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을 매입하려고 한다. 엔화대출을 받고 싶은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엔화대출 불법유용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부동산업자는 “많이들 하고 계신다”고 대답했다.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에는 “주거용이 아닌 상가용 건물이라면 더욱 문제가 안 되니 안심하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어지는 부동산업자의 말이다.
“(대출이) 많이 어려워지긴 했어도 개인사업자의 경우에는 안심해도 돼요. 금리가 싸고 대출 규모도 거의 제한이 없는 거 아시죠? 담보를 설정하면 80%까지도 가능해요. 강남 큰손들은 이미 엔화대출로 다 돌렸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대출을 받으려고 6~7%씩 이자를 내면서 고생한다니까요.”
탈·불법 엔화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불건전 거래’라고 이름 붙인 탈·불법 대출은 2년 전부터 단속과 계도를 해왔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금리 고액대출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고객(?)’들과 금융기관이 비밀리에 이 거래를 계속하고 있는 것.
“금리 2.3% 받기만 하면 버는 돈”
금감원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등 5개 시중은행의 엔화대출은 2005년 말 7310억엔이던 것이 지난해 11월에는 1조1441억엔(11월17일 기준)으로 1년 사이에 4131억엔(57%)이나 급증했다. 금감원은 이처럼 엔화대출이 급증하는 데는 대출받은 엔화를 원화로 바꾼 뒤 부동산 투기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한몫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엔화대출 대상을 기업 시설자금이나 운전자금으로 제한하고 있다. 즉 외국환거래 규정에 따른 수입 또는 용역비 지급, 기업의 외화결제자금 수요, 외화차입금 원리금 상환자금, 한국수출입은행과의 협조융자자금 등이 대출 대상이다. 따라서 제도만으로 본다면 부동산 구입을 위한 일반인들의 대출은 불가능하다. 국민은행 대출담당 부서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2년 전까지만 해도 사업자등록증만 가지고 오면 대출을 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기업대출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운영자금에는 대출이 어렵다. 시설자금의 사용 명세도 100% 증빙돼야 한다. 환리스크를 감당할 만한 사업자인지도 따진다. 부동산 투자 등으로 (대출이) 용도 변경될 것을 알면서도 대출을 해주는 은행(원)은 없을 것이다. 자기 목이 걸린 문젠데….”
시중은행들 뻔히 알고도 대출?
그러나 금융업계는 상당히 많은 엔화대출 자금이 편법으로 용도 변경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리가 2.3%(1월31일 기준)에 불과하니 원화대출보다 2~3%포인트 싸고,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가 7%를 넘는 상황에서 ‘받기만 하면 돈을 버는’ 일종의 ‘보장성 상품’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태는 은행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1월24일 강남 A은행의 한 지점. “엔화대출이 가능한지, 부동산 매입자금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더니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사업자에게는 엔화대출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동산 매입도 가능하도록 도와주겠다”는 대답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62억원에 매물로 나온 상가건물을 매입하면서 동시에 담보를 설정할 경우 “50억원 이상도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목적란에 ‘영업장 확대를 위한 시설자금’이라고 적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업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임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3월 금감원이 공개한 몇 가지 ‘불건전 거래’ 사례도 이와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다음은 그중 한 사례.
“서울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강남 일대 재건축 아파트를 사기 위해 A은행에 엔화대출을 신청했다. 그는 병원에 들여올 신규 설비 구입용으로 5억원 정도를 대출받아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렇다면 왜 시중은행들은 내부감찰과 금융당국의 감사에도 이러한 대출에 나서는 것일까.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건전 대출실태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대출 금리가 높아지고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감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감안하면 이는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은행 처지에서 보면 사정이 다르다. 실적이 곤두박질치면 탈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출 이후 자금 용도를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묵인하고 대출을 실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금감원은 2005년 말에 이어 지난해 11~12월에도 은행들의 엔화대출 불건전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은행 조사팀도 함께했다. 그 결과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탈·불법 사례가 드러났다. 조사를 담당한 금감원 은행검사1국 백재흠 국장은 “지난해 말 5개 시중은행에 대한 조사에서도 다양한 불건전 대출 사례가 드러났다. 현재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 중이다”고 밝혔다.
