하자, 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가 손학규 후보를 이기는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여론조사는 아니지만 휴대전화 투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여론이 또 한 번 출렁였다.
샘플 1000명 생각 국민에 주입 편승효과 폐해
결론적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자체가 여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때론 직접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누가 1등인가’에 초점을 맞춘 경마식 여론조사 보도는 여론조사 샘플 1000명의 생각을 전체 국민에게 주입할 위험성이 있다.
여론조사 기관의 특정 후보 편들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각 언론사의 조사 결과를 누적해보면 경향성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론조사 기관별로 경향성이 드러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원론적으로 여론조사는 조사 목적에 맞게 설계되는 것이 기본이며 그 목적은 조사 문항의 설계에 의해 구현된다. 여론조사 설계자는 조사 목적에 적합하도록 설문을 설계하고 바이어스(편향성, 오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바이어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그것을 활용할 줄도 안다는 의미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회장이 특정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일부 여론조사 기관이 숨어서 특정 후보를 편든다”는 비판에 이어 ‘대놓고 편들기’가 시작된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누가 1등이냐’는 경마식 조사에서 벗어나 ‘누구의 어떤 정책이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느냐’는 형태로 전환돼야만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출구조사(왼쪽)는 선거개표 결과에 가장 근접하다. 전화 여론조사는 설문 방식과 시점 등에 따라 결과가 차이난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정치적 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의 흐름(경향성, 트렌드)을 평가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공직 선거 후보자를 결정하는 이유는, 본선 승리를 염두에 둔 각 정당들이 민심을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수단이 여론조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권의 믿음에는 문제가 없을까.
조사 시점과 기법에 따라 지지율 요동
1935년 갤럽에 의해 최초의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도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점에 봉착해 있다. 첫째는 여론조사의 충실성 문제로, 표본 및 설문의 적확성에 대한 의문이다. 둘째는 응답자 간 정보 격차의 문제다. 셋째는 여론조사의 지나친 합리주의 경향으로, 여론의 동태적이고 감성적인 흐름과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반 여론조사에 비해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문제점이 좀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정치 여론조사의 결과를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조사 시점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전 20%대에 머물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정상회담 직후 5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여론조사 결과가 특정 사건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슈와 조사 시점 간의 관계 외에도 조사 시점과 응답자의 관계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최근의 예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여론조사에서 조사 시점이 일요일 오전이냐 오후냐가 문제로 부각됐다. 조사 시점이 일요일 오전일 경우 지지층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명박 후보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론조사 신뢰도 측면에서 의혹이 가장 많은 부분은 조사 설계 및 조사 기법이다. 4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보름 전 조사에 비해 13.7%포인트나 하락해 파문이 일었던 YTN-글로벌리서치 여론조사도 결국 ‘선호도’ 조사와 ‘지지도’ 조사 간의 괴리로 인해 생긴 결과다. ‘누가 대통령에 적합하냐’는 설문과 ‘오늘 당장 투표한다면 누구를 찍겠느냐’는 설문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에 관한 여론조사 논란도 ‘긍정·부정’(2점 척도)으로 질문했을 때와 ‘매우 긍정·대체로 긍정·대체로 부정·매우 부정’(4점 척도)으로 질문했을 때의 차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긍정·부정으로만 질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을 쳤다.
정치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 자체보다는 편승효과(Bandwagon Effects)의 폐해 등 조사 결과가 공표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점이 더 크게 지적된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광주 경선 직전에 발표된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 결과가 결국 노 대통령을 대선후보로 만들었다는 분석을 들 수 있다.
편승효과는 ‘어떤 정당 또는 후보를 왜 지지하는가’보다 ‘누가 될 것 같은가’에 관심이 많은 한국 유권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론조사 결과는 ‘대세론’ 및 ‘사표방지론’을 투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유권자의 지지 흐름을 바꾸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최근 나타났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손학규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초반 4연전에서 패배하자, 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가 손학규 후보를 이기는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여론조사는 아니지만 휴대전화 투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여론이 또 한 번 출렁였다.
샘플 1000명 생각 국민에 주입 편승효과 폐해
결론적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자체가 여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때론 직접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누가 1등인가’에 초점을 맞춘 경마식 여론조사 보도는 여론조사 샘플 1000명의 생각을 전체 국민에게 주입할 위험성이 있다.
여론조사 기관의 특정 후보 편들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각 언론사의 조사 결과를 누적해보면 경향성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론조사 기관별로 경향성이 드러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원론적으로 여론조사는 조사 목적에 맞게 설계되는 것이 기본이며 그 목적은 조사 문항의 설계에 의해 구현된다. 여론조사 설계자는 조사 목적에 적합하도록 설문을 설계하고 바이어스(편향성, 오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바이어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그것을 활용할 줄도 안다는 의미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회장이 특정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일부 여론조사 기관이 숨어서 특정 후보를 편든다”는 비판에 이어 ‘대놓고 편들기’가 시작된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누가 1등이냐’는 경마식 조사에서 벗어나 ‘누구의 어떤 정책이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느냐’는 형태로 전환돼야만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출구조사(왼쪽)는 선거개표 결과에 가장 근접하다. 전화 여론조사는 설문 방식과 시점 등에 따라 결과가 차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