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부터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07 럭비월드컵.
에펠탑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샤이오궁 앞쪽에는 가건물이 지어졌고, ‘럭비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럭비월드컵을 프로모션하기 위한 것이다. 에펠탑을 보면서 식사하려면 1인당 점심때는 50유로(6만4000원), 저녁때는 85유로(10만9000원)를 내야 한다. 물론 와인값은 따로다.
영연방에서만 인기 있는 줄 알았던 럭비가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필립 티에보 주한 프랑스 대사를 만나 축구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축구보다 럭비를 좋아한다고 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번에 럭비월드컵이 열리는 프랑스에 있어 보니 럭비 열기가 축구 못지않게 뜨겁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럭비는 축구보다 훨씬 야성적인 스포츠다.
럭비월드컵 열기 축구만큼 뜨겁다 뜨거워!
TV의 스포츠뉴스에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세바스티앙 샤발이란 선수가 자주 비친다.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에 무표정한 인상이 야성 그 자체다. 갈리아 정복 당시 로마군과 싸우던 골족이 딱 그렇게 생겼을 것 같은 느낌이다. 9월16일 나미비아와의 경기에서 그가 상대팀 선수 여러 명을 거칠게 밀치며 골라인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에 관중은 열광했다.
소르본대학 앞 큰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는데, 달력 하나가 눈에 띄었다. 럭비 선수들을 모델로 한 누드 달력이었다. ‘Dieux de Stade 2008(2008년 스타디움의 신들)’이란 제목이 붙은 이 달력에서 럭비공으로 주요 부위를 가린 이탈리아의 미남 럭비 선수 마우로 베르가마스코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서점 관계자의 말인즉,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품목이라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하카(Haka)라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춤이 유행이다. 물론 럭비월드컵의 영향 때문이다.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은 국제경기에 앞서 하카라는 춤을 선보인다. 전투에 나서는 마오리족 전사들의 전통춤인데, 박력이 넘친다.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있어 ‘검둥이들(All Blacks)’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뉴질랜드 대표팀은 경기 전 상대팀 앞에서 운동장이 떠나갈 듯 괴성을 지르며 하카춤을 춘다. 다리를 한껏 벌리고 서서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치고 가슴을 두드리는 것. 혀를 길게 내밀어 상대편을 모욕한 뒤 한번 싸워보자고 땅을 차며 뛰어오르는 장면에서는 관중까지 흥분해 소리를 지르게 된다.
이보다 더 화끈한 ‘파이팅’이 세상에 또 있을까. 뉴질랜드팀이 하카춤을 추는 전통은 100년이 넘었다. 오세아니아 섬나라인 피지 통가 사모아 등의 대표팀도 하카춤을 춘다. 하카춤을 보는 것, 럭비 팬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 가운데 하나다.
만일 프랑스와 뉴질랜드가 맞붙는다면? 결승이고 준결승이고 8강전이고를 떠나, 이번 프랑스 럭비월드컵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기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