백 국장은 “우리는 대출 용도를 속인 개인사업자들 못지않게 일부 시중은행들이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용도 확인 절차를 무시한 채 대출을 주선하는 게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 관계자들이 “유례없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밝힌 이번 금감원 조사 결과는 3월쯤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과 함께 확실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엔화대출 불법유용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부동산업자는 “많이들 하고 계신다”고 대답했다.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에는 “주거용이 아닌 상가용 건물이라면 더욱 문제가 안 되니 안심하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어지는 부동산업자의 말이다.
“(대출이) 많이 어려워지긴 했어도 개인사업자의 경우에는 안심해도 돼요. 금리가 싸고 대출 규모도 거의 제한이 없는 거 아시죠? 담보를 설정하면 80%까지도 가능해요. 강남 큰손들은 이미 엔화대출로 다 돌렸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대출을 받으려고 6~7%씩 이자를 내면서 고생한다니까요.”
탈·불법 엔화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불건전 거래’라고 이름 붙인 탈·불법 대출은 2년 전부터 단속과 계도를 해왔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금리 고액대출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고객(?)’들과 금융기관이 비밀리에 이 거래를 계속하고 있는 것.
“금리 2.3% 받기만 하면 버는 돈”
금감원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등 5개 시중은행의 엔화대출은 2005년 말 7310억엔이던 것이 지난해 11월에는 1조1441억엔(11월17일 기준)으로 1년 사이에 4131억엔(57%)이나 급증했다. 금감원은 이처럼 엔화대출이 급증하는 데는 대출받은 엔화를 원화로 바꾼 뒤 부동산 투기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한몫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엔화대출 대상을 기업 시설자금이나 운전자금으로 제한하고 있다. 즉 외국환거래 규정에 따른 수입 또는 용역비 지급, 기업의 외화결제자금 수요, 외화차입금 원리금 상환자금, 한국수출입은행과의 협조융자자금 등이 대출 대상이다. 따라서 제도만으로 본다면 부동산 구입을 위한 일반인들의 대출은 불가능하다. 국민은행 대출담당 부서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2년 전까지만 해도 사업자등록증만 가지고 오면 대출을 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기업대출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운영자금에는 대출이 어렵다. 시설자금의 사용 명세도 100% 증빙돼야 한다. 환리스크를 감당할 만한 사업자인지도 따진다. 부동산 투자 등으로 (대출이) 용도 변경될 것을 알면서도 대출을 해주는 은행(원)은 없을 것이다. 자기 목이 걸린 문젠데….”
시중은행들 뻔히 알고도 대출?
그러나 금융업계는 상당히 많은 엔화대출 자금이 편법으로 용도 변경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리가 2.3%(1월31일 기준)에 불과하니 원화대출보다 2~3%포인트 싸고,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가 7%를 넘는 상황에서 ‘받기만 하면 돈을 버는’ 일종의 ‘보장성 상품’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태는 은행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1월24일 강남 A은행의 한 지점. “엔화대출이 가능한지, 부동산 매입자금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더니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사업자에게는 엔화대출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동산 매입도 가능하도록 도와주겠다”는 대답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62억원에 매물로 나온 상가건물을 매입하면서 동시에 담보를 설정할 경우 “50억원 이상도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목적란에 ‘영업장 확대를 위한 시설자금’이라고 적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업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임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3월 금감원이 공개한 몇 가지 ‘불건전 거래’ 사례도 이와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다음은 그중 한 사례.
“서울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강남 일대 재건축 아파트를 사기 위해 A은행에 엔화대출을 신청했다. 그는 병원에 들여올 신규 설비 구입용으로 5억원 정도를 대출받아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렇다면 왜 시중은행들은 내부감찰과 금융당국의 감사에도 이러한 대출에 나서는 것일까.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건전 대출실태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대출 금리가 높아지고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감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감안하면 이는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은행 처지에서 보면 사정이 다르다. 실적이 곤두박질치면 탈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출 이후 자금 용도를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묵인하고 대출을 실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금감원은 2005년 말에 이어 지난해 11~12월에도 은행들의 엔화대출 불건전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은행 조사팀도 함께했다. 그 결과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탈·불법 사례가 드러났다. 조사를 담당한 금감원 은행검사1국 백재흠 국장은 “지난해 말 5개 시중은행에 대한 조사에서도 다양한 불건전 대출 사례가 드러났다. 현재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 중이다”고 밝혔다.
백 국장은 “우리는 대출 용도를 속인 개인사업자들 못지않게 일부 시중은행들이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용도 확인 절차를 무시한 채 대출을 주선하는 게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 관계자들이 “유례없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밝힌 이번 금감원 조사 결과는 3월쯤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과 함께 확실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