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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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은 가라 난 재미를 쇼핑한다

다양한 즐거움 추구 시대, 삶과 소비 중심은 ‘웃음’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4-04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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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함은 가라 난 재미를 쇼핑한다
    ‘재미없고 지루한 것들은 가라.’

    최근 KTF가 3.5세대 이동통신 브랜드 ‘SHOW’ 출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쇼를 하라’ CF의 모토다. 광고에서 조문객들은 ‘지겹고 심심한 것들’을 무덤에 묻은 뒤 신나는 세상을 만났다며 춤추고 즐거워한다. 심지어 ‘세상에 없던, 세상이 기다리던’ 새로운 ‘쇼당’이 만들어졌으니 새로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입당하라고 외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발레하는 뚱뚱한 ‘형님’들, 퇴근 시간 3분 전을 알리며 즐거워하는 직장인들,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볼링게임을 하는 신혼부부의 모습을 담은 장면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KTF가 이처럼 ‘재미 컨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까닭은 시장의 대세인 ‘재미 트렌드’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KTF 담당자는 “요즘은 생활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시장을 선도한다. 이들의 소비 패턴 역시 어렵고 심각한 브랜드보다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펀(fun) 요소를 부각했다”고 제작 동기를 밝혔다. ‘재미 컨셉트’를 활용한 이 광고는 3월1일부터 방영돼 짧은 기간에 큰 효과를 보았다.

    즐거움을 위한 소비 감성 중시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문화현상이나 상품들을 보면 ‘재미’ 혹은 ‘웃음’이라는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과 경제가 온통 ‘즐거움’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하다.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소비가 주류를 이룬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모은 패러디 브랜드를 기억할 것이다. ‘아디도스’ ‘파마’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뿐 아니라 알파벳 몇 개만 바꾼 패러디 브랜드의 등장에 유명 브랜드 업체들은 당혹스러워했지만, 소비자들은 ‘가짜면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선뜻 구매에 나섰다. 요즘 사람들은 ‘짝퉁’이라는 것이 드러날까 쉬쉬하던 구세대 사람들과 달리 재미 차원에서 브랜드 제품을 들고 거리낌없이 활보하고 다닌다. 기존 통념을 깨는 사과나 수박 모양으로 디자인된 컴퓨터, 원형 키보드 같은 것들도 실용성이나 심미적 차원을 넘어 단순히 우습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영어 수학 교재 제목에도 ‘펀’이란 단어가 붙고 코믹 영화와 코믹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이 상한가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펀마케팅’ ‘펀경영’을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홈쇼핑의 유머 마케팅, 마늘을 싫어하는 드라큘라의 캐릭터를 응용해 드라큘라 킬러 메뉴를 만든 ‘매드 포 갈릭’, 카페식 체험공간인 ‘펀앤폰’과 TTL, 게임사이트의 ‘맞고 게임왕’ 선발대회, 소녀적 감성을 좇는 키티 캐릭터, 소꿉장난을 연상시키는 싸이월드의 도토리나 미니미 등이 모두 펀마케팅의 성공 스토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월 초 창업 컨설턴트와 창업전문가 106명을 대상으로 ‘2007년 블루오션 창업아이템’을 조사한 결과 ‘펀 · 조이’ 부문이 퓨전상품, 웰빙·건강·환경개선 상품, 유아·교육·실버 상품, 저가상품 및 가격파괴 상품과 더불어 5대 블루오션 트렌드로 꼽혔다. 이는 지난해부터 불고 있는 ‘펀마케팅’ 열풍이 더욱 거세졌음을 보여준다.

    경영 부문에서도 ‘펀’은 중요한 화두다. 기업체 가운데 유명 ‘펀경영 컨설턴트’의 강좌를 유치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며, 펀경영 컨설턴트들은 하루에 2건 이상씩 강좌에 불려다니는 ‘바쁘신 몸’들이다.

    지루함은 가라 난 재미를 쇼핑한다

    KTF의 ‘쇼를 하라’ CF.

    재미가 경쟁력 ‘펀경영’ 열풍

    각 기업은 ‘펀경영’이 기업경쟁력을 높인다며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오리온은 직원들에게 많은 권한과 책임을 넘기고 업무를 게임처럼 즐길 수 있게 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KTF는 회사를 즐거운 일터로 만들기 위해 지휘자 금난새 등 국내 유명 문화·예술인들을 초대해 강연하는 ‘퍼니 KTF’ 프로그램을 1년 가까이 해오고 있고, 직원 간에 ‘나부터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포스코 이구택 회장은 직원들에게 e메일 보내기 등 스킨십 경영을 보여주고 있고, 제철소 소장과 반장들에게는 ‘펀 리더’라는 책임을 맡긴다.

    실제로 경영에 재미 요소를 가미한 ‘펀경영’ 기법을 도입해 효과를 본 기업이 아주 많다. 한국펀경영연구소가 1997~2006년 펀경영을 도입한 기업 100여 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펀경영을 하는 기업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이 이전보다 15% 정도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펀경영 대상자의 사기와 의욕이 15% 정도 올라갔다고 가정했을 때 업무 효과는 사무직과 영업직의 경우 각각 23%, 47%씩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 협조와 배려, 애사심이 40% 이상 늘어나고, 업무상 스트레스는 30% 이상 줄었다. 현장직의 경우 사고 발생률도 실시 이전보다 3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재미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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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복합쇼핑몰 용산현대아이파크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지연, 이혜정 씨(왼쪽부터).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걸까. 조혁균 한국펀경영연구소 소장은 그 원인으로 △급변하는 사회현상 △소비자의 감성중시 현상 △웃음을 원하는 인간본능 등을 꼽았다.

    “현대사회는 무겁고 심각한 것 대신 가볍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또 예전에는 제품의 가격이나 기능 등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서비스나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삶의 중심을 장악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제품이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재미 추구 트렌드’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갈지 알 수 없지만, 이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미래형 트렌드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은 “한국 사람들은 지금 다양한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마음속의 상처를 보듬어줄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 정서가 ‘재미 추구 트렌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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