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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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때 부친 타계 유별난 자식 사랑

공부 잘하는 3형제 남다른 자부심 … 평소 ‘호연지기’ 키우라고 가르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5-02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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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살 때 부친 타계 유별난 자식 사랑

    김승연 회장이 지난해 말 도하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셋째 아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

    왜 그랬을까.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보복 폭행에 직접 가담한 이유를 놓고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강한 남자’를 지향하는 마초이즘의 일단일까. 아니면 가족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부성애의 발로일까.

    김 회장의 별명은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다. 다이너마이트 만드는 회사를 경영했던 선친(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별명을 이어받은 것이지만, 화끈한 그의 성격이 이 별명에 잘 어울리기도 해 재계에서는 스스럼없이 부른다. 별명처럼 김 회장은 선이 굵다. 직선적이다.

    ‘김승연’ 스타일은 기업경영 과정에 유감없이 드러난다. 29세였던 1981년 한화그룹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회사 덩치를 20배 이상 키웠다.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규모를 키웠다는 점에서 특유의 뚝심이 엿보인다. 재계는 그런 그에게 성공한 ‘재벌 2세’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김 회장이 ‘강한’ 것만을 아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면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그는 강한 것 이상으로 감성도 풍부하다. 평소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조크’는 그의 문화적 감성이 보통이 넘음을 말해준다.

    감성 풍부한 ‘가족주의’ 트레이드마크



    한화 이글스 야구단의 유승안 전 감독 아내가 암투병할 때의 일이다. 병문안에 나선 김 회장은 마치 가족이 투병 중인 것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수행하던 측근들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이런 여린 감정선은 가족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의리와 화합,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는 그의 가족주의는 때로 배타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지만, 김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최근 김 회장은 직원들과 대화를 하다 기러기아빠의 실상을 들었다. 그 후 김 회장은 그룹 내 ‘기러기아빠’들에게 특별휴가와 함께 여비를 지원했다. 문병을 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나눴던 유 전 감독의 아내가 죽자 김 회장은 그의 아들을 한화 이글스에 입단시키기도 했다.

    김 회장은 누나와 동생이 제일화재와 빙그레로 계열 분리해 나갈 때 재산싸움을 벌였다. 당시 김 회장은 ‘돈보다 가족이 우선이다’라는 입장에 무게를 두었지만, 조직의 총수로 가족보다 조직을 지키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를 애통해했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김 회장의 가족주의, 자식 사랑에는 다른 이유도 따라다닌다. 김 회장은 2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도 그는 공부하느라 사업으로 바쁜 아버지를 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런 경험이 핏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게 김 회장 주변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특히 세 아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미국의 마당발’로 통하는 김 회장은 아들 셋을 모두 미국에 조기유학 보냈다. 한미교류협회 회장을 지낸 선친 뜻에 따라 김 회장 역시 경기고 2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난 바 있다.

    그는 아들들이 예일대학을 비롯해 미국 명문대에 들어간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차남(22)과 장남(24)은 모두 미국 명문 사립고인 세인트폴스 스쿨을 졸업하고 각각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 진학했다.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는 셋째 아들은 미국 스탠퍼드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재계 인사들 모임이 있을 때면 상대방 자녀의 안부를 자주 묻는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들’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풀이된다.

    한화그룹 경영 철학은 의리와 신용

    김 회장은 지난해 말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 경기에 참가한 셋째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현지를 찾기도 했다. 아들은 보답하듯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을 걸고 서울로 돌아온 김 회장은 지인들을 술집으로 불러 ‘거하게 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김 회장이 마장마술에 그렇게 깊은 지식이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평소 의리와 신용을 경영철학으로 강조해온 김 회장의 통 큰 판단과 행동은 선친인 김종희 선대 회장이 강조한 ‘대장부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전 회장은 생전에 “남자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보며 단맛 쓴맛 다 봐야 한다. 어차피 무엇을 하든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아들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울 것을 강조했다.

    그 때문일까. 김 회장은 세 아들을 키우며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문화 및 체육활동을 권했다. 책보다 세상 속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김 회장은 가끔 자식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아버지에게 배운 호연지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올 초 기업통합 이미지(CI)를 바꿨다. 김 회장은 CI 교체식에서 “우리 자신부터 변신을 시작해야 한다. 이 의식부터 경영체질까지 모두 바꿔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새 출발을 위해 수백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주먹 ‘한 방’에 모든 것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외신은 한국의 10대 그룹 총수가 벌인 ‘북창동 잔혹사’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들의 관심이 커지는 것과 반비례해 한화의 추락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다이너마이트 주니어’의 주먹은 역시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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