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의해 인성이 결정되는 걸까. 최근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캐빈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모두 말썽쟁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그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20년 경력의 한 교사의 말에 좌중은 모두 숙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캐빈만한 망나니는 없지.”
‘Nomen est Omen’. ‘이름이 곧 예언이다’라는 뜻의 이 라틴어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지언정 이름에는 귀천이 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일부 쇼비니스트들은 ‘서양 것들은 전통이 없다’며 쉽게 무시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서양은 ‘전통 빼면 시체’인 경우가 허다하다. 할아버지가 누웠던 요람에 손자가 눕고, 증조할머니가 가지고 놀던 인형 옷을 증손녀가 물려받는 등 일상생활 전반에 전통이 녹아 있다.
이름 짓기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항렬에 따라 이름을 짓는 것처럼 서양인들도 조부모의 이름을 따거나, 두 번째 이름을 남녀 성별에 따라 대대로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한스 페터의 경우 아버지는 프란츠 페터, 안나 마리아의 경우 딸은 바바라 마리아).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출신 성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산층 아이들은 다비드, 사라, 루카스, 마리아, 안나, 라파엘, 마틴, 테레사, 요한네스 등 성경 속 인물이나 성인(聖人)의 이름을 갖게 된다.
나치 시절 ‘아돌프’라는 이름 급증했다 종전 뒤 사라져
반면 저소득층 아이들 중에는 캐빈, 저스틴, 브리트니, 제시카, 말콤, 제니퍼, 애슐리, 샤키라 등의 이름이 많다. 이들 이름의 특징은 모두 미국 대중가수나 배우, 심지어 미국 드라마 속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 자식들에게 TV 스타의 이름을 지어주는 황당한 부모가 과연 교육을 제대로 시킬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범생인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선입관에 지나지 않을까. 수년간 이름을 연구해온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유르겐 게하르츠 교수(사회학)는 “독일 상류층에서는 자클린이나 제니퍼, 맨디, 캐빈, 저스틴이란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상류층 인사들이 이런 식으로라도 하류층과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해석했다.
독일 쳄니츠공대 심리학연구소는 최근 이름과 그에 따른 연상작용을 실험했다. 실험은 아주 간단했다. 149명의 실험대상자들에게 60개의 이름이 적힌 목록을 보여주고 그에 따른 연상작용을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듣고 생면부지인 그 사람의 나이, 성격, 매력도, 나아가 지능 수준까지 짐작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안드레아’라는 여자는 50대 중반에 종교가 없으며 속이 좁고 촌스러운 이미지를, ‘카타리나’는 젊고 종교적이며 똑부러지는 성격에 진보적이고 콧대가 높은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독일의 저소득층 부모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사진)의 이름을 본떠 딸의 이름을 ‘브리트니’라고 짓기도 한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인데 뭐 그리 야단법석이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에게 독일의 조직심리학자 마리오 슈미츠 불(Mario Schmitz Buhl)은 단호하게 주장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름은 넥타이보다 더 중요하다”고. 심지어 이름은 부모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기도 한다. ‘아돌프’라는 이름은 1933년부터 ‘지도자를 경배한다’는 맥락에서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히틀러는 이렇게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이름까지도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미카엘라와 친구들은 난상토론 끝에 아들이면 ‘클레멘스’로 부르기로 최종 심의(?)를 마쳤다. 평생 만나게 될 친구들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름을 아기에게 지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턱대고 반대하는 친구들 탓에 미카엘라는 태어날 아기가 딸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